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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족치료

花受紛-동아줄 2011. 12. 27. 15:06

 

항상 싸우고 서로 비난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괴로운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커플이 있다. 이들은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관계를 지속하면서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한탄을 한다. 이런 관계에서 상대방은 못된 사람, 믿을 수 없는 사기꾼, 거짓말쟁이가 된다. 결국 부부관계가 파탄이 난 뒤 상대방의 착취와 무책임 그리고 폭력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도 아닌 성인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고 그것을 무조건 참기만 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심층심리학적 접근 속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복합적이고 모순되는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배우자와 반복적인 갈등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순간의 불행을 으레 일어나는 일의 한 패턴으로 여기고, 불행을 즐기려는 무의식적인 성향이 있다.

그럼 왜 이러한 불행을 즐기는 듯한, 고통스러운 무의식적인 성향이 존재하는 걸까? 험프레스는 고통스런 부부관계를 반복함으로써 어린 시절 풀지 못한 문제를 어른이 되어 다시 한 번 풀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성향은 현재 배우자와의 갈등을 통해 어린 시절 경험한 고통을 감추어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도 모르게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통해 어린 시절의 고통을 잊게 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부부관계를 지속하는 부부의 무의식적인 심리에는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억압되었던 불행한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 있다. 역기능적 가족체계 안에서 부모의 불행한 부부관계를 경험하면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내면에 깊은 상처를 갖게 되며 평생을 따라다니며 삶에 부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존감은 파괴되고, 자기정체성은 망가지고, 삶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선택과 만남을 이어간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훼손당한 자존감과 파괴된 자기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 것을 부정하고, 자신의 불행한 경험을 극복하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상처받은 마음은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더 이상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감정을 무디게 만들어서 생존을 이어가지만, 억압된 상처는 내면에 쌓여 올바르게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불행한 부부관계를 일으키게 한다. 독일 심리학자 마츠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진 사람은 때로는 무능하고 불성실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배우자를 향해 내면에 쌓인 증오를 표출함으로써 마음속에서만 무수히 터트렸던 부모에 대한 비난을 배우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부모에게 말할 수도 없던 것들 또는 요구할 수도 없었던 것들을 배우자에게 터트림으로써 어린 시절의 고통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부부는 과거의 미해결의 문제를 다시 재연함으로써 더욱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볼비는 “아동이었을 때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고통 받았던 자녀가 부모가 되면, 그는 자기 자신을 결핍으로 이끌었던 상황을 똑같이 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볼비는 자녀가 부모처럼 역기능을 재연하는 경향을 자녀들이 스스로를 부모들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티어도 역기능적 가족의 부부는 불행했던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결혼생활을 하려는 경향을 가지며 이것은 원가족의 가족패턴을 따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가족의 관계역동은 되풀이되는 패턴(recurring pattern)을 가지며, 이것은 가족 안에서 개개인의 특징과 관계 역할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까지 반복된다. 이러한 세대전수의 패턴은 귀향증후군을 통해 시작된다.

이처럼 원가족에서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경험하였던 자녀는 성장하여 부모와 유사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 보웬은 가족을 정서적 체계로 보는데, 집에 살거나 떨어져 있는 모든 가족구성원들은 현재 바로 핵가족정서체계 안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핵가족정서체계는 다세대적 개념으로, 개인이 원가족으로부터 학습된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며 결혼선택을 통해 가족의 정서체계를 여러 세대를 걸쳐 반복함을 의미한다. 보웬은 이러한 원가족의 가족패턴을 따르려는 경향은 먼저 배우자의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것을 귀향증후군(the going hom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린 시절 경험한 원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을 선택한다. 인간은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편안해하고 이끌린다. 이러한 익숙함을 과거의 가정에서 경험으로 재현하도록 한다. 원가족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을 재현해 줄 사람을 선택한다. 이러한 관계패턴을 귀향이라고 부른다. 원가족은 애착과 안정감의 원천으로, 비록 그 안에 폭력, 무관심, 냉담, 갈등 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내게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된다. 부모가 원가족 안에서 나에 대해 무관심하였다면 나는 가족을 언제나 무관심과 외로움으로 만들 불안정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원가족 안에서 언제나 비난 받고 무시당한 사람은 역시 언제나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취급할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원가족의 집(Home)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원가족으로의 회귀를 통해 힘든 관계패턴을 지속하는가?

그것은 원가족에서의 고통스러운 관계를 반복함으로써 어린 시절 풀지 못한 문제를 어른이 되어 다시 한 번 풀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유아적 의존성을 역기능적 관계패턴의 반복을 통해 계속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많은 심리치료 모델들은 현재의 갈등에서 과거의 불행한 경험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어, 게슈탈트상담에서는 과거에 형성된 미해결의 과제를 탐색함으로써, 교류분석상담에서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각본을 탐색함으로써, 이마고상담에서는 어린 시절 상처로 형성된 이마고를 탐색함으로써, 다세대가족치료에서는 부부의 다세대 전수의 메커니즘 속에 있는 자아분화와 삼각관계를 탐색함으로써 과거의 고통을 현재와 분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대부분의 이러한 심리치료모델들은 개인의 어린 시절의 갈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지만 한 개인과 가족의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처럼 지금까지 가족치료, 부부치료의 영역 속에서 트라우마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였다.

트라우마(trauma)는 그리스어로 상처라는 뜻을 가졌는데, 외상, 쇼크 또는 큰 상처를 남기는 사건 후의 정신적 상처 등을 설명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의 측면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 때 외상은 일종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의되며, 이 외상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 신체적인 증상들을 총체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른다. DSM-IV(1995)에 의하면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주요한 사건들은 죽음이나 심각한 상해, 개인의 신체적 안녕을 위협하는 사건, 신체건강을 위협하는 사건의 목격, 가족이나 친지의 예기치 못한 죽음이나 상해 등이 있다. 시륄닉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피해자의 기억 속에 새겨진 트라우마는 마치 그를 따라다니는 유령처럼 그때부터 그의 역사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로 인한 결과는 믿음과 신뢰의 상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연결의 상실, 꿈꾸고 상상하고 명백히 바라는 삶을 선택하는 능력의 상실 등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일어났던 시점에서만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도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삶과 관계 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시륄닉은 서구에서는 4명 중 한 아이의 삶이 10살 이전에 트라우마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며 죽을 때까지 어른 2명 중 하나가 그러한 상처를 경험하여, 결국 트라우마에 의해 파탄된 채 생을 맺거나 아니면 그것을 변형시킨다고 말한다. 켈러만은 가족 안에서 발생한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은 종종 불안, 공포, 분노, 무기력 등으로 반응하며 이러한 트라우마의 경험은 세대 간에 무의식적으로 전수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무엇보다 대인관계, 부부관계 안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트라우마에 노출된 후 그 사건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하고, 그 사건과 관련된 자극을 지속적으로 회피하고 일반적으로 반응이 마비되고, 각성 상태가 증가되는 지속적인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트라우마를 경험한 피해자의 대처수단 중에 하나가 불행한 결혼생활의 재연이며 그리고 극단적 대처수단은 자해, 자살이었으며 또한 트라우마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쉽게 약물과 알코올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치료모델이 요구되는데, 이 가운데 트라우마가족치료모델이 존재한다.


가족세우기에서 발전된 트라우마가족치료는 체계론적 관점을 수용하여 개인을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는 가족체계의 일부로 여긴다. 또한 트라우마의 사건을 체계적 측면과 순환적 인과성 속에서 인식하며 트라우마의 내용 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치료적 접근을 한다. 체계론적 관점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일반적 가족치료모델과 트라우마가족치료의 차이점은 트라우마가족치료가 가족의 갈등과 문제를 가족 내에 있는 트라우마의 메커니즘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는데 있다. 일반적 가족치료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는 트라우마를 발생시킨 가족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가족구성원들 간의 관계 패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트라우마가족치료는 가족 내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를 이전 세대 또는 어린 시절에 발생한 트라우마의 재생산으로 인식한다. 즉, 가족 내에서 발생한 트라우마가 또 다른 트라우마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과거 세대의 트라우마가 현재 가족에게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는 사이코드라마의 전이개념에서도 볼 수 있다. 트라우마가족치료는 가족체계가 트라우마의 중심에 있다고 보며 가족의 역기능이 관계패턴과 의사소통의 장애에서 발생하는 것만이 아닌, 트라우마의 사건이 가족의 역기능을 초래한다고 본다. 따라서 트라우마가족치료에서 트라우마는 치료의 주요 대상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라우마가족치료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가족트라우마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가족치료는 독일의 가족치료사 버트 헬링어의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졌다. 헬링어는 한 개인이 가족 안에서 겪는 문제, 또는 삶에서 경험하는 불행이나 질병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자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부정적인 삶의 패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족 안에 존재하는 트라우마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가족치료는 가족의 트라우마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치료인 까닭에 일반 상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내담자의 진술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 대신에 내담자의 가족 안에 트라우마가 발생했는가? 발생했다면 어떤 트라우마였는가?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트라우마가족치료에서 주요한 치료적 대상으로 삼는 트라우마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형제자매의 조기사망과 힘든 운명, 낙태, 유산 그리고 사산, 비극적 죽음과 사고로 인한 죽음, 자살과 파산, 범죄와 부당한 사건의 희생자와 가해자, 배우자 또는 약혼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입양, 파혼과 이혼, 가족의 은밀한 비밀, 가족으로부터 소속될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함, 전쟁의 경험 등이 있다. 트라우마가족치료는 이러한 가족의 트라우마가 얽힘(Verstrickung)으로 작용한다고 보기에 이 치료의 핵심작업은 바로 가족 안에 존재하는 트라우마로 발생된 체계의 얽힘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얽힘의 개념에서 트라우마가족치료는 전통적 가족치료에서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트라우마가족치료는 개입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 내담자가 자신과 가족의 얽힘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헬링어는 이러한 얽힘의 종류 속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이 가족 안에서의 조기사망이라고 밝힌다. 얽힘을 푸는 첫 작업은 내담자 자신과 가족사 내에 존재하는 얽힘의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트라우마가족치료과정이 진행된다. 트라우마가족치료에서 치료과정은 내담자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가족체계의 정보와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 물으며, 특히 위에서 언급한 트라우마의 주제가 내담자 가족사 안에서 발생했는가를 파악한다. 일단 트라우마 중심의 정보가 수집되고 나면 상담자는 대리인들을 통해 내담자의 현재 가족과 원가족을 세우면서 치료과정을 진행한다. 내담자가 대리인들을 통해 가족을 세우고 나면 상담자는 세워진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내담자가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드러내는 표현이나 가족을 세운 형태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대리인들 사이의 거리와 간격, 바라보고 있는 방향 등을 관찰함으로써 가족 내에 발생했을 트라우마의 흔적을 읽는다. 비록 내담자가 트라우마의 사건에 대해 진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리인들이 대치된 가족체계의 모습에서 트라우마의 흔적을 탐색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탐색과 그 영향을 관찰하면 상담자는 대리인들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물어본다. 여기서 대리인들이 진술하는 느낌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내담자 가족의 느낌을 대리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를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가족사에서 존재했던 상처를 직면하고 이를 통해 상처의 사건을 재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재경험은 마르가 표현한 ‘앎의 장'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치료과정을 통해 트라우마가족치료는 개인사와 가족체계 안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로 인해 생겨난 친밀감과 경계상의 왜곡을 다루며, 분노와 슬픔, 우울 때문에 발생한 신체증상을 경감시킨다. 트라우마가족치료는 내담자에게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며, 가족갈등을 초래하는 트라우마를 해결하도록 촉진한다. 또한 트라우마의 사건에 대해 새롭고도 보다 긍정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하여, 가족역동의 변화를 위해 새로운 대처기술과 적용기술을 시도하도록 촉진시킨다.

(참고문헌은 지면상의 문제로 편집자가 생략하였습니다.)

출처 :도형분석상담연구소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