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필,선♧/哲學.心理學

반응 억제와 역설 의도

花受紛-동아줄 2011. 5. 22. 13:14

로고테라피의 임상적 적용의 실제는 그것이 지닌 인간론적인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응 억제와 역설 의도라고 불리는 로고테라피의 테크닉은 모두가 인간 존재의 두 가지 본질적인 특성, 즉 자기를 초월하고 자기를 이탈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근거로 한 것이다.

로고테라피의 동기 이론에 대해 토론할 때, 나는 쾌락에 대한 직접적인 집착이 결국 그것을 좌절시키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사람이 쾌락에 목표를 두면 둘수록 그 사람은 더욱 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 로고테라피에서 이런 과잉 의도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이런 병적인 현상과 더불어 또 다른 현상을 볼 수 있는데, 로고테라피에서 과잉 반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과잉 반사란 지나친 주의 집중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집단적 과잉 반사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도 있다. 항상 자신을 관찰하려고 하고, 자신들의 행위에 숨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기를 캐기 위해 자신을 분석하고, 그 밑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인 정신역학의 견지에서 그것을 해석하려고 한다.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자발성과 활동성이 방해를 받게 된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이런 과잉 반응을 반응 억제를 통해 중화시킨다.

반응 억제가 성적인 신경증을 위한 로고테라피 치료의 본질적인 요소라면 역설 의도는 강박 관념과 공포증 환자를 위한 단기간의 치료에 적합한 치료법이다. 역설 의도는 환자가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하도록 하거나 혹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도록 북돋아주는 것을 말한다. 이 테크닉이 치료 방법으로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예기불안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런 예기불안 때문에 환자는 어떤 일에 대해서 그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안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환자가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경향이 있으며, 예기불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어떤 징후가 공포증을 불러 일으키고, 공포증이 다시 그런 징후를 유발한다. 이런 징후가 반복되면서 공포증은 더욱 심해진다. 환자가 누에고치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재생 메카니즘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약물요법을 쓸 수도 있고 정신요법을 쓸 수도 있으며 이 두 가지를 병행할 수도 있다. 증세가 심할 경우에는 반드시 마지막 방법을 써야 한다. 약물요법은 갑상선 항진증으로 생기는 고소공포증이나 파상풍균의 잠복으로 생길 수 있는 폐소공포증의 초기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치료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그런 증상에 포함되어 있는 유기적인 요인은 약간의 불안증세만을 유발하는 반면에 이미 진행될 대로 진행된 불안증은 예기불안이 작동을 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생체조직적인 측면은 물론, 정신적인 측면에 대한 치료도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신적인 측면은 반드시 역설 의도를 이용해 치료해야 한다.

치료에 역설의도를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환자가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환자가 스스로 하도록 하거나 혹은 그런 일이 또 일어나기를 바라도록 하면 환자의 의도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 병적인 공포가 역설적이 소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유로 예기불안이라는 항해에 바람이 빠지는 것이다.

앞에서 의도의 전환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공포증에 걸린 환자 쪽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을 공포로부터의 도피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을 공포로부터의 도피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안 그 자체가 공포의 목표가 될 경우, 즉 환자 스스로가 '공포에 대한 공포'라고 말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환자는 그것이 실신이든 협심증의 발작이든 혹은 뇌일혈이든 상관없이 그 공포에 잠재되어 있는 결과를 두려워한다. 로고테라피의 가르침에 의하면 공포로부터의 도피는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포증이 된다. 하지만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과 대면하도록 함으로써 공포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공포로부터의 도피와 함께 병의 원인이 되는 유형이 두 가지 더 있다. 쾌락을 얻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과, 집착증이나 강박증과 싸우는 것이다. 쾌락을 얻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은 과도하게 쾌락을 얻으려는 의도와 같은 것인데, 성적인 문제와 관련된 신경증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집착이나 강박 관념과의 싸움은 강박증의 원인이 된다. 강박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은 그들 자신이 자살을 하거나 남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상한 생각들이 어쩌면 심각한 정신병의 징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떼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이런 이상한 생각에 잠재되어 있는 결과나 원인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공포로부터 도피하겠다는 생각에서 발생한 공포증은 강박증의 그것과 유사하다. 강박증 환자 역시 공포심을 나타낸다. 하지만 공포는 '공포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공포이며, 이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집착이나 강박 관념에 대항해 싸우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환자가 열심히 싸우면 싸울수록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우리가 만나 본 강박증 환자에게는 공포증에서 볼 수 있는 예기불안에 의해 형성된 순환 고리 말고도, 압박이 그에 대응하는 압박을 만들어 내고, 다음에는 거꾸로 그 대응하는 압박이 압박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다. 만약 환자로 하여금 강박 관념을 상대로 한 싸움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증세는 곧 약화되고 마침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역설 의도를 통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역설 의도의 이론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제는 그 실제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연구보고서를 예를 들어 보겠다. 조지아 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내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환자들에게 역설 의도를 적용시켜 보았다. 그 결과 이것이 아주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한 대학생이 나를 찾아와서는 어떤날 하기로 되어 있는 구두 발표회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고 호소해 왔다. 나는 그 학생에게 달력을 펴 놓고, 발표가 있는 주마다 그 밑에 큰 글씨로 '불안'이라고 써 넣으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에게 불안한 주를 미리 계획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고 나서 그는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제는 불안 그 자체 때문에 괴로울 뿐이지 불안에 대한 불안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역설 의도의 또 다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자기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환자가 있었다. 집 밖에 나갈 때마다 혹시 길거리에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집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할 때마다 몇 발짝 못가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을 친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일하는 정신과로 오게 되었다. 우리 의료진들은 정밀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심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의사 중 한 사람이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거리로 나가 심장발작이 일어나도록 애를 써 볼 것을 권했다.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요. 어제는 심장발작이 두 번 일어 났어. 지금은 이른 아침이니까 오늘은 세번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얘기하십시오. 스스로 멋진 발작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

이렇게 해서 그 환자는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던 고치를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역설 의도가 만성적인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증거도 있다. 독일의 정신요법 백과사전에 보면 60년동안 끈임없이 손을 씻어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려 온 65세 노부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우리 의료진 중 한 사람이 역설 의도를 이용해서 이 증세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워싱턴 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랄프 빅터와 캐롤린 크리스는 <미국 정신치료학지>에 도박환자에게 역설 의도의 기법을 적용한 사례를 발표했다. 36세의 이 환자는 열네 살 때부터 도박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환자가 의사로부터 매일 세 시간씩 특정한 시간에 도박을 하도록 하라는 권유를 받고는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 지난 20년 동안 정신과 의사를 다섯 명이나 거쳤지만 이렇게 독창적인 방법으로 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여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

환자는 돈을 잃었고 3주만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날렸다. 하지만 로고테라피 치료 의사는 그에게 시계를 팔아서 도박 비용을 댈 것을 권유했다. 실제로 이렇게 역설 의도를 적용해 치료를 함으로써 환자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야스퍼스가 "새로운 것은 진실한 것에 대항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정신요법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역설 의도는 그 전에도 늘 존재해 왔었다.

역설 의도는 환자가 최대한 유머스러운 태도를 취한 만큼 효과를 나타낸다. 유머는 전적으로 인간에게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짐승들은 절대 웃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머가 인간으로 하여금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하고 자기 앞에 어떤 것이 놓여 있든지 그것과 자기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머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으로부터 자기를 분리시킬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해준다. 자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역설 의도의 근본적인 성과다. 역설 의도 기법에 특징인 건전한 의미의 유머가 모든 환자들에게 똑같이 유용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그 질문에 나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은 인간다움이라는 것으로 인해 자기를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우스개 소리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건전한 유머 감각이 운용되는 정도에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신요법은 어느 종류의 정신요법이든지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정도의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 로고테라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정신요법도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정신요법이 사용될것인가를 선택하는데는 환자의 성격적 특성과 의사의 성격적 특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역설 의도가 거둔 놀라운 성과는 이것을 단순히 암시의 차원에서만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내 환자들은 역설 의도가 쉽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에는 성공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여기에 응한다. 다시 말하자면 암시 때문에 성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암시임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거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 암시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환자들에게도 역설 의도는 성과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설득이 선행되지 않고는 역설 의도를 시작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로고테라피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 정신분석 교육을 받은 치료사들은 로고테라피와 같은 방법을 가지고는 진정으로 향상된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치료사들이 '보다 깊은'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병은 그래도 남겨 둔 채 병에 대한 방버벽을 세우고 강화하는 데에만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위험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정신 건강에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이런 요소들이 그들이 내세우는 특수한 이론적 구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어'라든가 '심층에 깔린 것' 그리고 '근본적인 병인의 표면적인 단계에 대한 적절한 기능'과 같은 개념이 경험적인 관찰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순전히 이론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또 다른 정신분석학자인 입실란티 주립병원의 글렌 골로웨이는 역설 의도가 '잠재적이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이 때문에 역설 의도가 효과적인 치료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 얘기하고 있다. 수술로 병든 담남을 제거한 것이지 치료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외고 수술을 모독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어쨌든 환자는 호전되었으니까. 하버드 대학의 외과대학 정신과 교수인 레스톤 하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역설 의도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다음, 우리에게 '낯익은 용어' 즉 '정신역학적인 용어'를 써서 이렇게 대답했다.

" 환자는 금지되어 있는 충동의 짐을 벗어 놓을 것을 권유 받는다. 허락을 받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금지를 풀어 주는 것이다. 정확하게 환자의 금지 사항이 풀렸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프랭클 박사가 권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용어로 말하자면 초자아의 완화에 해당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중재를 한다. 이것이 환자의 가치 기준과 이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상이 부족한 환자에게 프랭클은 새로운 이상을 찾도록 도와준다. 이상이 지나치게 커서 고생하는 환자에게는 그것을 바꾸어 주려고 노력한다. "

이런 이유로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역설 의도를 자기들의 치료에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이런 성과를 정신역학의 용어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 밖에 다른 사람들, 즉 뮐러 헤게만과 같은 사람은 역설 의도를 '신경 생리학적인 접근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공포증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들에게서 좋은 성과를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역설 의도가 좋은 점이 아주 많은 치료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로고테라피의 역설 의도를 적용할 수 있는 증세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적용해서는 안되는 증상이 무엇인지 정하는 것은 이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역설 의도는 정신병적 우울증에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서는 자기 비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의 죄의식을 경감시켜 주는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기 비난 현상을 보고, 환자가 진짜로 죄의식, 즉 '실존적 죄의식'을 느끼고 그 결과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실존주의 정신의학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일의 결과를 원인으로 돌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런 해석은 환자의 죄의식을 더욱 가중시켜 자살을 시도하는 상태로까지 몰고 간다. 어떤 학자들은 실존적 정신의학 분야에서 로고테라피가 정신요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정신요법에다 독특하게 인간적인 요소를 첨가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에게만 있는 두 가지 특성, 즉 자기 초월 능력과 자기 분리 능력이 반응 억제와 역설 의도라는 로고테라피 기법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 [삶의 의미를 찾아서] p.158-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