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감정 표현하기
김현숙(라파미술치료연구원 소장)
민주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입장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도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었지요.어려서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순하기만 했던 민주가 달라진 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언니에게 욕을 하는 등 민주는 가족들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도 종종 있어 부모의 속앓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인 민주를 만나면서 느낀 건 마음 안에 뭔가 풀지 못한 분노 같은 게 존재한다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가족에 대한 불만인지 학교에 관한 것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민주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나는 자유로운 선을 이용해 민주가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도록 해보았습니다. “민주야 눈을 감고 너를 화나게 한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봐. 뭐가 그렇게 널 화나게 하니?”잠시 후 나는 민주에게 눈을 뜨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매직펜, 크레파스, 색연필, 사인펜 등의 다양한 표현매체를 보여주었죠. “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지금 느끼는 분노의 감정을 도화지에 자유로운 선으로 마음껏 표현해봐!” 민주는 먼저 빨간색 매직펜으로 주저함 없이 힘 있고 빠르게 자유로운 선을 그렸습니다. 일정한 방향 없이 둥글리면서 그렸는데 중간 중간 힘을 주어 날카롭게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파란색 매직펜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검정색 매직펜을 이용하여 강하고 단호하게 그림 위에 X를 그려 넣었습니다.
민주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선그리기
그러면서 민주가 하는 말….“빨간색 선은 제 친구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거예요.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해요.”“그럼 민주야, 각각의 선에 제목을 한 번 붙여볼까?”그 말에 민주는 빨간색 선에 ‘분노’라는 제목을, 파란색 선은 ‘원망’, 검정색 선은 ‘이제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못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민주를 굉장히 힘들게 했나 보구나!” 민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2~3년간의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돈은 많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부모를 둔 한 친구와 사귀게 됐어요. 그 애가 착하고 돈을 잘 쓰니까 어느 날 진희(가명)가 그 친구와 사귀겠다고 접근하면서 저도 진희와 자주 만나게 됐죠. 진희는 소위 짱이었어요. 자기 허락 없이는 다른 멤버 누구도 개인적인 접촉을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시켜 다른 아이들의 돈을 뺏어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사는데 사용했어요. 6학년 때는 진희가 자기보다 성적이 잘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서 일부러 시험을 못 보기도 했어요.”민주의 말과 표정에서 그간의 괴로움이 한껏 뭍어났습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진희와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한번은 쉬는 시간에 그 친구들을 찾아가 더 이상 같이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그러면 무사할 줄 아느냐’고 협박을 하는 거예요.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쳐왔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 부엌에서 칼을 가져다 손목을 그어서 살짝 피가 나왔어요. 그때 어떤 친구가 찾아오는 바람에 더 이상의 행동을 못했었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민주는 진희와 다른 학교에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진희와 이제 끝이라고 뛸 듯이 기뻐했던 민주. 그러나… “하굣길 뿐 아니라 컴퓨터 메신저로 자꾸 말을 걸고 괴롭히는 바람에 그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시험 기간에는 더 심하게 괴롭혀서 공부도 못했어요. 걔가 요구하면 또 돈을 줘야 했구요.”“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었니?”“초기에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아빠는 성격상 사람을 시켜서라도 그 아이에게 보복을 한다든가 무슨 일을 낼 것 같았고 엄마는 제게 너무 실망하실 것 같아서 상의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서 눈치 채시기를 바랐는데 아무런 눈치를 못채시는 거예요. 한번은 담임선생님이 눈치를 채시도록 시험 문제를 반만 풀어서 딱 50점을 맞게도 했는데 알아채지 못해서 너무 서운했어요.”컴퓨터 메신저에서 진희 이름만 떠도 가슴이 섬뜩해진다던 민주. 그간 심적 고통이 컸을 텐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짐작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민주가 미술치료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네 번째 만남에선 진희라는 그 친구를 떠올리며 찰흙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도록 했습니다. 찰흙을 반죽하며 느낌을 표현해보기도 하고 찰흙 덩어리를 손으로 때려서 바닥에 던지거나 손바닥으로 눌러가면서 말이죠. 그러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나면 민주는 그때마다 “속이 후련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감정의 정화가 계속해서 일어난 것이었지요.
찰흙을 통한 감정 표현
얼마 후 민주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했습니다.“선생님, 이제 진희 앞에서 당당히 ‘싫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그리고 정말 얼마 후 민주는 자신을 괴롭히는 그 친구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미술치료를 하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자 민주는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민주가 그간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냈으니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겠구나!”“네. 미대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성적이 바닥이라 할 수 있을지 걱정되요. 제가 좀 완벽하려고 하거든요. 공부도 잘하고 싶고, 미술도 잘하고 싶은데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신기한 건요. 1학년 때는 공부 같은 거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가고 싶어요.”지난 2~3년간 나쁜 친구들과의 관계로 삶 전반에 걸쳐 의욕을 상실했던 민주는 친구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자 삶에 대한 목표가 분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민주는 미술치료를 하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자기 자신을 탐색하며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N세대들의 부정적이고 낮은 자아개념이 학교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최근 신문에는 자신의 사생활까지 털어놓는 세대라고 N세대를 일컫기도 했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말하지 못한 채 안으로안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자신의 감정들을 폭력이 아닌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특별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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