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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주름은 흉측해도 영롱해도 다 아름답다

花受紛-동아줄 2010. 2. 15. 22:58

시간의 주름은 흉측해도 영롱해도 다 아름답다

 
  
'빛의 에젠(Ezen)' 주물유리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핑과 프레임 LED 가변설치 2009.
ⓒ 김형순
안종연

박범신은 60대이나 20대 청년 같고, 안종연은 50대이나 10대 아이 같다. 박범신의 내면에는 늙지 못하게 하는 괴물이 있고, 안종연의 내면에는 늙어가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하는 천사가 있는 것 같다. 괴물과 천사는 학고재에서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났다.

 

박범신의 주름은 흉측하게 보이고 안종연의 주름은 영롱하게 보인다. 공통점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절대적이기에 흉측한 것은 흉측한 대로 영롱한 것은 영롱한 대로 아름답다. 여기선 스포츠처럼 그 순위를 매길 수 없다.

 

마음의 주름 펴듯 온기 느껴지는 '빛 드로잉'

 

  
'빛의 에젠(Ezen)' 주물유리 자연석 규석모래 LED 가변설치 2009
ⓒ 김형순
안종연

안종연은 평생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작업해오다 이번에 박범신과 같이 일하게 돼 즐거웠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빛의 에젠'를 보면 마음의 주름을 펴게 하는 따뜻한 온기와 두 작가가 영매자가 되어 같이 연출한 오붓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미술과 문학의 조금 다르다. 미술이 문학보다는 더 압축적이고 종합적이다. 웅장한 장편서사도 하나의 작품에 담을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자와 그림의 주름과 흔적이 시공간에서 화학작용을 하여 상생효과를 낸다.

 

시간의 주름 걷어낸 빛의 '에젠(靈)'

 

  
'빛의 에젠(Ezen)' 주물유리 자연석 규석모래 LED 가변설치 2009
ⓒ 김형순
안종연

'빛의 에젠(ezen, 바이칼호숫가에 사는 부랴트족이 모든 자연과 사람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영)'을 보면 작가가 즐거워서 한 작업이라는 점이 역력하다. 어디 막히거나 꼬이거나 맺힌 것이 없다. 뭉친 실타래를 쉽게 풀어내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치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여백을 살리며 최소의 빛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한다.

 

시간이 팬 주름을 두 작가는 앙상블을 이루며 메워나가고 시간의 제약도 뛰어넘는다. 그리고 마침내 유랑이 끝나는 바이칼호수에 도착한다. 소설 <시간의 주름>에 나오는 문장인 "나의 유랑이 끝난 곳은 그녀가 영원히 눈 감은 바이칼이다"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만화경 속엔 만다라가 따로 없네

 

  
▲ '만화경' 프로젝션 애니메이션 가변설치 2009

이제 '만화경' 이야기로 글을 맺고자 한다. 이는 작가가 어려서 만화경으로 본 낙원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만다라가 따로 없다. 안종연도 "우리네 인생도 생성과 소멸로 매순간 같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삶도 이런 생애 첫 감동과 환희를 변주하면서 시간의 주름을 활짝 펴는 것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