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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만다라 / 임영조

花受紛-동아줄 2010. 2. 15. 22:49

겨울 만다라 = 임영조

대한 지나 입춘날
오던 눈 멎고 바람 추운 날
빨간 장화 신은 비둘기 한 마리가
눈 위에 총총총 발자국을 찍는다
세상 온통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이승이 흡사 저승 같은 날
압정 같은 부리로 키보드 치듯
언 땅을 쿡쿡 쪼아 햇볕을 파종한다
사방이 일순 다냥하게 확 넓어지고
먼 마을 풍매화꽃 벙그는 소리
들린다, 참았던 슬픔 터지는 소리
하얀 운판을 쪼아 또박또박 시 쓰듯
한끼의 양식을 찾는 비둘기
하루를 헤집다 공친 발만 시리다
아니다, 잠시 소요하듯 지상에 내려
요기도 안될 시 몇 줄만 남기면 되는
오, 눈물겨운 노역의 작은 평화여
저 정경 넘기면 과연 공일까?
혼신을 다해 사바를 노크하는
겨울 만다라!

'시간의 주름', 소멸하는 모든 것에 대한 헌사

 

'빛의 에젠(Ezen)' 주물유리 파이핑과 프레임 LED 2009. 빛의 주름, 그 생성과 소멸이 보인다

 

시간은 주름을 만든다. 우주와 인간과 자연에 주름 없이는 생명도 없다. 사람의 성기나 내장이 그렇고 나무껍질이나 우주표면이 그렇다. 보기 민망해도 이걸 미술로 표현하면 그지없이 아름답다. 이번 전이 이를 증명한다.

 

박범신이 사랑의 고뇌로 팬 주름을 썼다면 안종연은 그걸 빛으로 편 주름을 그렸다. 시간과 공간, 삶(생성)과 죽음(소멸)을 넘어 우주의 질서와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한 사람은 주름을 파고 한 사람은 주름을 펴고 오누이처럼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작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