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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굴복하는 자의 행복..

花受紛-동아줄 2014. 4. 28. 09:50

 

 

누구에게 굴복한다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을까. 또 자기 옳음만큼 제대로 증명해 보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굴복이 어떤 일에 대한 승패의 결과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은 일단 차치하고 누구에게 굴복 당한다는 것만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글을 남겼는데 다시 한 번 언급해 보고자 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있었던 실화다. 어떤 사람이 술이 취한 후에 택시를 잡고 기사에게 만원을 주면서 자기 집 아파트 앞에까지 가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고 도착하고서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운전기사가 택시비를 달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술이 취했지만 돈 만원을 준 기억이 분명해서 탈 때에 만원을 주지 않았냐 했고 기사는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것이 실랑이가 되어서 둘은 파출소로 가게 되었다.

 

 

파출소 안에서 경찰은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운전기사는 차분하게 그 사람이 택시비를 안 줬다고 했고 돈을 줬던 그 사람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분명히 만원을 줬다고 기사가 사기꾼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가만히 보니 운전기사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하는데 그 술 취한 사람은 술까지 먹은데다가 고성을 지르고 혼자 분을 참지 못해서 책상을 걷어차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경찰은 그 사람이 술주정한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기물파손죄로 유치장에 구금을 해 버렸다. 유치장에서 사흘을 있다가 나온 그 사람은 억울한데다 분을 삭이지 못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고 가까운 주유소에 가서 신나를 한 통을 산 후에 그 파출소 앞에서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만원을 분명히 줬는데 경찰이 자기 이야기를 안 들어주고 사기꾼 말을 들어줬다고 파출소장이 사과 안하면 신나를 몸에 뿌려 죽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파출소에서는 그런 일이 상시로 일어나는 일이고 저러다가 제풀에 지치면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신나를 뿌렸고 불이 온 몸에 붙어 지나가는 사람이 옷을 벗어 불을 껐는데 이미 그 사람은 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화상을 입어 온 몸이 타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병원에 실려 가고 겨우 생명은 건졌지만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 가족들과 그 사람의 지인들이 병원에 방문했을 때 그 사람은 아직도 만원을 준 부분을 말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다들 그 사람의 하는 말이 맞다고 장단맞춰주며 그 사람을 달랬다.

 

 

어느 날 그 소식을 들은 우리교회 목사님 한 분이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그 사람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기는커녕 큰 소리로 책망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다시 분을 삭이지 못하며 그 목사님을 내어 쫓다시피 했다고 했다. 그 목사님은 돌아서면서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보게 해 주려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나도 더 이상 이 곳 냄새나는 곳에 있기 싫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봐라. 그 알량한 자존심, 자신의 옳음 때문에, 그 만원 때문에 당신의 지금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라. 당신은 다 죽어가고 있고 당신의 가족들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 그냥 그래 더럽지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 아니었냐. 억울한 일이 당신에게만 있느냐. 살아가면서 그런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느냐. 그렇다고 당신같이 그런 식으로 다 해버리면 당신의 몸은 어떠하며 당신의 가족은 어떠하겠냐.’

 

 

그 사람은 돌아서는 목사님의 말을 듣고 비로소 그 때에야 자신의 모습을 밝히 보고는 한없이 후회하며 울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옳음, 자존심, 그것을 때로는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명 판결로 유명한 솔로몬과 두 어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옳음을 버리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임을 알 수가 있다. 자신의 아이인데도 솔로몬이 칼로 아이를 반으로 가르자고 했을 때 실제 아이의 어미는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아서 자기 아이인데도 자기 옳음을 포기했고 결국은 도로 그 아이를 찾는, 생명을 얻는 결과를 얻었다. 우리가 아는 그 ‘판결할 판(判)’자가 바로 그 성경의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지 않는가. ‘반 반(半)‘자와 ’칼 도(刀)‘자 말이다.

 

 

자신의 옳음과 자존심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때론 버려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명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 한 평생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신후사(身後事) 즉, 죽은 후에 되어질 일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지금까지의 경험한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미물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을 우리는 우리 지혜로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생각을 버리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는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너무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자기 옳음과 자존심 때문이다. 지옥으로 달려가는 기차를 타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종착역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왜 차를 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 결국은 어떤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는 말씀을 분명히 알고 천국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했다 (요1:1)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자존심 상하는 일같이 보일지는 몰라도 자기 생명을 얻는 놀라운 은혜의 길임을 정말 알아야 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2014. 3. 17(월) 태산박

 

 

출처 : 여행노트
글쓴이 : 태산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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