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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춘 장고춤의 백향주님

花受紛-동아줄 2010. 1. 13. 14:20






< 2003 백향주 무용공연 -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서 >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서'라는 부제를 단 < 2003 백향주 무용공연 >이 지난 9월 2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다. 한 폭의 정물화가 아름다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던 이 날 공연에서 백향주는 내밀한 서정적 울림과 떨림이 가득 찬 5개의 독무들을 소담스럽게 만들어 나갔다.

초록빛 부채를 든 백향주가 연푸른 상의에 검정 흙빛 치마를 입고 유연한 움직임을 이루던 <우조춤>은 옥피리 소리에 맞춘 화려한 회전이 눈부신 영상이 되어 무대를 가득 채워 나갔다. 붉은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백향주가 몸을 빠르게 휘두르다가 허공에 꽃잎처럼 휘날리고 있던 <무녀춤>은 우리 전통춤의 깔끔한 전범을 단아하게 구축해 내고 있었다.

중국 태 족 창작 무용인 <공작새 춤>에서 백향주는 맑고 신비로운 새소리 속에서 섬세한 움직임을 환상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발레의 포드브라 움직임처럼 예쁘게 팔을 흔들어 주다가 깨끗한 검정 실루엣을 만드는 상큼한 마무리를 이루어냈다.

몸 전체가 보석이 된 듯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정지해 있던 <천상의 무희>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두 팔을 쭉 뻗어 주다가 몸을 낮게 하여 뒤로 휘어주기도 하고 계란 빛 긴 천을 허공에 우아하게 뿌려주기도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기품 있는 보살이 되어 천상의 세계,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 두 손을 조용히 합장하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객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붉게 타오른 무대에 장고를 멘 백향주가 때로는 밑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담백한 움직임을 만들기도 하고, 또 때로는 기민한 회전 움직임을 열정적으로 이루기도 하던 <영춘장고춤>은 백향주가 빼어난 전통의 기교를 가진 무용수임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백향주는 이번 공연에서 우리 전통의 실제 움직임의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는 한 편, 이 강건한 뿌리에서 쏟아내는 무대 예술적 언어를 화려하게 꽃 피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단지 여기서 이제 백향주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이루어야 될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세계를 더욱 뚜렷하고 폭 넓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춤이든 서양 춤이든 한 무용가의 완결은 자신의 스타일의 완벽한 구축에서 나타난다. 물론 이 말이 지금까지 자기가 배우고 닦아 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요하다면 외국의 안무법도 배우고 무용 기법도 익혀서, 자신만의 무용 스타일을 객석과 무용계 전체에 선명하게 각인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승희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자기가 여러 스승으로 부터 받은 영향들을 몸과 마음에 완전히 녹여서 받아들인 후,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서’ 자신의 무용 세계를 찾아야 한다. 이 작업은 백향주 자신에게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우리 무용계 전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칼럼]


 

"한국 무용의 신화, 최승희를 넘어"

최승희 춤의 재현으로 널리 알려진 무용가 백향주가 한결 깊어진 자신의 무용세계를 표현하고자 2003년 9월 24일 오후 19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무대를 갖는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춤 꾼으로 살아온 백향주는 무용가인 부친의 뒤를 이어 두 살 때부터 클래식 발레와 전통무용을 시작했다. 무용가 양성 엘리트 과정을 밟던 16세에 중 국비장학생으로 중국에 유학을 떠났고 일본, 러시아, 북한, 중국의 여러 곳에서 다양한 춤을 배웠다. 중국 전통무용과 소수민족춤, 러시아 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레퍼토리와 200회에 가까운 공연 경력을 자랑하는 탁월한 춤꾼이다.

백향주가 최승희 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5년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1995년과 1996년 2년에 걸쳐 북한의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창작가이며, 최승희의 양아들인 김해춘으로부터, 전설의 무희 최승희의 춤 <무당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와 <관음보살춤>의 안무, 창작지도를 받았고 그 후부터 "최승희의 재래"라는 찬사를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8년 처음으로 최승희의 춤을 선보여 큰 화제와 찬사를 불러일으켰고, 백향주의 최승희 춤 재현이후로 최승희 춤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남북한 춤 전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무용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킨 백향주가 최근에는 한국의 전통무용과 정신세계를 배우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전통예술원 무용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다시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조총련이었던 그녀가 일본, 북한, 러시아 중국등지에서 차례로 춤을 배우고 한국 무용을 연구하고자 한국에 머물면서 전통 무용의 깊은 내면세계와 접하게 될 이번 과정은 그녀의 무용세계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이다.


P R O F I L E

75년 도쿄에서 태어난 백향주는 2세 때부터 북한 금강산가극단 출신 무용가인 아버지백홍천으로부터 클래식 발레와 조선민족무용을 배웠다. 6세부터 평양을 드나들며 무용공부를 하였고, 9세부터 북한 만수대 예술단에서 공부하였다. 11세에는 이미 김일성 주석 앞에서 단독무용을 선보일 만큼 그 탁월함을 인정 받았고 12세에는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러시아 발레를 익혔다.


무용가 엘리트 양성과정을 밟던 16세에는 국비장학생으로서 중국 국립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부로 유학을 떠났다. 이 후 중국 무용계의 권위자 챠죠광 선생을 비롯하여, 지복자 부교수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저명한 교수들로부터 중국고전무용과 10여가지의 소수민족춤을 직접 지도받았다. 1991년 중국 전국무용콩쿨 주니어부문에서 금메달 수상, 1993년에 제4회 북경 창작무용콩쿨에서 1위 입상 등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1994년 7월에는 국립중앙민족대학을 최우수생으로 졸업한다.


1995년과 1996년 2년에 걸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인,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창작가 김해춘으로부터 <무당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와 <관음보살춤>의 안무, 창작지도를 받았다. 이 후 한국 국적의 무용가 정민으로부터 <승무>, <교방무>, <살풀이>등의 남한 무용을 배웠고 한국무용인 국수호로부터 춤극 <논개>와 윤이상 음악에 맞춰 안무한 <신무>, <일월성>을 창작 안무받았다.


1999년에는 춤의 대가들만 설 수 있다는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한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단독 공연을 가졌고, 2000년에는 일본 히타찌시에서 열리는 전통예능제에 특별출연하여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2001년에는 한국인으로서 처음 일본문화청 예술제 무용부문에 참가하였다.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홍콩, 싱가포르, 프랑스, 스페인,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등 세계 각국을 오가며 무용을 익힌 백향주는 전통무용과 현대무용, 북한 무용, 몽골, 타이등의 소수민족무용, 중국무용과 러시아 발레까지 60여 가지의 폭 넓은 레퍼토리를 가졌으며 지금까지 200회에 가까운 공연을 가졌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무용과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R E V I E W S

o 무용가 백향주가 국경을 너머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는 모습은, 1930년대부터 아시아와 구미 각국에서 공연활동을 행하고 조선무용의 개척지를 연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부활이라고까지 말해지고 있다. -일본每日신문 1997년 12월 18일

o 백향주의 춤 기량과 표현력의 요인이 10대 나이 때 다양한 춤들을 배울 수 있었던 교육 과정에 있고 보면 백향주의 이번 공연은 한국의 무용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최승희 이론 역시 남북한 춤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남한 춤의 어떤 것이 부족하고, 북한 춤이 남한의 어떤 것들을 배워야 하는지를 남북한의 무용인들은 무대 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월간 객석 1998년 8월

o 그는 아름다웠고 맵시가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 달이 뜨듯 무대가 훤해졌다.
- 한겨레21 1998년 7월 10일 정재숙 기자

o 백향주는 최승희의 두 가지 작품을 재현하면서 최승희가 춤췄던 당시의 음악과 의상 등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시켜 놓았다. <무당춤>에서는 연풍대 동작과 신기가 올라 발을 구르며 뛰어오르는 동작, 빠른 회전 동작등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해냈다. oooooo 지난해 공연한 <보살춤>은 의상이나 춤의 분위기에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최승희의 대표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정교한 재현이었다.
- 동아매거진 뉴스 플러스 1999년 6월 무용평론가 정광열

o 백향주의 춤은 활력 있고 빠르고 과감하다. 동서양의 다양한 춤으로 기본을 탄탄히 다진 백향주는 화려한 기량과 함께 표현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조선일보 2001년 4월 19일 정재연 기자

o 우리의 유행과 무관하게 꾸려져 온 또 하나의 우리 춤을 보며 우리 지도 국경선 밖에도 장성한 우리 춤이 있다는 사실에 뭉클해진다. 또 백향주를 지도한 최승희 수제자라는 김해춘씨 등을 생각하며 우리 춤이 앞둔 큰 만남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 진옥섭 무용평론가

o 강렬한 시선, 맺고 푸는 동작 구사, 볼륨 큰 동작 등 백씨의 춤에는 최승희 춤의 원리가 녹아있다. 그러나 그녀의 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발레처럼 선의 미를 보이기 위한 동작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작표현은 백향주 식으로 풀어낸 최승희 춤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 무용평론가 정병호

 

출처 : 정원기의 국악 아카데미
글쓴이 : 세요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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