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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감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어떻게 느끼

花受紛-동아줄 2009. 1. 26. 22:37

오늘날 한국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감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한국 교회는 보통 민주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전도회 활동을 하면서 보니까 여전히 한국 교회의 대다수의 여성들은 남성의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걸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보통 교회에서 남성이 재정 부장을 하면 여성은 차장을 합니다. 비록 한 여성이 장로가 아닌 권사라고 해도 그가 전문성을 가졌다면 그것을 활용해야 민주적일 텐데, 교회는 여성 전문 자원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너무 인색합니다.
만약 교회 안에 신앙이 좋은 여교수가 있다면, 그가 여자라 할지라도 전문인이기에 교육 부장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이 뒷받침된 사람이 어떤 한 분야에서 능력과 전문성을 갖췄다면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성적 차별 없이 누구라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교회가 여성 자원을 잘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경직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교의 당회가 그렇습니다. 당회는 최고 결정 기관입니다. 당회에 여성이 안 들어가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여성이 거의 안 들어가죠.
가장 기가 막히는 것은 사회를 주도해야 할 교회가 사회보다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교단만 해도 6,200여 개의 교회가 있는데, 아직도 여장로나 여목사 없는 교회가 태반입니다. 교회에서 절반 이상이 여성인데도 말입니다.
최고 결정 기관인 당회에 여성 대표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는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이고 기가 막힌 일입니까?
가정에서도 사랑을 만드는 어머니가 없으면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여성이 생명을 가꾸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여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여성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스갯소리로 한국 교회의 당회를 보고 별명을 하나 지었습니다. ‘홀아비 당회’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한국 교회가 계속 ‘홀아비 당회’로 나가면 안 됩니다.
여성이 없는 곳은 자꾸 경직됩니다. 흔히 저에게 여권 운동을 했다고 평가하는데, 저는 여권 운동을 모성애 회복 운동이라고 해석합니다.
남자 꼭대기에 올라가 앉는 게 여권 운동이 아니죠.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실 때 ‘돕는 배필’이라고 하셨는데, 이 ‘배필’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 남편에게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했으면, 남편을 돕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자는 잠언 31장에 있는 내용처럼, 남편이 성문 높은 자리에 앉도록 힘을 쓰고 그 가문을 빛내도록 돕는 존재입니다. 도무지 남편을 돌아보지 않고 가문도 생각지 않으며 여권 운동한다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거죠.
당회라고 하는 데는 남자들끼리 앉아 있어선 안 됩니다. 거기에 여성이 좀 섞여 있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도 더 맞지요. 여자가 부재하면 교회는 냉랭해집니다. 어머니라고 하는 특성이 따뜻하고 부드럽기 때문이죠. 또 희생, 인내, 조화 등 이런 것들이 대부분 여성에게서 나오기 때문이고요. 비록 한 명의 여자라도 당회에 들어가서 여자의 특성을 발휘하게 되면, 한국 교회가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목회 및 당회의 운영이나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 여성 자원들이 훌륭하게 훈련을 받아왔잖아요? 남자만 대학을 나온 게 아니고 여자도 대학을 나왔고, 또 여성들 중에도 전문인들이 많아요. 따라서 사역 측면에서라도 남녀가 동등하게 파트너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모성애 문화를 창조한다는 명분을 강조하기에 앞서, 사역 측면에서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녀의 파트너십이라는 것은 동등하면서도 차별성이 있습니다.

남녀의 파트너십이 어떤 면에서 차별성을 갖는지요.
여성 지도자들도 목사로 사역합니다. 그런데 이때 여성으로서 모성애를 망각한 채 사역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목사들이 자기가 목사이고 지도자라고 해서 너무 어깨를 뻣뻣하게 해선 안 되지요. 겸손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야 하죠. 결혼을 했든 독신이든 여성에게선 어머니의 냄새가 풍겨야 합니다. 여자가 지도자라고 걸음걸이마저 남자처럼 하면 별 모양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선 결코 여권 운동이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보편적으로 남성이 권력 지향적이고 강하지만, 여성은 조화와 부드러움과 인내라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의 성향에 여성의 장점들을 더하면 교회는 더욱 바람직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여성 지도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여전도회전국연합회를 섬겨 오셨는데요, 어떤 철학과 훈련 원칙을 갖고 이끌어 오셨는지요.
건물을 지을 때나 교육원을 하면서도 늘 강조해온 교훈과 이념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성경을 사랑하는 교회 여성 지도자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관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이고,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하는 겁니다. 셋째는 선교에 대해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희 여전도회의 근본 목적이 선교와 교육과 봉사이기 때문에 선교학 강의를 1년 교과 과정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킵니다. 넷째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바로 목회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여전도회는 목회의 협력자로서 돕는 역할을 빠지지 않고 가르칩니다. 다섯째는 교회의 여성들은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단순히 여성학보다 여성 지도자론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을 평가하며 옳고 그름을 분석할 수 있는 지도자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기독교와 정치, 기독교와 경제, 기독교와 법 등의 과목들을 2년 동안 강의합니다. 지금은 인터넷, 대중 매체, 상담학 등 일반 교양도 강의합니다. 매학기 보통 350명 정도 수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특별히 강조하시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저는 협력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장로도 권사도 모두 목자를 돕기 위한 존재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여전도회라는 기관 자체가 목회자를 협력하는 것입니다. 여전도회도 교회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철저히 목회자에게 협력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여전도회도 운영이니까 정치가 필요해요. 정치는 나쁜 게 아니라, 어떻게 행정적으로 잘 운영해 나가야 하느냐는 문제죠.
한국 교회는 아직도 똑똑한 여성보다 후덕한 여성을 좋아해요. 때로 똑똑하다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이런 사람들이 알아 달라고 자신을 약간씩 드러내는 경향이 있지요. 이런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는 거 같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후덕한 사람이 교회에선 언제나 더 좋게 평가되는 것 같아요. 여성 장로 1세들을 보니 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뽑히더라고요.
반대로 ‘저 권사님은 똑똑한 분이신데, 어째서 아직 장로가 안 되셨을까’하고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은 굉장히 마이너스가 돼요.
이런 이유로 저희 여전도회 임원들은 교회에서 성실하고 담임 목사님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돕는 사람을 발탁해야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저희 통합 교단은 교회 여성이 130만 명이 넘어요. 이렇게 거대한 단체가 걸어 나가는데 긍정적인 인물을 발탁해야지, 만약 교회에서 부정적으로 낙인찍힌 사람을 발탁해선 곤란한 거죠.

이렇게 개발된 여성 인력들의 활동을 통해 교회에서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는지요?
여성 안수 건이 통과된 일이죠. 저는 몇 십 년 간 강의해 왔는데, 마지막에는 언제나 “여성 안수가 없으면 안 됩니다. 창피하지 않소?”라는 한 마디를 잊지 않습니다.
한 번은 미국에 가서 어떤 목사와 성찬에 관련해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때 아직도 한국에서는 여성 안수가 확산되지 않아 여성들이 성찬 집례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했더니, 그 미국인 목사가 하는 말이 “미개한 교단이군요”라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강의 때마다 꼭 했죠. 그렇게 해오다 보니 피드백으로 “여자도 안수를 줘야겠구나”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또 어떤 남자 목사님은 저를 보고 이러시더라고요. “이연옥 회장, 교육원에서 그만 강의하지요. 우리 권사들은 거기에 갔다 오기만 하면 이연옥 회장이 하는 얘기를 자꾸만 하고 다니는데,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됩니까?” 목사님들이 웃으면서라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여성 지도력 개발에 힘써온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저희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이루는 데 좀 공헌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성 장로가 잘 세워지지 않는 이유는 목회자와 장로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폐쇄적인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성 신도 자신들이 여성 장로나 여성 목사를 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성 신도들의 의식이 깨어나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또 교회들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면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전통 문화 의식이 아직도 잔재해 이것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하나는 여자 장로를 세우면, 남자들은 자기들이 장로가 안 되니까 여기에 구애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여성 신도들도 교회를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인척 관계와 같은 것들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당한 장애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여성 장로 1세대들을 보면, 장로의 부인들이 꽤 많더라고요. 한편 당회에서 결의하기를 남편이 장로인 경우에 아내는 장로를 할 수 없다고 못 박아 놓은 교회도 있고요.

후자의 경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반대하죠. 민주주의는 단서가 붙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동등하게 경쟁하는 게 민주주의죠. 남편은 남편이고 아내는 아내이잖아요? 지금까지 형제간에 장로가 되어 함께 있는 교회도 있고, 아버지와 아들도 함께 장로로 섬기는 교회도 있는데 부부 장로가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런데 가족이 함께 장로가 되는 경우에 대해 실제로 목사님들이 장로님들보다 좀더 반대편이 많더라고요. 한 가정에 두 분이 들어오게 되면,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 가정에 두 분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 목사님들이 계신데, 지금은 장로의 부인이 장로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두 분이 장로가 될 경우에 서로 인척 관계라는 게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양보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인 것 같은데요.
목사님들이 당회를 운영해 나가는 데, 부부라든지 형제라든지 다른 어떤 형태로든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해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이것은 목사님들이 굉장히 싫어할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한 가정에서 내외 모두 장로가 되었다면 교회에서 누구보다도 겸손하게 목사님을 도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여성 장로 1세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대부분이 내외가 장로시더라고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교회의 목사님들이 모두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장로님의 내외는 겸손하세요. 특히 여성이 겸손합니다.
두 분이 되었을 경우에 굉장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목사님의 목회 활동에 압력이나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려 하십니다. 그 교회의 장로님이 열댓 분 되는데, 두 분이 딱 버티고 있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겸손하게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모두 그렇게 좋아하시고요.
그러니까 부부이든 어떤 형태이든 여성이 갖고 있는 모성적 능력을 어떤 위치에서라도 발휘한다면 목회에 더 협력이 되면 되었지 잘못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람에게 달린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죠.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주신 모성애가 교회의 회복과 화합에 유익하게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여성을 만든 것은 생명을 양육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이 생명이라는 게 사랑을 먹지 않고선 자라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목회하기 힘들어하실 때도 어떤 여장로님은 계속 격려해 주시는 겁니다. 그냥 “목사님 힘내세요”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좋아지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그 여장로님 아니었으면 벌써 보따리 싸 가지고 어디로 갔을 거예요.” 이것이 여성 장로로서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교육가로 살아오시면서 한국 교회 여성들과 특별히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기독교 교육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교육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런데 정작 이 목적보다 다른 게 강조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답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할 것 없이 한국의 어머니들만큼 교육에 열의 있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열성 있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학교나 학원에만 맡기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겁니다. 인간을 만들기 위해 교육하는 건데, 정작 교육이 가정 밖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한 명의 어머니가 백 명의 교장보다 훌륭하다”라는 미국 속담이 있듯이, 자녀는 자기 가정에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몸소 느끼면서 교육을 받아야 그 교육이 아이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춘기 때 중·고등학생들의 인성 개발은 대개 공식적 장소인 교실보다 비공식적 장소에서 나누는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뤄지죠. 벤치에 앉아서 자기가 존경하는 스승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됩니다. 목사가 힘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학 교수는 지식을 전하면 그것뿐이지만, 목사는 설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화를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화는 한 사람이 말하는 메시지를 통해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과 인격과 메시지의 총체적 전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 가지가 합쳐져 다가올 때, 감동이 되죠.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을 교육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그리 생각지 않아요. 감동이 있어야지요.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멘토를 만나는 게 참 중요합니다. 자기 부모라든지 형이라든지 언니라든지 누나라든지 교회 목사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통한 예수님이라든지 누구라도 신앙적 모범이 될 만한 멘토를 만나 인격적 교제 속에서 신앙 양육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교육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단순히 도시에 있는 교회들만 섬기는 차원을 넘어 전국적인 차원에서 농촌 교회들도 살리기 위해 힘써야 할 줄 압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1년에 두 번 단기 과정이라는 것을 하는데, 대략 250명 정도 참석해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5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집중적으로 단기 교육 과정을 갖습니다.
지방에 거주하시는 성도들만 참여합니다. 회장은 필수로 참석하고, 임원들도 함께 하도록 독려합니다. 이렇게 1년에 두 번 훈련합니다. 단기 과정을 할 때는 서울 거주자들은 제외시킵니다.
그리고 저희는 농촌 교역자님들과 사모님들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고 섬기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몇 백만 원의 예산을 세워서 충당하고 있죠. 사모님들이 그 지역 사회에서는 지도자거든요. 이처럼 여성 지도자 개발을 위해 농어촌 교역자 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여성 지도자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성령을 사랑하는 목사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쇼로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설교에서 성경 한 줄 딱 읽고 성경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이 이야기만 합니다.
모두 순수하겠지만, 제 입장에서 보면 젊은 목사님들이 좀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연구해서 설교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 들어, 예배가 다소 소란하고 쇼적인 면이 있지 않나 생각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목사님들은 예배의 경건함을 고수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여성도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녀를 싸우면서 일하라고 지으신 게 아니라 서로 평화스럽게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목회 현장에서도 여성이 화목과 화합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이 특유의 모성애로 목회지를 더욱 부드럽고 온화하게 가꿔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object TEXTA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