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탐구 사후세계는 어떤 곳인가<7> 불교는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
중생에 삶과 죽음은 서로 충돌합니다. 삶은 죽음을 거부하고, 죽음은 삶은 밀쳐냅니다. 둘은 그렇게 상호 배제적이고 모순적입니다.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실로 받아내기 힘든 고통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화해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삶과 죽음이 따뜻하게 만나는 통로는 없을까요. 불교도들은 죽음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면서 삶의 무게를 더 해가는 지혜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해법은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벽을 허물어 서로를 소통시키려면 무아 무분리 무소유 무집착의 지혜를 깨닫고 그 힘을 키워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생의 모든 내용물들을 분리와 소유와 집착으로만 끌어안지 않는다면 죽음은 비로소 단절과 상실이 되기를 그칠 터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담담히 안을수 있는 것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붓다의 가르침= '목련 비구 어머니의 지옥 사건'은 불교의 생사관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목련경'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생전 악업의 과보로 아귀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목련(目蓮) 비구가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우안거 해제 전날 수행승들에게 대중공양을 올리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힘에 의해 스스로 발심 참회하고 천상계로 올라 깨달음의 길로 나아갑니다.
정말, 천상 지옥 극락이 있는 것일까? 죽으면 그만 아닐까? 그저 착하게 살라는 얘기 아닐까? 이 목련 비구의 사건을 놓고 이렇게 본질적인 문제까지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행복을 위하면서 행복을 구하는 다른 이들을 해친다면, 그는 다음 생에서도 결코 행복을 찾지 못하리. 자기 행복을 위하면서, 행복을 구하는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는다면 그는 다음 생에 반드시 행복을 찾으리." 붓다는 '다음 생'에 대해 이같이 단순 명료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밧티 거리에서 뱀을 잡아 괴롭히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준 붓다의 설법으로, '법구경'에 기록돼 있는 사건입니다. 이 설법을 듣고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서 깨달음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불교에서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악의 업(業) 보따리를 짊어지고 선하고 악한 세계를 오가는 윤회전생(輪廻轉生)은 누구도 부정하거나 피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아귀지옥에서 굶주림으로 허덕이는 목련 비구의 어머니 모습은 어쩌면 멀지않아 당면하게 될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발심한 수행자는 지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토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깨닫기만을 추구합니다. 삶을 삶으로 보고 죽음을 죽음으로 볼 수 있는 부동의 깨달음에 이르기를 갈망합니다. 그런 까닭에 수행자들은 차라리 지옥의 수렁 속으로 뛰어듭니다. 병들고 굶주리고 고독해 하는 이웃들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헌신봉사야말로 가장 단순명료한 깨달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순수헌신이야말로 불성을 드러내는 최선의 수행이기입니다.
◇불교의 생사관= 불교에서는 죽음을 인간으로서는 피할수 없는 현실로 보았습니다. 이 현실의 냉혹한 자각을 통해 죽음이라는 실상을 초연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진실을 체득함으로써 현실적 죽음의 문제가 극복된다는 것이 붓다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극복을 통해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후의 존재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식이었습니다. 즉 삶에도 번민하지 않고 죽음에도 번민하지 않는, 생명에 대한 추구였습니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업과 윤회를 벗어난 경지로서 번뇌를 꺼 버린다는 원의를 지닌 열반입니다.
죽음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불교의 궁극적 인식인 '생사열반(生死卽涅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도가 됩니다. 불교에서의 죽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며 마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무심(無心)의 상태, 즉 적정(寂靜)이며 열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때 해결됩니다.
붓다께서 기존의 종교와 사상체계를 거부하고 출가수행해 홀로 도를 닦아 깨닫고 부처님이 되신 가장 중요한 명분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야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풍토가 싯달타 태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붓다께서 깨달으신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생로병사를 있게 한 요인은 마음속의 번뇌망상이고 나를 위주로 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기준해서 지나치게 세운 기대가 어긋난다고 할 때 괴로운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뜰 앞의 단풍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나,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 보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체험을 하신 게 부처님의 생사관의 특징입니다.
갈 것은 갈 때가 되면 가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강물이 흐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고이면 썩게 됩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야 영원히 푸르고 아름다운 거지요. 붓다나 큰스님들도 앞산에 구름이 생겼다가 진 것처럼 가셨습니다. 물질로 된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무상법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봅니다. 때가 됐으니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목표는 생사를 두렵지 않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떳떳이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자의 생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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