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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花受紛-동아줄 2012. 3. 6. 10:37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의 단어다. 가장 싫어하는 숫자가 4이고 엘리베이터 4층은 F로 표시되어 있다. 임신부는 상가(喪家)에 가지 않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재수 없다며 꺼린다. 한국죽음준비교육원 이병찬 원장은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 말한다.

 

나를 위해, 남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는 죽음 최근 사회적으로 어떻게 죽는 것이 인간답게 죽는 것인가라는 문제 의식이 대두되며 품위 있게 죽자는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죽음학에 대한 연구도 다양화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죽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교육하는 기관은 많지 않다. 이병찬 원장은 10년 넘게 죽음 준비를 교육하며 행복한 죽음 준비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안타까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말이 되었어요. 병원 침대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며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가 인식한 죽음의 전부죠.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본인은 물론 남은 사람을 배려하는 여유를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스스로 죽음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주변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있을 때 그것이 품위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죽음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며 웰다잉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다. 한편에서는 자살예방을 목적으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들이나 말기 암 환자를 중심으로 웰다잉을 교육하고 있다. 이 원장은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것"이 웰다잉이라고 말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웰빙이라면 그 안에 잘 죽어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오랜 명언은 알고 있지만 현재 자신이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게 마련이에요. 이건 아픈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생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죽음은 상관이 없다고 믿고 싶어 해요. 젊을 사람일수록 죽음을 생각하기를 더욱 거부하고요.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 많아졌어요. 죽음이 노인이나 암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잘 죽는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정한 의미의 웰다잉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어디서 왔고 누구로부터 왔는지, 왜 존재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삶을 생각하지 않고는 죽음을 준비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한 번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삶을 생각하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져요. 웰다잉이 웰빙으로 이어지는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당장 내일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오늘을 헛되이 보내겠습니까. 역설적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면 희망이 보입니다."

자아 성찰과 입관 체험 통해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다. 아무리 스스로 성찰하고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면 웰다잉이라 할 수 없다.

 

"교육을 받는 젊은 분들께 인생에 하루의 시간이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여행을 간다거나 연애를 하겠다고 대답하세요. 죽음 준비 교육 중 큰 틀이 바로 죽음 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슬픔 즉 사별의 슬픔을 완화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유언 한마디 없이 죽는다면 남겨진 사람은 그 슬픔을 영원히 가슴에 안고 갑니다. 그 슬픔이 상처가 되고 화가 돼서 한으로 남는 거예요. 남겨진 한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는 거죠."

죽음을 반드시 특별한 계기로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이 원장은 임종 노트 쓰기를 권한다.

"임종을 앞두고 남기는 말을 하루 하루 일기 쓰듯이 임종 노트에 쓰면 그것이 바로 나의 유언장이고 기록이 될 수 있어요. 정말 죽기 전에 쓰는 유언장이 아닌 하루 하루의 삶을 반성하고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되는 거죠. 임종 노트라고 해서 꼭 죽음을 떠올리는게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이 원장이 죽음 교육을 시작한 건 15년 전 불치의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오면서부터다. 병원에서도 힘들다는 말을 들은 그는 조용히 죽음을 맞기 위해 산속에 들어갔다. 욕심과 탐욕, 집착이 만병의 근원임을 깨달은 건 그곳에서 죽음을 준비하면서다. 죽음을 마주해봤기에 죽음을 앞둔 이들의 절망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한국죽음준비교육원도 그러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주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직원들 교육 차원으로 이루어지던 단체 교육이 요즘은 동네 이웃끼리 혹은 대학교 동아리에서도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 교육은 임종 노트를 쓰며 자신의 본질을 깨우치는 성찰 교육과 실질적으로 자신의 영정 사진을 마주해보고 관에 들어가는 입관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임종 노트를 쓰면서 대부분 많이 우세요.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했던 점, 하지 못했던 말, 많은 후회와 반성이 죽음 앞에서 눈물로 씻겨 내려가는 겁니다. 그렇게 성찰을 하고 입관 체험을 한 분들은 정말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세요. 한번은 이혼을 앞둔 부부가 와서 교육을 받았는데 부부관에 들어가 서로 미안하다 말하고 관에서 나올 때는 손을 잡고 나오시더라고요. 죽음 교육을 통해 삶의 희망을 얻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저 역시 삶의 희망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