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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트라우마치료

花受紛-동아줄 2011. 12. 27. 14:14

상담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 중에 투사(projection)라는 것이 있다. 자기 내면의 욕구나 갈등을 자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으로 돌리려는 심리를 말한다. 사람들은 주로 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욕구를 투사시키곤 한다. 동생이 미운 형이 자기가 동생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동생이 자꾸 자기에게 시비를 건다며 화를 내는 경우라든지, 이 세상에 자기에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못하고 있다며 한탄하는 과체중자의 경우 투사를 하는 셈이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경우에도 투사가 이루어진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금지된 곡들은 지금 보면 거의 다 별다른 뜻 없이 씌여진 가사들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귀에는 그게 자기들 욕하는 것으로 들렸다는 건데, 결국 무의식속에 자기들이 욕먹어 싸다는 죄책감이 가수들의 노래 속에서 들려온 셈이다. 그런데 투사의 또 다른 흥미로운 용도는 아주 어린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다. 성폭행 같은 충격적인 경험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자기가 겪은 일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고 인형놀이를 시키면 자신이 겪은 일을 인형을 통해 드러낸다. 스스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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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인베이젼-인형놀이를 통한 미군의 트라우마 치료

08/06/2011 03:33 pm공개조회수 6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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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 중에 투사(projection)라는 것이 있다. 자기 내면의 욕구나 갈등을 자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으로 돌리려는 심리를 말한다. 사람들은 주로 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욕구를 투사시키곤 한다. 동생이 미운 형이 자기가 동생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동생이 자꾸 자기에게 시비를 건다며 화를 내는 경우라든지, 이 세상에 자기에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못하고 있다며 한탄하는 과체중자의 경우 투사를 하는 셈이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경우에도 투사가 이루어진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금지된 곡들은 지금 보면 거의 다 별다른 뜻 없이 씌여진 가사들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귀에는 그게 자기들 욕하는 것으로 들렸다는 건데, 결국 무의식속에 자기들이 욕먹어 싸다는 죄책감이 가수들의 노래 속에서 들려온 셈이다. 그런데 투사의 또 다른 흥미로운 용도는 아주 어린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다. 성폭행 같은 충격적인 경험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자기가 겪은 일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고 인형놀이를 시키면 자신이 겪은 일을 인형을 통해 드러낸다. 스스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요런 티저광고 까지는 좋았음.


<월드인베이젼>도 어쩌면 미군의 투사된 인형놀이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는 이 영화를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일단 <클로버필드>의 군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뜬금없이 외계인이 침공하고 훈련받던 군인들의 일상은 실전 상황으로 돌변한다. 카메라는 클로버필드처럼 계속 흔들리고 등장인물들의 배경이야기도 거의 없다. 솔직히 이 영화에 스토리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인디펜던스데이>조차도 다양한 인간들이 외계인 침공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도입-전개-절정-결말이라는 구도를 따랐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오로지 전투만이 있다. 군인들이 주구장창 총만 쏴대는 영화 <블랙호크다운>에도 군인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날줄과 씨줄처럼 엮여있었지만 여기엔 그런 것도 없다. 서로 엮이는 이야기라 해 봤자 낸츠 상사(아론에크하트)와 로켓(코리하딕) 이병 사이의 어린애 투정 같은 갈등뿐 인데, 그 조차도 몇 마디의 대화로 깨끗이 해결되어버린다. 그 나머지를 채우는 건 우주 먼 곳에서부터 지구까지 고작 ‘물 뜨러온’ 외계인과의 끝없는 전투뿐 이다. 그럼 인형놀이는 어디서 벌어질까?


이스라엘 가자지구 포격 장면이랑 판박이인 영화


일단 영화 속 낸츠 상사를 보자. 그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자기 분대원을 잃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아프간이나 이라크의 전쟁이라는 게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과는 많이 다르다. 영화 <허트로커>가 묘사했듯, 매일 동네 순찰을 돌다가 땅바닥이나 자동차에 숨겨진 원격조종폭탄에 팔다리가 날아가고, 어디선가 날아온 저격에 죽는 일의 반복일 뿐이다. 이 전투의 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민간인들 중에 핸드폰으로 원격조종폭탄의 스위치를 누르는 이가 있겠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가 없다. 미군은 이런 전쟁을 하려고 훈련받지 않았으며, 이런 전쟁을 하자고 최첨단 탱크나 전투기를 개발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냉전도 끝나고 소련도 해체된 지금 전면전으로 미국을 상대할만한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2009년 기준으로 미군의 군비는 전 세계 군비의 46.5%를 차지했다. 2위는 중국인데 고작 6.6%를 차지했을 뿐이다. 그 차이가 어떤 건지 예를 들자면, 미국에는 항공모함이 12척이 있는데, 그만한 크기의 항공모함은 러시아에 딱 한척 있을 뿐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중소형 항모가 몇 척 있긴 있는데, 미국은 그런 쪼만한 항모는 따로 12척을 더 가지고 있다. 그러니 미국과 나머지 전 세계가 맞장을 떠도 미국이 이긴다는 말이 나올 법 하다.



또한 다들 아시듯 최근 미군이 벌인 전쟁들 중에서 정정당당한 전쟁도 없었다. 이라크전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침략이었다. 아프간은 빈라덴 잡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침공했지만 빈라덴과는 상관없이 전쟁은 꼬이고 있다. 미국이 음양으로 지원하는 이스라엘이 중동이서 벌이는 난장판은 또 어떤가. 사소한 분쟁을 빌미로 민간인 거주지에 백린탄 포격을 퍼붓는 게 그들 아니던가. 이렇듯 상대도 없고 명분도 없는 전쟁, 그게 최근 미군이 했던 전쟁이고 낸츠가 부하를 잃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전쟁이다. 그는 무의미한 전쟁에서 상처만을 안고 제대를 하려한다.

그런 그에게 때마침 외계인들이 물을 빼앗으려 무작정 쳐들어와서는 민간인들을 마구 죽이는 거다. 게다가 이 외계인들은 어떻게 항성간 여행이 가능했는지 매우 의심스러운 수준의 무기만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헐리웃 영화에 등장했던 선배 외계인들은 그래도 무적의 방어막이나 나노로봇, 혹은 거대한 비행체들을 앞세워서 지구를 침공했다. 하지만 이번 애들은 미해병대보다 약간 강한 화력과 조금 더 튼튼한 방어력, 그리고 에너지와 로봇공학 분야의 조금 그럴듯한 기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로봇들조차 결국 통합리모콘으로 작동되는데, 그렇게 중요한 시스템에 백업 하나 없어서 메인 조종센터만 부시면 다 무너진다. 선배 외계인들의 명성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하지만 덕분에 미군과 외계인은 거의 대등한 전투가 가능하다. 즉, 이 외계인들은 지나치게 쎄서 과학자들의 힘을 빌리거나 외계로봇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고, 뜻밖에 멍청해서 미생물에 감염되어 죽어버리지도 않는다. 미군 상대로는 아주 딱이지 않나. 이제 그는 진짜 의미있고 해볼 만한 전쟁을 할 수 있게 된거다. 미군의 트라우마를 반영하는 인형놀이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그게 얼마나 좋았으면 전투하느라 하루종일 밥을 못 먹었어도 배부르다 하겠나.



아이러니한 건 이 외계인들에게 딱 어울리는 역할을 부여하려다보니, 그게 결국 현실에서 미국이 벌이는 짓의 복사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외계인들은 미군이 그렇듯 자원을 얻기 위해 공습에서 시작되는 침략전쟁을 벌이고, 미군이나 이스라엘 군이 그렇듯 목적 달성을 위해서 민간인의 희생도 상관 않는다. 게다가 정규전, 특히 공군력에서는 압도적이지만, 군인 개개인이 사용하는 무기의 화력은 비등비등하거나 오히려 적보다 약할 때도 많고, 도심 게릴라전에는 취약함을 드러내는 모습도 미군과 판박이다. 인형놀이를 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뒤바꾸는 아이들이 따로 없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군사력만 믿고 약소국에 쳐들어갔다가 잔매에 골병들어가는 현실의 전쟁에 지쳐서 입장을 바꿔 강적에 맞서는 다윗이 되어보고 싶은 욕망으로 점철된 현대판 <배달의 기수>,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본색을 적에게 투사해버린 영화라 할 수 있다. 근데 정말 그런 인형놀이라면 상처입은 미국인들끼리 보는 걸로 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