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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의 왕은 징이다(1)

花受紛-동아줄 2011. 10. 25. 20:37

풍물의 왕은 징이다(1)

요즘 풍물을 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악기(?)가 징일 것이다. 징! 그저 무겁기만하고남들에게 주목도 받지 못할 분더러, 맘대로 놀기도 힘든 것으로 인식돼 있다. 누구도 선뜻"내가 징을 잡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처음 배울 때는 물론이거니와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지 않는이상 징은 빼버리기 일쑤다. 부득이 징을 쳐야 할 때도 초보자에게 맡기거나, 가장 실력(?)이 없다고 인정된 사람에게 맡겨버린다. 쇠나 장구에 쏠리는 욕심이나 관심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정말 징은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악기(?)고, 아무나 쳐도 될 정도로 쉬운 악기일까?결코 그렇지 않다. "풍물(굿물)의 왕은 징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이 의외로 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그런 말이 굿판에서 회자되었었다. 지금은 듣기 힘든 말이됐지만...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가는 징이 풍물의 왕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치고 있는 풍물은 호랑이 있는 굴에토끼가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인가?
그렇다. 풍물굿 이야기는 아니지만, 징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줄 사례는 많다.

 

시나위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고 수준의 음악성을 요구하는 우리의 음악이라는 사실에 누가이의를 제기한다면 듣는 사람이 갑갑해질 것이다. 지금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시나위는 악보화되고정형화된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 시나위의 참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지만, 시나위의 참맛을여전히 느낄 수 있는 판이 있으니 굿판이다. 원래 시나위라는 것이 굿판에서 태어나 발전하였고,제 명맥을 이어가는 시나위의 모습이 공연장이 아닌 굿판에서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희미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 시나위 음악에서 징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높다. 특히 남도 시나위의 경우 쟁(징)은 그 음악을살리고 줄일 정도다. 그래서 제대로 시나위의 전통이 이어지는 굿에서는 가장 연륜이 있으며,음악을 주도해 갈 위치에 있는 고인이 장구와 더불어 쟁을 잡는다. 젓대나 해금이 시나위를 주도해가지 않는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쟁이 그처럼 중시되는 것은 전문가들이나 귀명창들이 쟁소리를갖고 그 시나위에 대해 평가하는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피리나 젓대나 가야금 엇이 장구와 징만으로바라지를 할 경우보다도, 피리나 해금이나 젓대와 함께 연구할 때 오히려 징의 중요성은 한층 더부각된다. 그 어려운 관악기나 현악기를 제치고 단순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타악기, 그 중에서도 쟁이그처럼 중시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신무계통의 굿판에 들어서면 가장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징소리와 바라소리일 것이다.


상황에 따라 바라는 뺄 수가 있지만 장구와 더불어 징은 절대 빠질 수가 없다. "쟁 쟁 쟁 쟁" 일정한박자와 일정한 기운으로 계속 반복되는 징소리는 무당의 도무와 일치한다. 하늘로 계속 뛰어 오르는무당춤을 지치지 않게 하면서도 더욱 더 강렬하게 해주는 힘은 징소리와 바라소리에서 나온다. 일정하게반복되는 징소리가 결국 최면효과뿐만 아니라, 무당이 무아경에 이르도록 만들어주며, 접신의 상태까지끌어올린다. 징소리가 만들어내는 효과다.


물론 풍물굿에서도 그런 사례는 많다. 몇 개의 사례만 들어보자. 징점은 절대 빼먹거나 틀려서는안됨에도 불구하고 징은 무겁고 힘들기 때문에 징잽이를 징의 갯수보다 2배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한다. 징이 2짝(개)이면 4명이 징을 치고, 3짝이면 6명의 징잽이가 필요해 지는 셈이다. 지금 식으로표현하면 스페어징수가 있었다고나 할까. 절반의 징수는 대기를 하고 있다가 치던 징수가 힘들어 할 때징수에게 징을 다시 넘겨주는 식으로 말이다.

 

왕년에 정읍에서 이봉근이라는 사람이 징치는 모습을 보고 그 유명한 이봉문 설장구가 탄복을 하면서"저 징치는 거 보라고, 소삼대삼치는 거 보라고" 했다던가! 징을 그저 때리면 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소삼대삼"으로 치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 막연해질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듣는 순간 징이라는 것이 단순치 않다는 느낌도 분명 갖게 됐을 것이고.

그러면, 현재 풍물을 치면서 징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경험들은 없었을까?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많으리라 확신한다.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하면서 징점이 틀리거나 깨지는소리가 나는 순간 우리는 징을 다시 보게 된다. 그 때는 모든 치배와 구경꾼들의 시선이 징으로 쏠릴것이다. 한결같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말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임이 분명한 그 시선들이 바로 징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는 분명한 증거다. 징이 삐지면 징만 틀린것이 아니라 그 굿전체가 틀리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뛰고 놀던 사람들이 멈추게 될 것이며,구경하던 사람들은 바로 그럴 것이다. "징도 제대로 못 맞춘다"고.

다른 것은 조금 틀려도 그냥 묻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굿 전체가 중단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경우에따라 양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징은 다르다. 징이 틀리면 모든 조화가 흐트려져 굿 전체가 깨져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징이란 절대로 트러리면 안되는 풍물(굿물)이다.


징소리가 나야할 징점에서 징소리가 안나도 안되고, 소리가 징점에서 삐져나가도 안되고, 그 소리가깨져 나가도 안된다. 우리들은 징의 중요성을 감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이성적으로는 인식하지 못하거나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대관절 징이 뭣이간디 절대로 틀려선 안된단 말일까?
징이란 원박을 정박으로만 쳐주기 때문이다.
풍물굿에 있어서 가락을 넣어 징을 치는 경우란 상상할 수가 없다. 항상 징은 원박의 첫머리(박)를쳐 줘야 한다.

풍물은 엇박으로 치거나, 가리새기를 넣어치거나, 잉어걸이로 치거나, 아예 안 쳐버리고 춤을 쳐버리거나,악을 쓰거나, 그 어떤 짓거리라도 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단, 장단의 한배를지키면서라도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말이다. 장단의 한배를 기준으로 넘나들면서 "지 멋대로"하면할수록 잘 치는 것이고 잘 노는 것이다. 정해진 숫자대로 장단수를 맞추고 가락을 통일하면 연주는 잘 될지 모르지만 거기서 멋과 맛을 찾기란 어려원지다. 이처럼 장단이라는 최소한의 틀거리만 서로 맞출뿐, 그 한배 내에서는 "내 개성껏 멋대로 장단을 가지고 노는" 시나위 구조가 역시 풍물굿에서도 적용된다.
그것이 굿(풍물굿)의 미학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지 멋대로" 쳐서 안되는 풍물이 있으니 바로 징이다. 전부 다 "지 꼴리는(멋대로)"대로놀아버리면 중구난방이 되 "서로"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풍물굿이란 애초부터 혼자만으로는절대 이뤄질 수 없고, 같이 치도록 만들어진 방법(굿)이다. 중구난방이 되는 상황은 절대 막아야 하니,그 안전장치가 꼭 필요할 수밖에. 징이 바로 안전장치다. 그러니 기분 내키는대로 칠 수 있겠는가.


"서로"를 맞출 수 있도록 징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장단의 한배를 지켜줘야만 한다. 중심을 잡아줘야한다는 뜻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개인(멋대로)과 전체(서로)가 다 존중되면서도 조화를 이뤄 "하나"가 될수 있도록 해주는 통로가 <장단>이니 그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지켜야 하며, 개인과 전체가 만나는접맥지점인 원박의 첫머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그 지킴의 소리가 징소리인 것이다.

정신 못차리고 놀다가 남들과 안맞는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얼른 징을 보면 될 것이고, 옆에서 징신차리라는 핀잔이 들려오는 순가 바로 징소리에 맞추면 될 것이며, 징소리를 중심에다 놓고 얼르고,무지르고, 앞서 가고, 뒷서가고, 먹고가고, 달아가고, 쉬어가고, 달려가며, 이리 저리 놀면 되지 이아니 고맙고 마음 든든한 일인가!

징의 중요성이 더욱 더 부각되는 경우가 있었으니 군고에서였다. 징소리는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기때문이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징소리와 북소리는 깃발과 함께 전투상황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중요한신호 수단이었다. 징소리가 나면 "후퇴"요, 북소리가 나면 "돌격"이었다. 나아가 한 장단 안에 징을몇 번 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의사전달이 달라지기도 했다. 징을 세 번 치는 삼채는 전투부대가 이동을하겠다고 본부에 알리는 신호였으며, 한 번만 쳐야 할 자진일채는 작전을 개시하겠다는 신호였다 한다.

<차근현, "소포걸군악 - 필사본", 1988. 10. 27 작성> 징의 숫자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12가지의 장단(12채굿)이 전투 상황에서 명령전달 수단으로 쓰였다는 고증을 군고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청취할수 있다.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직접적인 명령전달의 중책을 징이 맡고 있으니 징수의 책무는막중할 수 밖에 엇었으리라. 절대로 틀려서는 안될 징이었다.

징은 징을 치는 징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소리의 성질도 중요하다. 소리가 낱으면서도 부드러운성질이 징의 특성이다. 강하고 높은 꽹과리 소리와 대비를 이룬다. 징이나 꽹과리는 모두 금속성이다.

꽹과리 소리만 오래 들으면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여 평정심을 잃게 만든다. 충동적이고 전투적이기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 치고 들을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꽹과리를 너무 오래치면 가는 귀가 먹게 된다. 몸을 상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런 꽹과리 소리를 부드럽고 포근한 징소리가중화를 시켜 버린다. 특히 징의 긴 여운은 어떤 꽹과리 소리라 하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싸안아 버린다.

용도와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징 울음 소리는 세 번 꺾이며 펴져나가야 제대로 만들어진 징으로여겼다. 세 번 꺾여 나가는 사이에 모든 소리는 징소리에 스며들게 마련이다. 꽹과리 소리뿐만 아니다.


북소리든, 장구소리든, 악쓰는 소리든, 싸우는 소리든 징소리는 넓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허물을 묻지않고 품에 안아 녹여 버린다. 시나위성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서 멋대로 돌아가는 소리와 짓거리들의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이들을 하나로 엮어 내버리기도 한다. 그런 힘이 징소리에는 있다. 그러면서도웅혼하다. 그리고 가장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멀리서 풍물치는 소리를 한 번 들어보자. 들려오는 소리는 "깨갱 깨갱"의 꽹과리 소리도 아니며, 화려한 장구가락도 아닐 것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북소리와 징소리만 힘있게 밀려와 귀와가슴을 두드릴 것이다. 그 모두를 하나로 감싸는 소리는 여운을 갖고 스며드는 징소리일 것이다.


몸과 마음을 빨아 들여 들썩거리게 만드는 것은 분명 북소리 징소리일 것이다. 사람의 폐부까지파고 들면서 오래도록 여운을 갖고, "울림"을 전하는 풍물은 징소리의 파장일 것이다. 그 넓고 깊은징소리 속에서 꽹과리 소리는 양념처럼 놀고 있을 것이다. 종소리를 들을 때와 같은 편안함도 함께갖고 있는 징소리는 아무리 오래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이런 실험도 한 번 해보자. 드럼, 기타, 봉고, 꽹과리, 북, 장구, 징 등등 동서양의 다양한 타악기를한자리에 모아 놓고 함께 두들겨 보자.


볼 수 없으나 소리는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먼거리에서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게 한다면 어떤 반응이나오게 될까? 징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 한 십중 팔구는 풍물을 치는 것으로 착각할 것이다.

그만큼 징은 우리다운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답다!
그 "우리답다"는 소리란 과연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