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생산거점으로 - 탄소섬유 세계1위 도레이
어제 구미 공장 착공식 "전기료 절반, 투자 늘릴 것"
日, 기술유출 우려까지 - 스마트폰·LCD·신소재 등
과거와 달리 첨단산업 위주… 1분기 한국투자 40% 늘어
왜 한국 오나 - 삼성·LG 등 글로벌 기업에 인건비·세금도 저렴
美·EU와 FTA 체결도 장점
일본의 화학 소재(素材) 전문 기업인 도레이(TORAY)는 28일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탄소섬유 생산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탄소섬유는 무게는 강철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强度)는 오히려 10배 이상 강한 첨단 소재다. 항공기 동체(胴體)와 날개, 자동차 차체, 낚싯대, 골프채 등을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 각광받고 있다.
▲ 화학 소재 업체 도레이의 일본 공장에서 강철보다 10배 강한 초경량(超輕量) 탄소섬유(carbon fiber)를 생산하고 있다. /도레이 제공
우리나라에 탄소섬유 생산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레이는 향후 10년간 구미공장에 총 1조3000억원을 투자해 한국을 세계 최대의 탄소섬유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연간 1만4000t을 생산해 일본 현지 공장보다 생산량을 두 배 많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일본 첨단 기업들이 몰려온다도레이만이 아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화학·전자·기계 분야의 첨단 기업이 속속 한국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 이후 더욱 빨라지는 추세다. 이날 도레이 공장 착공식에 참석한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 대사는 "(일본 기업들이) 지진 때문에 생산 기지를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토모화학은 삼성그룹과 합작해 경기도 평택에 스마트폰 부품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 가동 예정인 이 공장은 화면을 누르면 각종 기능이 작동하는 터치 패널을 생산한다. 전자 부품회사 요도가와휴텍도 지난달 45억원을 투자해 평택에 자동차용 2차전지 핵심 부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화학 소재 회사 우베코산(宇部興産)은 오는 8월 충남아산에서 플라스틱 수지(樹脂) 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휴대전화 화면용으로 흔히 쓰이는 유리판 대신 휘거나 접을 수 있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신종 부품을 만들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또 정밀기계 제조업체 '에어포르구'는 강원도 동해에, 도요타·현대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엔진 부품 기업 야스나가(安永)는 전북 익산에 각각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화학업체 닛폰소다(日本曹達)는 한국의 남해화학과 공동으로 전남 여수산업 단지에 총 430억원을 투자해 방제제(防除劑) 원료 공장을 건설한다.
생산 거점뿐만 아니라 기업 연구소도 줄줄이 한국을 찾고 있다. LCD(액정표시장치) 제조설비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일본 알박(ULVAC)은 내년 1월 경기도 평택에 첫 해외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한다. '초재료(超材料)연구소'란 이름이 붙은 이곳은 TV용 LCD 제조 기술을 개발한다. 전자 부품회사 도쿄일렉트론도 경기도 화성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워 내년 1월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지식경제부 집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4000억원. 작년 1분기보다 40%가 급증했다. 2분기 이후에도 투자액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대지진 이후 일본 탈출 러시일본 기업의 투자가 과거와 달라진 점은 저임금을 노린 노동집약 업종이 아니라 스마트폰·LCD·신소재 같은 첨단 산업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핵심 기술이 한국에 유출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일본의 첨단 기업들이 한국에 생산시설과 연구소를 앞다투어 설립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건비·전기요금·세금 등 각종 비용이 일본보다 훨씬 저렴한 것이 최대의 매력 포인트다.
도레이의 닛카쿠 아키히로(日覺昭廣) 사장은 "(대지진으로 원전에 큰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 앞으로 전기료가 얼마나 높이 올라갈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적극적으로 한국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탄소섬유는 생산 과정에서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데 한국이 일본보다 전기요금이 절반 가까이 싸다는 것이다.
'탈(脫)일본 러시'의 배경에는 지긋지긋한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적 요인이 깔려 있다. 지난 3월 대지진은 일본 동북부지역의 도요타·소니 등 생산시설과 물류시스템을 대거 망가뜨렸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지진 이후 안전한 곳에 중요 데이터를 보관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많아서 부산에 KT와 공동으로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건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세계적인 '톱 플레이어'로 성장한 것도 부품 소재 분야가 강한 일본 기업에 매력적이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현대중공업등은 글로벌시장에서 선두권에 속해 있어 그만큼 부품 수요가 많다.
한국이 유럽연합·미국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 역시 일본 기업의 수출 확대에 유리하다. 한국에서 생산한 부품은 이 지역에 수출할 때 관세를 물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관 지식경제부 차관은 "일본 첨단 기업의 한국 진출은 한·일 양국에 모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