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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성(性)[모셔온자료]

花受紛-동아줄 2011. 10. 17. 00:13

 

노인의 성(性)

 

잠시 문제의 백발노인과 장모의 환영을 걸고 가상 대담을 나눠 보자.
 

백발노인이나 장모는 이미 노년이었지만 성적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위 또는 딸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파트너를 찾기가 불가능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건강한 욕망은 적절한 배출구를 찾지 못해 결국 사회적 지탄을 낳고 말았다.

백발노인: 아무리 생각해도 반사회적 인물로 치부된 우리 두 노인네는 정말 불행했소. 할미와 내가 처벌받은 것은 결국 우리가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 아니겠소? 역사상 내로라하는 영웅호걸들은 우리처럼 노인이 된 다음에도 성적 욕망을 추구하 느라 여념이 없었소.

 

장모: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 어렵소만 사실이지요. 저승 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우선 중국 고대의 진시황(秦始皇)이 그랬고, 수양제(隋煬帝)나 당현종(唐玄宗)도 노익장을 과시했다고 하더군요 . 본래 아들의 짝이던 며느리 양귀비를 가로채 향락을 즐긴 당현종 이야기는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당현종의 할머니 측천무후 (則天武后)도 말년까지 성적 쾌락을 마음껏 누렸다니 참 대단한(?) 집안이었어요! 외로움을 달랠 길 없어 외도했다 천추의 한을 남기 고 말았으니 정말 억울해요.

 

백발노인: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더니 가관이오. 그건 그렇고, 서양에서도 영웅들의 호색은 나이를 초월했다오. 심지 어 문사들까지 그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고 했소. 독일의 문호 괴테는 70대의 노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0대 소녀 뷔르리케와 열렬 한 사랑에 빠졌고, 빅토르 위고도 늙은 나이에 젊은 하녀의 육체를 탐했다고 전하오. <좁은 문>으로 널리 알려진 현대 작가 앙 드레 지드 역시 칠순에 애정행각을 벌였다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도 네 번이나 결혼식을 올리며 사랑을 위한 행진을 계속했다고 하오.
.

 

장모: 조선시대 유명한 성리학자들도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 까 해요. 미암 유희춘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솟구치는 성욕에 시달렸다고 일기에 적어 놓았다고 해요. 그는 기생들에게서 얻은 화류 병을 초로의 부인 송덕봉에게 옮기기도 했다니, 나 원 참!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서도 ‘밤 퇴계’와 ‘낮 퇴계’가 달랐다는 이야기 가 있다지요? 낮에는 엄숙 단정한 학자였지만 밤에는 누구 못지않게 용맹한 남성이었다는 말인데, 그분의 배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부러워 죽겠어요.
 

 

 

 

백발노인: 하여간 권세 있는 노인들은 정력을 보강하느라 부 심했소. 그들은 온갖 정력제를 즐겨 찾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전설적 효능을 보장하는 최고의 식품은 곰발바닥이었다오. 중국 고대에 폭군으로 악명이 높았다는 걸왕은 애첩 매희를 위해 곰발바닥을 즐겨 찾았다는 말이 있소. 왕은 옥으로 된 술잔에 연거푸 술을 부어 마시며 곰발바닥을 안주로 들었다는데, 그는 특히 오른쪽 앞발바닥을 좋아했다지요? 알다시피 곰은 꿀을 좋아해 오른쪽 앞발로 벌집을 건드리는 습관이 있소. 그때 수많은 벌이 오른쪽 발바닥을 쏘게 마련이어서 자연히 꿀벌의 좋은 성분이 박혀 최고의 정력제가 그 발바 닥에 형성된다고 보았던 거요.

 

 

 

 

장모: 우리 같은 평민들이야 감히 꿈도 못 꾸었지만, 조선시 대 궁궐에서는 뱀장어 백숙, 홍삼·사슴피 등을 정력제로 복용했다면서요? 부와 권력을 한몸에 지닌 남성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성적 쾌락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요?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데도 따로 특권층이 있고 우리 같은 평민, 그중에서도 여성은 이중 으로 소외된 것이지요. 정말 억울하고 부럽기 짝이 없어요.

 

 

 

백발노인과 장모의 말이 그럴 듯하기는 하다. 그러나 설사 특권층인 양반 남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리적 노쇠현상은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 다. 더욱이 그때는 아직 ‘비아그라’ 같은 약이 나오기 전이었다.

 

 

 

 어느 늙은 양반이 어린 첩을 몹시 사랑했다. 어 린 첩을 찾아간 노인은 마음이 부풀어 올라 첩의 손목을 부여잡고 운우의 정을 나누려고 했다. 다른 것은 다 준비됐는데 한 가지 문제 가 남아 있었다. 고약하게도 노인의 양물이 문제였다. 주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힘없이 축 늘어져 도무지 애첩의 파릇한 음문을 파고들 어가지 못했다

 

 

 

 

노인은 꾀를 냈다. 물건을 자기 손으로 쥐어 조금씩 몸을 틀어가며 밀어 넣을 생각이었다. 그는 첩의 배 위에 납작 엎드려 공작을 시작했다. 한참을 시도하다 “이제 좀 들어 갔느냐” 하고 물었다.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노인은 다시 몸을 일으켜 거듭 손으로 감싼 다음 다시 꽂으려고 엎드렸다.
“어때 조 금 들어갔느냐?”
“아직도 아니옵니다.”
몇 차 례나 반복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노인은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지고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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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껏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 다는 말이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노인은 애첩에게 물었다. 어린 첩은 노인이 불쌍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옳은 대답이 꼭 옳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예! 이제 겨우 조금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애첩이 목소리를 명랑하게 꾸미고 대답했 다.

 

 

 

 노인은 즐거워 어쩔 줄 몰랐다. 이때 노인의 양물은 실상은 방바닥에 닿아 있었다. 차츰 방바닥의 차가운 냉기가 물건에 느껴졌다. 하지만 노인은 자기 물건이 애첩의 꽃다운 음문 속에 꽂혀 있는 줄로만 믿었다.
“아 참, 네 음문은 여름철에 시원해서 참 좋 겠구나!”

 

생각하면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우선 노인은 불끈 일어서지 도 않는 양물의 소유자인데 무슨 속셈으로 어린 첩을 거느리느냐는 것이다. 노인의 부질없는 허영심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법하다. 그 러나 이 이야기를 전파한 갓 쓴 양반들은 노인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했고, 그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놈의 양물이 말을 안 들어 탈이지, 애첩을 향한 사랑이야 그 노인이라고 해서 덜할 리 없었다.

 

 

 

 성적으로 무능해도 노인은 애첩과 사랑을 나눌 권리가 있었다. 갓 쓴 양반들은 그 점을 인정했기 때문에 노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고 본다. 어찌 보면 노인 양반보다 훨씬 현명한 이는 어린 애첩이었다. 그는 양반들의 멸시를 받는 하층 신분 출신이었고, 사회 통념상 열등하게 취급받는 여성이었다. 그렇건만 이야 기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어린 애첩은 현명한 어머니 같고, 권세 있는 노인 양반은 엄마에게 보채는 어린아이 모습이 다.

 

 

 

 사회적으로는 현격하게 저열한 위치에 있는 애첩이 노 인 양반을 포근히 감싸 안아 위로해 준다. 이것은 분명 조선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적 가치관이 전도된 모습이다. 갓 쓴 양반들은 일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이고 배타적 신분질서를 옹호했지만, 그 틀을 넘어선 더 근원적 가치가 존재함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 이 그런 인식을 체계적으로 심화할 기회를 애써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또 하나.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갓 쓴 양반들의 성 인식은 너무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인 노인 양반의 만족에만 집착한다. 어린 애첩이 성적 쾌락을 맛보았는가 하는 부분은 완전히 외면한다. 양반들의 자기중심적 경향은 끝 간 데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갓 쓴 양반들은 노인 여성의 성 적 욕망에 대해서는 정말 무심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양반들은 폐경기의 여성은 더 이상 성적 호기심조차 없을 것이라고 믿 었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많은 양반노인들은 버젓이 늙은 아내가 곁에 있음에도 젊은 첩을 두었던 것 아닐까?


 

 

 

 

한 젊은 양반이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술집의 젊은 여인에 게 반했다. 젊은 양반은 여인에게 밤에 어디서 자는지 물었고, 여인은 뜻이 있었는지, 순순히 대답해 줬다. 그들은 밤에 서로 만나기 로 약속했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 그날 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명령으로 다른 방에서 자게 되었다. 여인이 일러준 처소에서 는 시어머니가 잠자리를 폈다. 시어머니는 초롱불을 끄고 홀로 누웠다.

 

 

 

이런 영문을 알 리 없는 젊은 양반은 시어머니의 방으로 들 어갔다. 양반은 무릎을 꿇고 시어머니 위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젊은 여인의 살결과 달리 까칠한데다 음문이 쪼글쪼글 해 양반의 성난 물건을 꽂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욕망에 불타오른 양반은 결국 두 손가락으로 음문의 주름진 부분을 잡아 젖힌 다음 가까스로 양물을 틈으로 깊숙이 들이밀었다. 

 

 

 

 시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속 된 말로 영감 죽고 나서 처음이었다. 시어머니는 손으로 양반의 등을 토닥거리며 이가 빠져 바람이 새는 소리로 감탄을 연발했 다.
“양반의 젊은 자제라 신을 신는 법을 무척 잘 아시네!”
그제야 양반은 방을 잘못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즉시 몸을 빼내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놓았다.

 

 

 

 이처럼 갓 쓴 양반들은 노인 여성에게도 성욕이 있다 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뿐인가? 여성의 성기가 노년에 어떤 특성을 지니게 되는지도 분명히 알았다. 그에 더해 노년 여성과의 성교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점, 그 문제를 나름대로 극복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 이야기는 욕정에 어두운 젊은 양반을 비꼬는 듯하 면서도 실은 노인 여성의 성적 욕구 또는 불만을 거론하는 계몽성이 있다

 

 

 

 거지 총각이 추운 겨울에 길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 었다. 길을 지나던 한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한밤중이 되었다. 할머니가 자다 말고 숨이 답답해 눈을 뜨고 보니 총각이 자기 배 위에 올라탄 참이었다. 할머니는 화가 나서 버럭 성을 냈다.

 

 

 

 “이놈아! 어디서 이런 못된 짓을 하느냐? 네놈을 형 조(刑曹)에 고발해 죄를 엄히 다스리게 하고야 말겠다.”
하지만 총각은 아무 대답도 없이 양물을 자꾸 앞뒤로 움직였다. 할머니는 몸이 점점 뜨거워지며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그것을 총각은 정확히 눈치챘 다.
“그럼 저는 이제 그만 빼고 가 보겠습니다.”
그 말에 할머니는 더욱 역정을 냈다.

 

 

 

 “네가 정말 그렇게 할 양이면 당장 포도청에 알릴 거 야!”
“이게 바로 옛말에 이른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는 것이군요.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네요.”
할머니는 총각에게 입을 다물고 좀 더 빨리 움직이라고 몸으로 뜻을 전했다. 처 음에는 총각 혼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둘이 다정하게 같이 끝을 보았다.
이 이야기 를 다 읽고 나서 뜻을 음미할 때 다시 패륜으로 처벌된 백발노인과 장모가 등장했다. 그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 각자 논평을 가했 다.

 

 

 

 백발노인: 나는 이야기에 나오는 걸인 청년이 인정머 리가 있는 좋은 녀석이라고 본다오. 따뜻하게 얻어먹었으니 뭔가 보답해야 할 것 아니오? 청년은 최상의 선물을 준 게요. 아마 청년이 도발하지 않았다면 이야기 속의 할미는 그 맛을 다시 되찾지 못했을 거요. 총각의 자극에 할미는 회춘했소. 그게 바로 노인 여성의 성 이 아니겠소? 진흙에 묻힌 진주라 이말이오. 오직 찾아 주는 임자가 있을 때만 쾌락을 재발견하는 수동적인 성이라는 말이오!

 

 

 

장모: 백발노인도 역시 한심한 조선 남성이군요. 이봐요. 노 인 여성의 성은 결코 그렇게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라오. 갓 쓴 양반을 포함해 남성들은 왜 하나같이 우리 여성을 수동적 또는 피동적 존재로만 인식하는지 모르겠소.

 

 

 

문득 이때 머리를 스쳐가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조선 의 갓 쓴 양반들이 할머니들의 욕망을 제대로 인식했음을 알려주는 상징적 골계다.

어 떤 젊은이가 이웃 노파에게 물었다.
“성적 충동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나 강하다면서요? 할머니! 그 말이 정말 사실일까요?” 

 

 

 

 할머니는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남성의 성욕이 여성보다 적어도 두 배는 세다고 고집했다. 청년은 부러 할머니의 화를 돋우면서 고집을 꺾지 않을 듯 굴었다. 할머니는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럼 내기를 해 보자. 뉘 말이 맞나 보자!”

 

 

 

 청년의 꼬임에 할머니는 넘어가고 말았다. 청년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체했다. 두 사람은 벌거벗고 드러누웠다. 청년은 할머니의 몸을 이리저리 어루만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할머니! 지금부터 저는 ‘보 국숭록대부영의정’이라는 말을 외워댈 테니 할머니는 무엇을 외우시렵니까?”

 

 

 할머니는 생각 끝에 “숙부인강씨강아지”를 되뇌기로 했다. 청년은 할머니의 배 위에서 신나게 오르내리는 운동을 했다. 할머니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자기가 할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전진후퇴의 속도가 빨라지자 흥분이 심해졌다. 할머니는 이제 허리를 상하좌우로 흔들면서 한다는 말이 “아지아지아지” 소리만 연발할 뿐이었다. “숙부인강씨강”은 오간 데 없었다. 청년이 힐책했다. 그리고 마지막 고지를 향해 질주했다. 할머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흔들더니 마지막에는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다.

 

 

 

이 말이 끝나자 백발노인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한다. 마치 자기가 그 청년이 되기라도 한 듯 즐거운 표정이 역력하다. 장모는 그것 보란 듯이 말한다.
“할머니가 내기에 진 것은 못내 아쉽지만 이것으로 우리 노인 여성들의 욕망은 복권됐어요. 완전히 인정받은 것이라고요! 그런 데 이런 이야기가 정말 옛날 책에 나오나요? 갓 쓴 양반들이 이런 것을 알고 있었다고요?”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허리를 잡고 유쾌하게 웃는다. 성담론이란 이런 것 아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