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 오락♧/국악

장구에 담긴 음양의 원리

花受紛-동아줄 2007. 9. 12. 23:09

서양음악에 있어 피아노와 같이 기본적이면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우리의 악기를 들라면 "장구"라고 주저없이 내세울 수 있다. 장구는 모든 우리음악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민속악뿐만 아니라 궁중음악과 불교음악에도 어김없이 쓰인다. 그뿐만 아니라 춤과 민속놀이에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인다. 장구 하나만 있으면 못해 낼 짓거리나 놀이가 없을 정도다. 특히 장단만을 짚어 주는 타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기본적이고 중심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장구의 용도와 기능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일까? 서양음악에서는 음악의 4대 요소로 리듬, 가락, 화성, 음색을 든다. 위의 4가지 요소는 음악속에서 하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임에 틀림없으나 그래도 최후까지 선택되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는 리듬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선율과 화성이 없는 리듬은 훌륭히 존재할 수 있지만 리듬이 없는 선율은 존재할 수 없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음악의 태동을 지연 발생학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최초의 기원이 리듬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양음악의 리듬에 대비되는 우리의 리듬패턴을 "장단"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이 장단의 개념은 서양의 리듬인 "박자"개념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음악의 박자는 마디로 구분하여 음의 일정한 반복형태의 기본요소로 인식한다. 즉, 음벙치나 음의 시가를 하나하나 수치적으로 분석하여 박자로 정한다. 박자의 설정기준은 수학적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장단은 심령에 근원을 두고 그 심령(마음)의 변화작용에 의해 저절로 밖으로 외화되어 나오는 울림으로 본다. 그러므로 서양음악 개념의 수치적 박자개념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다른 측면들이 있다. 즉 장단은 수치적으로 계산해 낼 수 있는 음의 시가를 물론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체음악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단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자기 완결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장단을 살펴보면서 이해를 구해보자. 굿거리의 경우는 한 장단 안에 앞 두 박자까지는 감아 가는 기운(이를 "前刻" 혹은 "大三"이라고 하며, 陽적인 성질이다)이고 뒤 두 박자는 풀어지는 기운(이를 "後刻" 혹은 "小三"라고 하며, 陰적인 성질을 갖는다)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삼채같은 장단일 경우에는 암가락(陰)과 숫가락(陽)으로 꼭 쌍을 이루어 장단이 구성되며, 24박인 진양장단의 경우 6박 단위로 "내고 달아 맺고 푸는" 완벽한 자기 완결구조를 갖추고 있다. (굿거리 등 네박장단은 한 장단 안에 첫 박에서는 "내고" 둘째박에서는 "달아" 셋째 박에서는 "맺고" 넷째 박에서 "푸는"기운의 흐름을 보인다.) 뿐만 아니다.

심령에 기반한 인간의 다양한 희로애락 변화는 그 사람의 호흡에 바로 변화를 가져오고 그 호흡작용의 변화는 장단속에서 다양한 가락으로 나타나 수한 변화가락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풍부하고 변화무쌍한 장단의 변화(가락)만으로도 서양음악이 갖고 있는 화음을 충분히 대신하고도 남게 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장단의 "감고(긴장) 푸는(이완)"구조를 바로 사람의 호흡작용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그 구조일 수 밖에 없다. "들숨(감고)과 날숨(풀고)"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의 구조가 바로 장단의 구조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람(연주자, 창자, 감사자... 모두 다 포함)의 감정을 현장에서 즉각적이면서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 해낼 수 있게 된다. 정리를 하자면 한 호흡동안에 나타나는 감정의 울림이 "장단"이며 그 감정의 다양한 변화가 "가락"이다. 이런 원리에 의해 형성된 "장단"이기에 장단은 음악적인 울타리에만 가둘 수 없는 성질을 갖게 된다. 솟아오르는 다양한 희로애락의 울림을 장단에 맞춰 목소리에 실어내면 "소리"이고, 몸짓으로 실어내면 "춤"이며, 악기에 실어내면 "樂"이며, 서로 어우러져 갖은 짓거리로 놀아나면 "놀이"가 되기 때문이다. 장단에 제대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놀이와 춤으로 장단을 익히고 비로소 장구를 만지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효과적이다. 우리 연행 예술행위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것이 장단이며, 이 장단을 담당하는 장구가 어떤 경우에도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자, 그러면 장구가 도대체 어떤 악기이며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이처럼 중요한 "장단"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자. 풍물굿 쪽에서는 "장구"라는 명칭이 "노루獐"자, "개狗"자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황송통(黃松, 혹은 벽오동통)에다 노루가죽과 개가죽을 양쪽에 맨 장구가 최고의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일면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장구를 달밤에 치면 그 소리가 30리나 간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러나 지금은 노루가죽을 구하기가 힘들기에 개가죽으로 맨 장구를 최고로 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암캐가죽과 숫캐가죽이 다 필요하다는 점이다. 장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암캐와 수캐가 나란히 저승으로 가야 한다는 이 사실! 이는 소리의 음양성(陰陽聲)을 확실하게 구별해 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여자소리와 남자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죽뿐만 아니라 장구통 역시나 신경을 썼다. 장구를 깍을 때 양쪽 통의 크기와 통의 두께에 차이를 둔다. 여자소리(저음)가 나는 궁편쪽은 크게 만들고 남자소리(고음)가 나는 채편 쪽은 작게 만드는 것이 그렇다. 이 두 소리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서 허리를 잘록하게도 만들어야 한다. 그 모양새가 마치 미녀의 잘록한 허리를 연상시키기에 세요고(細腰鼓)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였다.

아무튼 그 잘록한 허리가 길면 길수록 남자소리와 여자소리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기에 옛날 장구들은 요즘 장구에 비해 한결같이 허리통이 길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두 소리의 성질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한 노력은 장구를 치는 도구에도 나타난다. 남자소리를 내야 하는 채편 쪽은 강하고 높은 소리를 위해 막대기(채)를 쓰고, 궁편쪽은 같은 가죽성질인 사람 손바닥을 그대로 쓰거나 채를 쓰더라도 부드러운 소리를 위해 궁굴채를 쓴다. 이렇게 장구를 만드는 재료와 형태는 얼마나 음양성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도 두 소리가 동시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선택되었다. 즉 장구라는 타악기는 한가지 성질의 소리만을 내는 여타의 타악기와는 달리 두가지의 소리를 동시에 낼수 있는 악기라는 특색을 갖는다.

그 두가지의 소리는 바로 여자소리(陰聲)와 남자소리(陽聲)이며 장구는 이를 확실하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여자와 남자가 잘 만나 (合장단) "하나"가 되면 생명이 탄생된다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최고의 여자소리와 최고의 남자소리가 만나서 일체가 되는 절정의 순간에 나오는 울림의 소리는 무아경의 소리이며 황홀경의 소리이며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극치의 소리이기에 장구의 "덩"소리는 우주만물이 생성되는 그 태초의 소리이다. 즉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음양성(陰陽性)의 원리를 담고 있는 장단을 표현해 내기에 가장 적합한 성질을 갖고 있는 악기라는 뜻이다.

장구에서 소리가 나는 순간은 채편(陰)과 채(陽)의 만남(合一)이고 궁편(陰)과 궁채(陽)의 만남(合一)이며, "궁"소리(陰)와 "따"소리(陽)의 만남(合一)이다. 그래서 우리는 궁소리와 따소리를 동시에 울려나오는 소리를 "덩"이라는 의성어적 표현과, 소리의 성질과 의미를 담고 있는 "합"이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는 장단과 가락과 장구에 담긴 심오한 뜻을 이해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하겠다. 과연 수캐가죽은 궁편에다 매야할까요? 편에다 매야할까요? 또한 암캐가죽은 궁편에다 매야할까요? 채편에다 매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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