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 오락♧/사물놀이.민요..

[스크랩] 검무의 한진옥님

花受紛-동아줄 2010. 1. 13. 14:24


”싸움 춤은 신에게 전승을 빌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주로 군사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이루어졌으며, 또 적에 대한 시위적 목적으로 행해졌다. 이러한 싸움 춤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검무가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검무는 칼을 들고 추는 춤으로 검기무 또는 황창무 황창랑무 라고도 한다.검기무는 무기인 칼을 사용하는 춤이라는 뜻이며, 황창무는 신라 황창랑의 검무 연기 설화와 관련되어 시작된 춤의 이름이다.우리나라 칼춤의 연원은 상고 시대의 춤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사정을 말해주는 기록이 희소한 까닭에 상고시대 춤의 일반적인 유형과 형태를 통해 그 흐름과 연원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상고 시대의 춤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목적과 기능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사냥과 관련되어 춤이 추어지고 종교적의식속에서 춤이 추어지는 형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춤의 유형은 수렵무용, 무기무용, 의식무용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춤의 면모들을 통해 검무의 유래를 알아보기로 한다. 사냥춤은 상고인들의 산냥 생활 속에서 배태된 춤이다. 상고인들의 생활은 주로 사냥이었다. 그들은 사냥에 나가기에 앞서 부족 전체가 모여 춤을 추어서 하루의 행운을 빌었으며 사냥에서 돌아와서는 그날 잡은 여러 짐슴을 앞에 놓고 신에 대한 감사의 춤을 추었다.

 이러한 춤은 신에 대한 축원이라든가 사냥에 대한 모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때 칼을 들고 춤을 추는 검무가 자연발생적으로 추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당시 춤은 상고시대의 빈번했던 싸움 속에서 이루어지던 춤이다. 상고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던 까닭에 이웃 부족과의 싸움이 빈번하였다. 그러므로 상고인들은 평소 부족의 단결과 싸움 훈련에 치중하고, 실전에 앞서서는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열광적으로 춤을 추었다.싸움 춤은 신에게 전승을 빌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주로 군사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이루어졌으며, 또 적에 대한 시위적 목적으로 행해졌다. 이러한 싸움 춤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검무가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칼춤은 싸움 춤의 한 변형이다. 싸움 춤은 대개 칼을 손에 들고 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차츰 발달하면서 무기인 칼자 체를 숭상하고 그 위력을 찬미하는 춤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검무이다. 이 춤은 발달 과정에서 점차 생활적인 요소를 잃게 되고 향락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검무의 전승 과정에서도 찾아지는 특성이다.

 의식 춤은 제례의식서 추어지는 춤이다. 수렵시대에서 농업시대로 넘어올수록 춤은 한층 의식적인 색채가 짙어지고 단순한 모방 춤에서 연극적인 요소를 갖춘 의식 춤으로 변모하게
된다. 무의례에서의 춤이라든가 기우제의 춤 시화연풍과 풍어를 비는 춤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무의례에서 무당이 추는 신칼춤은 검무의 시원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굿판에서 신을 즐겁게 하고 액막이를 하기 위해 추어지는 신칼춤을 통해 검무의 유래를 추론할 수 있는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고대의 검무는 상고인들의 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 나라 검무의 연원을 상고시대의 사냥, 싸움, 의식춤과 같은 춤의 제형태 속에서 찾아진다.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검무의 원초적 뿌리는 어러한 고대 검무라 할 수 있다.이러한 고대 검무가 이후 시기의 전승 과정에서 점차 독립된 춤의 한 형태로 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루술성과 같은 생활상의 기능이 부각되던 초기의 검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검무 자체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독립된 춤 장르로 분화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국악신문]

출처 : 정원기의 국악 아카데미
글쓴이 : 세요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