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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시 한 토막/최광림

花受紛-동아줄 2009. 7. 28. 22:07

미완성의 시 한 토막/최광림




환절기에 허약한 감나무가
생살 앓는 소리로 토악질을 해대고
이 빠진 늙은 홀아비가 먹다 남은
빈 술병 속으로
작취(昨醉)에 시달린 가을이 무더기로 추락하고 있다



고독이 농염하게 숙성된 항아리에서
탈출을 도모하던 일단의 무리들이
알을 깨듯 반란을 획책하고
곱사등이 진눈깨비가
등 굽은 고사목(枯死木)의 정수리를 쿡쿡 찔러댔다



내장이 훤히 드러난 붉은 글씨의 간판조차
백주에 강간당하듯 통째로 저당 잡힌
작달만한 키의 원장은
오늘도 유산된 불륜(不倫)의 핏덩어리를
세 번씩이나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오열하듯 개 거품을 입에 물었다



건조한 마찰음으로 점령(占領)당한 거리마다
늦바람 난 태풍이 진군의 나팔을 불고
핏기 잃은 웃음들이 조롱하듯
거미줄로 꽁꽁 묶인 물레방아를 굴리고 있다



거꾸로 들여다 본 세상
미궁(迷宮)에 빠진 살인사건은 자고 나면 새끼를 치고
포란 직전의 만월처럼 산통이 한창인
내 주머니 속에 후벼넣은 시 몇 조각이
발악하듯 숨통을 자맥질한다



수채 구멍에 대가리를 디밀고
물구나무서기로 바라본 하늘
허기진 미완성(未完成)의 시 한 토막이 신음하는
지랄 같은 이 세상
참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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