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필,선♧/哲學.心理學

‘사랑과 상실 love and loss’..

花受紛-동아줄 2009. 7. 11. 23:04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세상이 당신의 뒤통수를 칠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아, 표현 참 멋지다. 그러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벽돌로 뒤통수를 내리친다는 말이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믿었던 친구로부터 뒤통수를 맞아본 일이 있는가?

“아니, 저 사람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하고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어이없는 대접을 받은 나머지 망연자실한 적이 있는가?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서 주위의 시선에 고통을 겪어본 일이 있는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본 일이 있는가?

갖은 고생으로 벌어들인 돈을 한 순간에 날려본 적이 있는가?

 

이처럼 인생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태클을 걸어올 때, 우리는 대개 “왜 하필이면 나야?”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아주 강력한 질문이다. 깊이 생각하고 답을 내려야 한다.

믿음을 갖고 다시 일어서는 것도 좋지만, 대체 왜 인생이 내게 태클을 걸어오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세상의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나지는 않는다.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인과응보(the law of cause and effect)가 바로 그 말이다. 이 절대법칙에 예외란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원인을 쉽게 알지 못할 뿐이다. 이유를 알아내기가 왜 그토록 힘든 것일까? 

시간의 속임수가 한 몫 한다.


10년 전 어느 날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상대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10년 뒤 동료의 배신으로 나타났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언젠가 길을 걷다가 거리에

주저앉은 할머니를 보았는데, “도와주어야지”하는 생각이 일었다가 이내“누가 알아서 하겠지”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10 년 뒤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자. 이런 것들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시간의 속임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하고 말한다. 이 우주에 그런 오류는 있을 수 없다.

만약 지금까지 당신이 했던 말과 행동에 이상이 없다면 당신의 생각을 점검해보라.

말과 행동의 배후에는 반드시 생각이 있다. 바로 그 생각과 말과 행동 모두를 가리켜  업(業:karma)'이라고 한다.

(※어감 상 앞으로‘카르마’라고 표현하겠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카르마를 만들어간다.

그동안 쌓아온 카르마(생각과 말과 행동)의 결과가 바로 눈앞의 현실이다.

 

사실 말과 행동보다는 생각이 더 근원적인 문제이다. 말과 행동의 바닥에 깔린 생각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은 그럴 듯하지만 속으로는 보복의 칼을 쥐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바로 내가 그랬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말하고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앙심을 품곤 했다. 심지어 정신적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어찌 이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왜 하필이면 나야?”하고 억울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왜 하필이면 나야?”하고 따져 묻는 그 사건 속에 바로 나의 숙제가 있다.

사건은 나의 과거, 나의 카르마를 비추는 거울이다.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사건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 나의 숙제가 바로 이것이구나. 내가 풀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알아차릴 수 있으며,

기꺼이 ‘욕됨을 참는(忍辱)’ 정진을 다짐할 수 있다.
계속해서 삶이 태클을 걸어오는 데도 그럴 만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 채 “왜 하필이면 나야?”하고 항변만 한다면

앞으로는 벽돌이 아니라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당한 사태를 눈 감고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참아야 할 때가 있고

들이대야 할 때가 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심각하게 저항해야 할 때도 있다.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양심이라고 하는 근원적 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할 수만 있다면 ‘기도(명상)’가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침묵 속에서 물어보라. 기도 속에서 머물러보라. 당신이 물러서야 하는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참아야 하는지, 들이대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 우리의 목적은 사랑이니까.

사랑을 위해서라면 지독하게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악의 징벌에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그 타이밍은 잘 알아서 판단하라. 타이밍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지 당장 궁금증을 풀고 싶은

독자에게는 추친 링의 <승자의 심리학>이라는 명저를 추천하고 싶다.

(※‘두꺼운 얼굴과 새까만 마음’의 필요성을 다룬 이 책의 몇 가지 주제를 다음 기회에 소개해볼까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잡스는 세상이 뒤통수를 칠 때도 믿음을 잃지 말라고 했는데,

물론 믿음은 잃지 말아야겠지, 그러나 그에 앞서 인생에 태클이 걸려오는 이유를 잘 생각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삶에 그만큼의 빛이 쏟아질 것이다.

 

※“왜 하필이면 나야?”하는 일이 벌어진 순간 우리는 고통을 느낍니다. 상처 받고 좌절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이때야 말로 삶의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삶의 의미를 가장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나의 과거를, 나의 카르마를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내가 나를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별히, 고통의 한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진심의 위로를 드립니다.

고통의 의미가 충분히 이해되었다면 이제 일어나십시오.

사자처럼 일어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