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는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보고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저도 남에게 잘 속는 어수룩한 사람입니다. 미녀 판촉원의 유혹에 넘어가 생각지도 않았던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그런 적이 많았어요. 개인적인 경험 탓인지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게 됐죠. 어떻게,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30년 이상 집중 분석·연구했습니다. 설득 연구는 항상 나를 매혹시키는 주제입니다."
치알디니 교수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실을 벗어나 보험회사, 자동차 세일즈, 기부금 모금행사 같은 생활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식당에서 웨이터 경험을 하면서 팁을 많이 받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실증적인 데이터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계산서를 갖다 줄 때 손님에게 사탕을 한 개 얹어주면 그냥 계산서만 줬을 때보다 팁이 3.3%가량 많아집니다. 사탕을 두 개 주면 팁이 14.1%로 증가했어요. '이렇게 멋진 손님께는 사탕을 더 드려야겠군요'라고 말하면 팁이 더 많아집니다."
이런 사소한 점에만 관심을 쏟아도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는데, 많은 식당은 그냥 문 옆에 사탕바구니만 두는 것으로 고객 서비스를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치알디니 교수의 시각에서 보면 "굴러들어온 돈을 발로 차버리는 격"이다.
■부하 직원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라
요즘은 심리학이 경영학과도 많이 결합되고, 기업들이 광고나 마케팅 같은 비즈니스에 응용하는 경우가 많다. 치알디니 교수 역시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와 비즈니스스쿨에서 동시에 교수를 맡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는 인간 행동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사람들을 가르치고 영향을 주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죠. 요즘 기업들은 고객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들을 설득하는데도 관심이 많아요. 직원들을 어떻게 설득해 최상의 성과를 이끌어 낼지 물어보는 기업이 더 많습니다."
- ▲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사람을 설득하려면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생활에 밀접한 연구를 통해 설득의 원리를 분석한 그의 책‘설득의 심리학’은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100만부 이상 팔렸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를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스(boss)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부하 직원들에게 물어보고 아이디어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마지막 결정을 할 때 당신 의견이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 듣고, 의사 결정의 주요 요소로 활용할 것이다. 이 결정에는 당신의 의견도 포함돼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직원은 상당한 동질성을 느낄 것입니다."
―반대로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의견을 얘기할 때 자기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죠. '내 제안은 우리 그룹에서 동의한 것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죠. 여러 사람의 의견을 합친 것이라고 하면 보스도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첫째는, 둘째는' '왜냐하면' 등 이런 식으로 조리 있게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평상시와 달리 정치나 경제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나 CEO가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위기상황에서는 불확실성이 증가합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전문가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존하게 되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훌륭한 리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정은 내가 한다. 책임도 내가 진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당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요."
■설득과 사기는 달라… 사기는 속이는 것이지만 설득은 윤리적
―기업 간의 협상은 설득 프로세스의 하이라이트라고 봅니다. 상대 기업의 호감을 사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도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비즈니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이것이 넘버원입니다. 오늘 당신이 내게 호의를 베풀면 다음 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보답하겠다는 식으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사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도 신뢰를 지키기 위해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상대방과 협상을 할 때는 어떻게 신뢰를 주나요?
"나와 상대방을 둘 다 잘 아는 사람이 나서 주면 좋습니다. 그의 경험을 통해 협상 파트너에게 내 이야기를 잘 해준다면 신뢰가 생기죠. 내가 믿는 사람에게서 좋은 얘기를 들을 때 호감이 증가합니다. 협상은 무미건조하게 이메일로 용건만 주고받는 과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많은 회사들이 그의 조언을 구하고,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모두가 그의 설득의 원리를 따른다면 협상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우리 의도나 전략을 미리 간파하면 설득의 원리가 잘 안 먹힐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설득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사기(trick)죠. 우리가 진행하는 설득 교육 과정에서는 '설득의 원리는 항상 윤리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틀짜리 프로그램을 마치면 설득의 6가지 법칙이 담긴 카드를 줍니다. 여기에도 항상 윤리적으로 대하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항상 참조하라는 뜻입니다."
―그 카드를 다른 사람도 갖고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먼저 이 카드를 꺼내놓고 보면서 협상에 임하도록 합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협상을 가르칠 때 일입니다. 한 사람이 이런 경험을 얘기했어요. 몇 년 전 중요한 기업 인수 협상을 시작할 때 책상에 이 카드를 꺼냈더니 상대방도 똑같은 카드를 꺼냈다고 합니다. 협상이 어떻게 됐냐고요? 최상의 결과가 나왔답니다. 서로 이 카드를 윤리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진정한 신뢰 관계가 발생한 것이죠. 설득의 원리를 윤리적으로만 이용하면 평판이 쌓이고 신뢰가 생깁니다. 우리는 그걸로 명성을 얻었으니 확신해도 좋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설명이 아닌가요? 다른 사람을 속이는 데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수 있죠. 우리는 설득 교육 프로그램에서 먼저 참가자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을 속인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느냐'고요. 그리고 '당신이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은 일을 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모두가'절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일시적인 성공을 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게 우리의 관점입니다. 경영은 항상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한 요즘은 설득하는 사람이나 설득당하는 사람의 프로세스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인터넷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굉장한 도구입니다. 우리의 설득 메시지를 인터넷으로 내보내면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대면(對面) 접촉과 비교하면 인터넷 접촉으로 잃는 것도 있습니다. 우선 얼굴을 직접 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는 호감도가 감소합니다. 이메일로 협상이 오갈 때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아요(E-mail has no humanity). 스크린에 무미건조한 글자만 나올 뿐이죠. 이메일을 보낼 때라도 상대방의 취미나 학교, 고향, 자녀 등 개인 정보를 넣어서 얘기하면 협상 성공률이 훨씬 증가합니다."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과학"
―미국 대선 캠프에서 조언을 요청받은 적은 없나요?
"미국에서는 없었지만, 올 초에 영국은 노동당과 보수당 양쪽에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어요. 멀리 미국에 있는 전문가라서 더 희소성이 있었나 봅니다.(웃음) 환경 보호와 에너지 절감에 관한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었죠. 정부가 시민들을 환경 보호에 동참하게 하려면 무조건 돈을 많이 쓰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케이스를 많이 만들어서 홍보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그래야 정부가 원하는 쪽으로 환경 이슈를 끌어갈 수 있죠. 에너지 문제가 특히 그렇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와 매케인 후보의 선거 운동에서 차이점은 어떻게 보시나요?
"오바마와 '다른 사람(the other guy)'이요? (웃음) 이번 선거는 저도 주의 깊게 지켜봤습니다. 두 정당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민주당은 다수의 선택이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왼쪽 관련 기사 참조〉을 따랐습니다. 민주당은 풋볼 경기장에 오바마 후보를 등장시켰습니다. 무려 8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곳이었죠. 그러고는 '보시오. 이 사람이 여러분이 선택할 옳은 사람입니다'라고 주장했죠. 반면 베트남 참전용사인 매케인 후보는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포로 시절 경험을 강조했습니다. '제가 국가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살게 됐습니다. 명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저를 선택해달라'고 유권자에게 부채(負債) 의식을 불러일으켰죠.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이 어떤 사람의 설득에 더 이끌렸는지 보여줄 겁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치권이나 기업에서 상대방과 대화할 때 꼭 익혀야 할 설득의 기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은 과학이라는 겁니다. 한국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최신 과학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성공담, 일화 등에 의존하지 말고, 50년간 학계가 연구해온 결과가 나와 있어요. 메시지를 보낼 때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참조하세요.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설득력입니다. 이것이 가장 유일하고 좋은 조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글로벌화됐다고 해도 국가나 민족에 따라 특성이 다른데, 교수님이 분류한 설득의 6가지 법칙은 어느 나라에나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설득의 6가지 법칙은 세계 공통(universal)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쓴 '설득의 심리학'이 25개국에서 출간될 수 있었겠죠. 문화가 달라도 인간 행동의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나라별로 약간의 변형이 있을 수 있죠."
☞치알디니 교수는
인성(人性)과 사회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로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및 비즈니스스쿨 마케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포천(Fortune)은 그의 저서 '설득의 심리학'을 '가장 스마트한 75권의 비즈니스 서적'에 선정했다. 밀워키에 있는 이탈리아 이민 집안에서 태어나 위스콘신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에는 사회심리학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도널드 캠벨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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