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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의 왕은 징이다(2) /징만드는법

花受紛-동아줄 2008. 12. 28. 23:13

풍물의 왕은 징이다(2)

세계 여러나라에 우리의 징과 닮은 악기들이 존재하는데, 공(gong), 탐탐(tam-tam), 망라(가운데가 돌출된 징 모양의 중국악기)라 불리는  악기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외형이나 연주방법이 우리의 징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그 소리에 있어서는 징과 다른 음색을 갖고  있다.
모양새가 가장 우리의 징과 흡사한 망라마저도 그 소리의 음색에 있어 우리의 징과 다르다.

여러 가지 연주법이 개발되어 현대음악에서도 널리 쓰이는 공이나 탐탐은 소리가  땅땅거리고 가벼워 우리의 징처럼 넓고 깊은 폭의 울림을 전하지 못한다. 물론 그 차이란 문화와 기질의 차이에서 생길 것이다. 분명 징소리에는 우리다운 그 무엇인가가 있다.

우리답다!

그 "우리답다"는 소리란 과연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우리의 징소리도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다. 서울, 경기자방 사람들은 비교적  땅땅한 소리를 좋아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여물고 육중한 소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경상도  사람들은 웅장한 맛이 있고 여운이 긴 소리를 많이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소리의 취향이 각각이지만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찾는 성질이 있었다. 우선, 부드럽고 웅장하되 앙칼진 데가 없어야 했다.

 

또 징의 소리에는 쇠의 잡음이 섞이지 않아야 하며 소리가 퍼지거나 갈라져도 안됐다. 맑고 분명한 제울음을 내야만 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육중한 맛이  있으며 끝 여운이 길게 뻗어나가다가 하늘을 치솟는 듯한 맛을 내야 했다. 그런 소리를 "황소 울음소리"라고 했다. "우웅~"하고 트리는 소리가 굴곡을 그리며 길게 뻗다가 끝을 부드럽게 채며 사라지는 것이 마치 황소의 울음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런 비유가 생겼다고 한다.

석양의 시골길을 가다 "음메~"하는 황소울음을 들으면 왠지 고향소리 같고  마음이 그저 훈훈해지며 이게 우리 소리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징소리에서도 이런 느낌이 나야 좋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소리를 내는 징이 좋은 징으로 꼽혔다.


그러나 황소 울음소리를 내는 징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징의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면 결코 오를 수 없었던 회고의 장인인 대정이들도 황소 울음소리에 평생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 소리를 잡아내지 못하고 마는 대정이들도 많았다니 우리로서는 그 어려움을 헤아리기 어렵다. 황소 울음소리는 일정한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가슴과 감각으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렵고도 오묘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메질과 성형작업이 기계화된 현재의 제작기법에서도 소리를 만드는 공정만은 어쩔 수가 없다. 대정이가 두들기는 망치질에 자리를 넘겨줘야만 한다.

 

현대기술도 대정이의 경험과 정성이  도달한 경지를 범접치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딱딱한 쇳덩이에 온갖 재주와 정성을 받쳐 생명을 불어 넣어야만 비로소 황소울음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대정이들은 자기만의  감각과 방법으로서 징 울음을 잡는데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징은 놋쇠로 만든다. 놋쇠는 넒은 의미로 동을 기본으로  하는 비철금속의 합금을 통칭하는데, 동과 주석의 합금물인 청동, 동과 아연의 합금물인 황동  동이 이에 포함된다. 이 중 징의 재료는 청동이다. 청동은 황동보다 내식성과 내마모성이 좋아  악기 공예품이나 미술 공예품의 재료로 주로 사용되어 왔다.

 

징은 생활용품이 아니고  소리를 내야 하는 악기이므로 최고의 재료를 써야만 한다. 합금비율이 맞지 않거나 잡쇠가 섞이면 메질할 때 쇠가 깨져비리기 때문에 최상품의 동이나 주석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다행이 우리나라는 좋은 놋쇠를 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이 좋기로 이름난 나라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신라동·고려동이라 하여 주나라 원나라에 수출이 활발하였고, 특히 고려시대의  동은 중국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 식기·수저·화폐 등을 만드는 원료로 크게 쓰였다. 좋은 징,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1차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좋은 재료를 갖고 혼신의 정성과 기술을 발휘한 셈이다.


징소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음향을 분석해 보면 징소리를 구성하는 각 부분 음들이 배음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악기의 음은 모두 휘파람소리와 같은 "단순한 음"이 여럿 혼합되어서 하나의 음을 형성하는데, 징소리에서는 마치 효과음 역할을 하듯 부분음들이 배경음 관계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이는 여타 타악기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으로 징이 타악기이면서도 일정한 음높이를 가지며 자체로도  조화롭고 아름답게 들리게 하는  요인이다. 같은 재질과 같은 제작과정을 거치는 꽹과리소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현상이란다. 이런 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또 다른 특성으로 징의 음은 음이 시작된 후 음높이가 점차로 올라가는 현상이 있다. 끝 여운이 길게 뻗어나가다가 하늘을 치솟는 듯한 맛을 낸다는 말이다. 이것은 징의 판이 평면판이 아닌 약간 볼록한 곡면판(징의 두께는 부위별로 다르다. 중앙을 붕뎅이라고 하는데 대개 6mm내외다. 바깥쪽으로 갈수록 얇아져 가장자리  부분은 2mm정도가 된다)이라는 것과 진동진폭이 커서 비선현으로 진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단조롭지 않고 긴장을 주는 음이 되게 한다. 이러한 음높이 상승현상도 꽹과리에서 보다 징에서 현저하다.

 

그리고 징소리는 맥놀이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같은 주파수의 음파가  만나면 음파가 서로 간섭하여 주기적으로 증폭되었다가 사라지는  비트(beat)현상으로서 소리가 몇 구비의 파도를 그리며 길게 울려 퍼지게 만드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범종을 가장 우리나라의 종소리답게 만드는 요소로 이 맥놀이현상과 여음을 꼽는다. 황소울음을 토해내는 징소리도 맥놀이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나면서 긴 여운을 갖는다. 징소리가 담을 타 넘고, 낮은  언덕배기와 산을 감아 돌면서 멀리 멀리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은 이 맥놀이의 작용으로 가능한  것이다. 맥놀이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상 간단치가 않다.

맥놀이와 여음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맞춰야만 한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정확하게 (구리 : 주석 = 3.75 :  1) 맞아야 한며, 원형판이어야 하며, 가장자리에 전두리 모양을 갖춰야 하며, 담금질의 시간과 물의 온도가 적정해야 하며, 담금질의 횟수가  많을수록 좋고, 메질의 횟수가 많을수록 좋고…
그 중에서도 저울이나 기계의 힘으로 해결 안되는 영역이  있으니 울음작기의 메질이다. 메질!

 

전체의 두께가 다른 것에 비해  얇은 징일수록 소리의 울림이 좋다고  한다. 징바닥이 얇은 것은 그만큼 메질을 해서 펴진 것이므로 쇠의 조직이 곱고 부드러워 소리가 한결 은은한 맛이 난다. 요컨데 금속의 합금물에는 기공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기공은 메질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제 울음을 내는 하나의 징이 완성되기까지는 수 천 번의 세심한 메질이 쇠 위에 박혀야만 한다. 메질을 하는 동안 소(바디기 : 장을 만들기 처음 단계의 쇳덩이로 둥글고 평평한게 빈대떡처럼 생겼다)가 식으면 다시 풀무에 넣어 달궜다가 3~4명의 메질꾼들이 한 사람이 작업하는 것처럼 한호흡으로 돌아가며 수 없이 되풀이되는 내리치기! 담금질과 메질을 반복하면서 끝없이 되풀이 되는 메질! 징의 형태를 갖출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는 메질. 풋울음을 잡기 위해서는 대정이의 수 백번 수 천번의 세심한  메질이 이어져야 한다. 풋 울음이이 잡혔다고 해서 징소리가 완성된 것이 아니다.

 

뜸들이듯 두세 밤을 더 재우고 난  다음, 시커멓게 그을린 모양새를 보기 좋게 다듬는 가질 작업 때문에 다시 숨어버린 울음을 찾기 위해 대정이의 망치가 다시 혼신의 땀과 정성을 받쳐야만 하는 것이다. 메질 말이다. 자시에 시작된 작업이 날이 훤히 동터올 때까지 계속되는 메질! 그래도 잡힐까 말까 한 황소울음소리! 수 없는 메질과 담금질의 인고를 거치고서야 놋쇠는 비로소 울음을  토해낼 수 있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대정이의 숨결과 기운을 나눠 갖고서 말이다.

수도 없이 메질을 당하는 놋쇠는 갖는 질곡을 거치며 인고의 세상을 살아온 조선의 민중들과 많이 닮아있다. 묵묵히 온갖 힘든 농사일을 다 해주고, 죽어서도 가죽 하나 버림없이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몸을 공양하고 떠나가는 황소와도 닮아 있다.  그 메질과 아픔을 통해 나오는 소리이기에 "울음"인가. 그래서 징소리를 굳이 황소 "울음"이라고 표현하고 "울음잡는다"고 인식한 것일까?
그러나 그 울음은 승화된 울음이다. 자신을 극복한 울음이다. 그래서 깊고 웅장하고  여운이 길다.


그 울음은 삼라만상을 한 품에  능히 안을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징소리는 삼라만상을 한품에 안고 있는 하늘에 비유되어 "하늘의 소리"라고도 하였다.


하늘의 소리는 긴 여운을 갖고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간다.  이미 징소리의 특성에서 살펴보았듯이 음이 시작된 후 음높이가 점차로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도록 만들어진 결과다. 그래서 장소라는 인간세상의 뜻을 하늘에 전달하는 용도로도 자주  쓰인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천신에게 기원할 때는 물론이고, 특히, 무악에서 징은 인간의 소리를 하늘에 전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징을 울림으로서 굿하는 사실을 하늘에 알리는데,  이는 "하늘의 소리"인 징의 음이 인간이 직접 닿을 수 없는 천신의 세계에 울려 인간의 의사를 하늘에 전달하는 매개의 몫을 담당하는 셈이다.

"삼승할망본풀이"라는 무가가 있다.  제주도의 산신신화(産神神話)로서 그  내용이 이러하다.
아직 산신이 없을 때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인간들이 이 징과 바라를 울리며 자식을 내려주도록 기원을 했는데,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울려 퍼져  옥황상제가 그 소리를 듣고 "삼승할망"을 산신으로 하명했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를 통해 징소리가  천신을 감동시키는 기능이 있는 악기라고 믿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며, 그래서 기원(祈願)악기로 쓰인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조선사람이라면 "곤지곤지놀이"를 다 알 것이다.  "잼잼놀이"와 "도리도리놀이"와 더불어 조선인으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엄마나 할머니가 가르쳐 주는 "곤지곤지놀이"를 배우며 자란다.

 

엄마가 "곤지곤지"라는 말을 하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반대편 손바닥의 중앙을 반복하여 찍어대면 아이가 이를 따라 하게 되는 놀이다. 이 놀이에 함축된 상징과 그 의미는 이렇다. 곤지곤지 놀이를 하게 되면 손가락과  손바닥이 만나면서 한 점을 만들게  된다. 표시를 하지면 "·"이 될 것이다. 이 점을 " "이라고 읽는다.  우주 만물의 근원이며 종시(終始)를 이루는 하늘(한울님)이자 생명을 담고 있는 씨앗을 의미함과 동시에 수(數)로서는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곤지곤지놀이의 형상은 바로 징을  치는 모습과 닮아있다. 징(손바닥)의 중앙을 때리는 징채(검지손가락)가 만들어  내는 징점과 그 징점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파장! 고로 징소리는 한울의 소리이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생명의 소리라 하겠다. 이런 의미가 상징화되어 극명하게 발현되는 현장이 제의일 것이다.

 

풍물굿에서 이런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제의라면 당산굿이다. 당산할아버지·할머니(삼신·지신  : 한울님·따님 : 남·녀 : 陰·陽) 두 분을 일년에 한 번씩 좋은  음식과 놀이를 준비하여 모셔다 합방까지 시켜드리며 잘 받들어 모시는 구조와 내용을  당산굿이 갖는 것은 두 당산신령님이  운우지정을 나누면서까지 만들어 내는 생명력을 얻고자 함이며, 그 생명력은 앞으로 일 년을 잘 살아갈 힘이 되니 당산굿이란 결국 이 힘을 재충전 받는 자리다.  그 당산굿의 현장에서 징이 갖고 있는 하늘의 의미와 생명의 의미를 충격적으로 확인했던 사례 하나!전라남도 완도군 금일도라는 섬이 있다.

 

강진의 마량(제주도로 가는 배가 뜨는 항구다)이라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나오는 섬으로 제법 커서 섬전체가 행정구역상 읍으로 되어있다.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읍이 행정명이다. 그 금일도에 있는 동송리라는 마을은 섣달 그믐날 당산굿을 올린다. 먼저 유고식으로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동네를  사람들이 음복을 하고 좀 쉰 다음에 메구꾼(풍물패)들이 당산에 가서 당산굿을 다시 치게 된다. 1997년에 이 마을을 찾았을 때, 당산굿은 당나무 앞에 굿꾼들이 도열을 하여 일체부터 죽 올라가면서 시작되었다. 삼채로 당산굿을 치고 절을 3배씩 3회, 총 9번을  하였다. 여기가 지는 그 지방의 여타 마을의 당산굿 절차와 대동소이하여 절차의 차이점만 파악하여 비교적 여유롭게  참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절이 끝나자  충격적으로 나의 눈길을 붙들어 매는 상황이  벌어졌다.

메구가 당산나무를 돌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는데 그때까지 상쇠가 이끌던 굿과  메구를 징수가 맨 앞으로 나서며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닌가. 그  뒤를 상쇠 이하 메구꾼들이 따르며 당산을 돌았다. 이는 분명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과 지식을 뒤엎는 광경이었다.


이 광경을 음미해 보자면 이렇다. 당산신령님에게 생명력에 대한  기원을 드려 그 생명력을 재충전 받았으므로 당산신령님의 생명력을 대변하는 징이 굿을 이끌게 된다는 구조와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즉, 풍물소리는 북, 장구, 소고,  벅구 등의 가죽소리(陰磬)와 꽹과리, 징의 쇳소리(陽磬)로 대비가 된다. 그 상대적인 두 가지 성질의 소리는 굿을 통해 조화를 이뤄내게 된다. 풍물 중에서도 주로 소리를 내기 위해 쓰이는 풍물을 돌라면 꽹과리, 징,  북, 장구로 압축될 것이다. 가죽소리가 둘이고 쇳소리가 둘이다.

 

가죽소리는  또 다시 양의 소리(북)와 음의 소리(장구)로 대비가 되며, 쇳소리 역시나 양의 소리(꽹과리)와 음의 소리(징)로 대비가 된다. 그런데 이 소리들이 전체적으로 울릴 땐 각 소리으 성질상, 꽹과리는 강한  남자의 소리(太陽磬)가 되고, 북도 남자의 소리(小陽磬)가 되며, 장구는 간드러진 여자의 성질(小陰磬)이 될 것이며, 징은 가장  강한 여자소리(太陰磬)가 되어 각각의  몫을 담당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재질 상으로는 양성(陽性)임이 분명한 징(금속)이 굿을 함께 치게 되면 가장 강한 음(陰)의 성질을  담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가죽소리도 아닌 금속성의 징에게 새생명을 잉태해 키워내는 어머니와 같은 덕목을  부여하고 있다. 평소에는 꽹과리가 태양성으로서 굿을 이끌어 가지만 새  생명을 만들어 해산하는 순간에는 태음성(어머니性)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징이 앞장을 서는 것이다.

동송리의 당산굿은 이런 세상의 이치와 생명의 원리를 정확하게 구현해 내고 있는 의식으로서 아주 희귀한 사례라 하겠다. 나아가 고형의 제의양식일 것이라는, 현재의 풍물굿은  이를 잊어버렸다는 추론을 하게 만든다.


"하늘의 소리"란 표현 속에 뭔가 새로운 상황과 사업을,  그리고 생명을 만들어 내는 토대로서 완성자로서, 또한 그 역할에 충실하는 모습을 담고 있기에 현세적인 차원에서는  "풍물의 왕"이라는 표현이 가능해 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징이 풍물의 왕이라는 의미를 음미할 기회를 한 번 더 갖고 마무리를 하자.
<통로>의 문을 열어 줄 것인가 막아  버릴까는 징(징수)의 "멋대로"에 달린 셈이다.  그런데 징의 "멋대로"는 자신의 감정을 "꼴리는"대로 발산하는 것은 접어두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이 신나게 잘 놀면서 서로 어우러지는 것을 확실하게 책임져주는  것에서 "멋"을 찾고 있다. 칼자루를 쥐었으니 왕(권력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접고  전체와 개인 모두를 감싸안아 하나로 통합시킴과 아울러, 전체와 개인 모두를 감싸안아 하나로 통합시킴과 아울러,  전체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욕구도 최대한 살려준다는 점에서 징은  진정한 왕이다. 이점이 징의 덕목이다.

대개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풍물패의 경우 징은 신체적으로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청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나 거동이 전혀 불가능한 사람이 아닌 경우 징을 잡고 당당히 풍물패에 합류할 수  있다. 그리고 동네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경우 징수로 환영한다. 징의 덕목과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결함이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똑같이 움직이며 멋을  부릴려면 장애 요소가 분명하지만 전체와 남을 위해 자신을 보탤 수 있는 멋까지 막는 장애요소일 수는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최대로 내 몸을 발현시키는 것이 내 마음 뿐만 아니라 남들의 마음까지 한껏 발현시킬 수 있는 길이라면 더 할나위 없는 것 아닌가! 바로 그 통로와 접합지점이 풍물이고 징이다. 이를 통해 이들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과 동등하게 만날 수 있다. 당당한 공동체 성원으로 동참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징의 덕목은 남이야  인정하든 안 하든 이들을 정신적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올려 놓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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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은 우리나라 악기 중 가장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것은 크기에 따라 그 이름이 달리 되어있고 또한 지방에 따라 달리 불리기 때문이다.
징이라는 이름 외에 단순히 금(金) 또는 금징(金鉦)이라고 하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징을 대금(大金), 꽹과리를 소금(小金)이라 하여 그림과 함께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대야처럼 생겼다고 해서 민대야 또는 옥대야라고도하며 무당이 쓰는 징은 광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징은 쇠와 함께 농악에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흔히 꽹과리는 중요하게 생각하나 징은 소홀하게 평가되기가 쉽다.


농악에서 쇠는 잔 가락을 치고 징은 대개 첫 막에만 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장단 안에서 여러번 치기도 한다. 즉 농악에서 장단을 차(次)또는 채라고 하는데 일차에서 12차까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차라고 하는 것은 징을 치는 횟수를 말하는 것으로 칠채는 징을 일곱번 친다는 것을 가리킨다. 징은 그밖에도 무당 굿과 시나위에서 거의 엎어놓은 상태에서 치기 때문에 소리가 크지 못하나 신비감을 준다.


절에서 울리는 재에서 범패(梵唄)를 부를 때는 그냥 든채 친다. 무당이 쓰는 징은 비교적 작은 것이나 절에서는 큰 것을 사용한다.

징은 민속 음악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종묘 제례악과 대취타(大吹打)에 편성되기도 한다. 종묘 제례악은 정치(政治)를 잘 했다는 의미의 보태평(保太平) 열한곡과 군사적 업적(武功)을 기리는 정대업(정대업) 열한곡이 있는데 징과 꽹과리는 이 정대업의 매 박자 첫 박에 쳤다.


그러나 요즘은 꽹과리는 치지 않고 징만 연주한다. 특히 징은 제례의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에서 연주하는데 종헌에서는 징을 열번 친다. 군대에서 징은 북과 함께 사용되었는데 북은 전진을, 징은 후퇴나 싸움을 거두는 신호로 사용했다.


또 예전 군악에서도 징은 북과 함께 기본박자를 짚어 갔다. 군악 연주에서 대취타는 처음에 등채라고 하는 군악대장이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라고 외치는데 이 말은 금, 즉 징을 한번 울려 대취타를 시작하라는 명령이다.


징이 한번 꽝 울리고 그 다음 북이 따닥 딱 하고 템포를 제시하면 모든 악기가 음악을 시작한다. 이때 템포는 약< = 40> 정도로 매우 느려 현재의 군악< = 80-90> 보다 배나 느리다.


따라서 여러가지 타악기가 서로 잘 맞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템포에 맞추어 행진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요즈음은 각급 학교를 국악 시범학교로 지정하고 취타대(吹打隊)를 운영하는데 여러가지 국악 행진곡을 연주한다. 징은 지름이 37cm 에서 40cm 정도의 여러가지 징이 사용되는데 절에서 사용하는 것이 제일 크며 무게는 한관(貫)이 넘는 것도 있다.


징채는 나무채에 보통은 천을 감아치는데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예전에는 짚을 감아 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징채가 단단해지는 경향으로 해석된다.
농악이나 사물놀이 중 서서 연주하는 선발의 경우 호남 농악에서는 쇠잽이만 부포를 돌리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으나 웃다리나 경상농악에서는 쇠잽이도 다 상모를 쓰고 돌리는 것을 같이 해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쇠가 여럿있을 때 제일 우두머리 쇠를 상쇠라 하여 대장을 삼고 다음을 부쇠, 그 다음을 종쇠라고 부른다. 징이나 꽹과리는 주석(朱錫)과 구리(銅)를 28:72의 비율로 용해시키는데 좋은 소리나는 것을 만들려면 약간의 금과 은을 넣어야 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북쪽지방은 만들기 쉬운 그릇을 많이 만들었고 남쪽 지방에서는 징이나 꽹과리 등 악기류를 만들었다. 이들을 만드는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용해 : 필요한 쇠붙이를 도가니에 넣고 용해시킨다.
2) 형틀에 넣기 : 만들고자 하는 물건과 크기에 따라 크고 작은 둥그런 모양을 부어낸다.
3) 1차 두둠질 : 형틀에서 부어낸 것을 조금 두드려 얇게 하고 가운데가 약 간 들어가게 한다.
4) 2차 두둠질 : 3-4차례 불에 달구면서 두드려 기본 모양을 만든다.
5) 분리작업 : 아홉겹으로 두드려진 것을 하나하나 분리한다.
6) 3차 두둠질 : 보다 완전한 모양을 만들고 두께를 고르게 하고 담금질을 한다.
7) 1차 소리잡이 : 평범한 소리가 나는 것을 바닥을 두드려 악기 소리가 되 도록 한다.
8) 깎음 : 깎을 곳을 깎아 다듬는다.
9) 2차 소리잡이 : 마지막으로 다시 완전한 소리가 나도록 다시 두드려 소리를 잡는다.
10) 손잡이를 다듬는 등 상품으로 마지막 손질을 한다. 여러 과정 중 두둠질과 소리잡이가 가장 중요하다.
두께가 원하는 대로 되도록 하는것과 바닥을 두드려 좋은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은 요술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징이나 쇠는 바닥의 가운데가 가장 두껍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아지다가 구부려지는 데서부터 다시 두꺼워져야 한다.
이것은 가운데를 때려 생긴 울림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아지다가 구부려지는 데서부터 다시 두꺼운 끝으로 가면서 다시 그 울림을 잡아 주는 역할이 되기 때문이다.


두둠질은 불에 달구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땀을 비오듯 흘려야 하며 재미없는 일이고 수입도 좋지 않아서 점점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그 전승이 위태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 유기장(鍮器匠)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 6월 주물(鑄物)에 안성의 김근수(金根洙, 1916생)를, 방자(方字)에 서울의 이봉주(李鳳周, 1926생)를, 반방자(半方字)에 전남의 윤재덕(尹在德, 1914생)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들 인간 문화재들은 연로(年老)하여 그 대를 물려주는 단계에 와 있다. 이제는 그 다음 세대에 기대를 걸어야 되겠다.


현재 징과 쇠를 잘 만드는 사람은 인간 문화재 이봉주와 함께 일해온 김문익(金文益, 1943,경남 함양)이다. 그는 남갑진과 더불어 1978년부터 운라 등 전통 악기를 재현하여 보급했다. 또한 전문가용 징, 쇠를 제작하는 등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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