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굿의 과제와 전망 - 편자 ; 채희완 임진택 ..
□ 해설
채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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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구비의 시절.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어림짐작 눈길로 전해질 뿐, 있었던 뒷 자취조차 스스로 없이하려 했던 70년대 이후 마당의 연희를 추스려 모아 그 웅크린 정체의 일면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드러내 보았다.
어느 때인들 사람 사는 데에 노래와 춤과 이야기, 재담의 한판 놀이가 없었으랴 마는 이 강요된 구비의 시대, 민중의 삶 속의 연희들은 (한번하고 나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일회적 무형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예나 다름없이 역사의 밑 그늘에서 이름 없이 묻혀 흘러갈 따름이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것은 옛 민중 연희의 내림을 이어받아 차라리 '드러나지 않음'과 '이름 없음'을 가지고 격변하는 한 시대의 역정을 증언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적 삶의 숨은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 크기와 깊이를 좀체로 가늠할 수 없는 민중의 삶의 실체를 언뜻 내비치면서 이 작은 기록물은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민중의 '끝내 살아 있음'을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제대로 알릴 수도,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유언비어의 시대적 수렁에서 알릴 것을 알리고 그릇 알려진 것을 제대로 바로 잡음으로써 민중적 진실을 전하는 언론의 한 통로로서 한 구실을 떠맡았음에는 분명하다.
이제 깔묻혀 숨은 삶의 이야기들을 빙산의 일각처럼 세상에 떠올려 수면 아래 거대한 민중적 삶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말문을 열어 보자.
살아 있음에 겨워 마구잡이로 놀아 대는 것이야말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고 살고 있음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주장하는 민중적 깨우침의 싸움굿이다. 일과 놀이와 싸움과 비념이 한 몸뚱아리인 마당굿은 그러므로 일놀이이며, 제대로 살기 위한 판싸움이고, 적과 적이 화해하는 살풀이이며, 이 땅의 그늘진 삶으로 세계에 빛을 던지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억눌리고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이름 없는 민중의 삶이 거룩한 삶임을, 세계사적 쓰레기가 덤불로 쌓인 이 땅이 거룩한 땅임을 전민족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천명하는 천지 굿이다.
그러므로 마당굿 운동은 새로운 연극 운동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싸움을 삶 속에 모아 다시 나누어 갖는 문화 운동이며,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 공동 해결하는 사회운동이고, 민족적 신명으로 제3세계의 생명을 예축(豫祝)하는 생명 공동체 운동이다.
마당 굿의 개념은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 땅에서 성취되어야 할 민중적 삶의 승리를 위해 끝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굴러가는 생명 분화의 실마리, 열린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물은 민중적 삶의 실체에 접근해 보는 작은 화두(話頭)거리이며, 민중적 신명을 불러 장단을 청하는 불림이자, 이 땅을 유토피아로 신내림 받는 공수이다. 그것은 오늘 이 땅 사회 구성원의 공동적인 염원인 민주. 평등 사회의 건설, 민족 통일국가의 수립을 위한 민족적 비나리의 단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름 없는 민중 군상이 어두운 속 강요된 구비적인 삶을 뚫고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는, 역사 운행의 기운인 민중적 세계관이 지금 이 자리에 터를 잡는 역사맞이굿의 판열음, 터벌임의 길놀이이다.
2
여기 실은 연희 본들은 70년대 이후 민중 연희로서 마당 굿의 전체 상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공인된 통로의 것이든 공인 안된 통로의 것이든(아마추어의 것이든 전문 집단의 것이든, 대중 집회의 것이든 극장 예술의 것이든, 실내 공간이든 옥외 공간이든) 경향 각지에서 현장 생산 담당 층을 상대로 하거나 지식인층이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거나 간에 많고 적은 관중을 눈앞에 두고 실제로 연행된 연희 중에서 이른바 '문제의식'을 비교적 선명히 내세우고 있는 것들을 가려뽑은 것인데, 그 사회 문화적 의의나 예술적 수준을 두고 볼 때 이들이 이 시대의 민중극을 대표하고 있다고 하기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일단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선정된 14편의 마당굿은 그 주제나 내용상의 문제의식을 다소간 거친 대로 민족 문제, 농촌 문제, 근로자 및 도시 빈민 문제, 사회 일반 및 시사 문제,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 문제 등으로 나누고 이러한 순서에 따라 이들을 배열하여 목차를 꾸몄다. 문제 단위의 구분은 명확한 것이 아니고 민족-농촌-도시-일반 사회-역사-민족 등으로 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편의상의 구획에 지나지 않는다.
Ⅰ. 민족문제
외지인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뿌리뽑혀 가는 탐라의 현실에 대해 강력한 저항 의지를 담아 내면서, 민족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태 땅].
일본의 정치 경제적 침투, 이에 따른 사회 문화적 예속 상황을 기생 관광에 맞추어 그려내면서 한일간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묻고 있는 [소리굿 아구].
Ⅱ. 농촌 문제
시련과 갈등 속에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현실 문제에 대한 투쟁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한 농촌계몽선전극 [진오귀굿].
농협의 파행적 농산물 수급 정책이 끝내 집단적 피해 보상 운동을 불러일으킨 78년 '함평고구마사건'의 승리 담을 담은 [함평고구마].
농업 축산 정책의 고질적 병폐가 몰고 온 70년대말 '돼지 파동'을 생활 주변의 현장에서 그려내면서 이를 각종 농축 산물 가격 파동의 전형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킨[돼지 풀이].
Ⅲ. 근로자 및 도시 빈민 문제
70년대 노동조합 탄압의 본보기인 동일 방직 사건을 노래굿으로 담아 노동문제의 사회화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창출해 낸 [공장의 불빛].
도시 외곽 지역 날품팔이 가정의 하루 삶을 통해 70년대 초 도시 빈민의 각박한 삶의 비애를 축제로 이끌어 낸 [돼지꿈].
이른바 '무등산타잔사건'으로 알려진 77년 광주 무등산 판자촌 철거반원 살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적 진실을 현장 증언하고 있는 [덕산골이야기].
Ⅳ. 사회 일반 및 시사문제
74년 동아 일보 광고 해약 사태와 함께 언론 자유를 외치다 거리로 내몰린 동아 일보 기자들의 투쟁일지를 그려내 사건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진동아굿].
공해 피해 보상 소송 사건을 소재로 공해 문제가 이 시대 현실 상황의 중요한 극복 과제임을 주지시키면서 반공해운동의 일환으로 마련된[청산리 벽폐수야]
84년 전국을 휩쓴 물난리를 맞아 천재지변이라고 강변하는 관과 대항하여 피해 주민의 단합된 힘을 과시하면서 피해 보상 운동에 참여한 [강쟁이 다리쟁이].
Ⅴ.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 문제
황해도 장수매 설화를 토대로 조선조말 민중의 봉기를 그린[장산곶매].
조선조 철종조 강제 겸란을 토대로 제주도 대정골 화전민의 봉기를 그린 [돌풀이].
'밥이 하늘이다'라는 정치적 주문을 통해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현재성을 묻고 있는 [녹두꽃].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이 시기의 마당굿을 위의 문제의식에 맞추어 아쉬운 대로 천거해 본다면 Ⅰ에 해당되는 것으로 [두한춤][땅풀이(수눌음 공연)][유감풀이][내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Ⅱ에는 [나락놀이][쌀풀이][허연 개구리][땅풀이(녹두패 공연)], Ⅲ에는 [동일방직문제를 해결하라][미얄][노동의 횃불][서울로 가는 길][밤하늘의 별처럼][난장이][민달팽이][우리들의 이야기][어디로 갈거나], Ⅳ에는 [구리 이순신][나폴레옹 꼬냑][땅끝][유랑극단][마스게임][궁정동 말뚝이][호랑이놀이][씻김굿][먹물패][검은 강 검은 땅][햇님 달님][장사의 꿈][마당극 홍동지][냄새굿놀이][기생파티][딸놀이마당][나눔굿][84년문화정책][뛰뛰빵빵][이 세상 절반은 나][잿밥타령][한씨연대기][밥], Ⅴ에는 [노비문서][항파두리놀이][판놀이 아리랑 고개][역사탈][마당쇠][의병굿][사월굿][의병 한풀이][새재][동학][녹두벌에 다시 살아][진양 살풀이][도라지꽃] 등이 있다. 이외에 민중적 예수상을 그려낸 것으로 [금관의 예수][예수전][예수의 생애][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라]등이 있다.
더욱이 민중의 삶의 문제와 투쟁을 민중 스스로에 의해 자족적으로 표현해 낸 이름 없는 수많은 현장 촌극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이 시대 '민중극'이라는 책이름은 결정적인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탈춤, 판소리, 굿, 풍물, 인형극, 민속놀이 등 전통 연희의 형태를 창조적으로 변형시킨 것도 그러하려니와 노래굿, 마당춤판, 그림놀이, 영상매체놀이, 시놀이, 체조놀이 등 새로운 연행장르로 개발되고 있는 장르확산적 각종연희물들을 다루지 않은 것도 흠집으로 남는다.(이에 관하여서는 정이담 외,[문화운동론],도서출판 공동체, 1984, 권말 부록의 자료편이 참고가 됨.)
그리고 또 한 가지 언급해둘 것으로, 의식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널리 활용해온 역할극(roll play)이라든가 정치적 선동극으로서의 유격적 거리굿, 종교 의례의 연행화를 실험해온 예배굿, 대중집회의 현장적 운동성을 노리는 강연굿 등을 포함하여, 4.19등 민중적 기념일을 맞아 사건맞이굿, 그리고 특히 80년대에 들어와 대학가 축제의 한 양상으로 크게 번지고 있는 대규모 대동마당굿 등의 실상도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정리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덧붙일 것으로는, 비록 동지적인 뜻의 나눔이 아닐지라도 이 시기 민중극의 한 모습으로서 함께 포함되어도 좋은 기성연극계의 공연물들을 제외시킨 점에 스스로도 서운할 따름이다.(몇 가지 손쉬운 대로 예를 든다면[서울 말뚝이][너도 먹고 물러나라][망나니][춘풍의처][다시라기][놀부뎐][양반전][토선생전][서울구경]등이다.
이즈음에서 돌이켜보건대. 70년대 격변기에 사회문화운동의 흐름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80년대 초두에 이르러 마치 질풍노도와 같이 기존 문화풍토에 하나의 문화적 충격으로 던져진 마당굿을 두고, '정치편향에로의 지나친 경도' '관념적 과격주의''사물인식의 도식적 상투화' '표현욕구의 무절제' '무정견한 아마츄어리즘의 예술폭력''예술의 이념적 도구화' 등을 빌미로 단순한 연극양식주의자가 아닌 몇몇 뜻있는 이들조차 탈미학(脫美學)의 행태라는 마땅찮은 판정을 내린것에 못지 않게, 아직까지도 마당굿이 '감성적 향토주의' '전근대적 전통의 시대착오적 단순회귀' '무정부적 쟁이 근성의 자기해체' '예술기량의 무장해제가 빚은 저급한 즉물주의' '무양식적 예술로서의 자폭' 등으로 따가운 비판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음은 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몇몇 마당굿판이 실제로 보여준 실질내용이 위에서 지적한 언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마당굿이 일반적인 선입관이나 냉소적인 비판을 온통 묵묵히 감수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이땅에 실현되어야할 민중적 승리의 축제를 위한 문화적 쟁투로서 마당굿의 운동적 이념만을 내세우는 문화운동 관계자들의 폐쇄적인 자기옹호가 아니더라도, 여기에 실린 마당굿의 실제를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작품의 소재나 제재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솜씨가 만만치 않아 그리 단순.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표현상의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전통연희의 양식을 비롯하여 서사극, 리얼리즘극, 표현주의극, 총체연극, 거리극, 게릴라극, 나아가 제3세계의 민중극 등 다양한 현대의 극작술을 유효적절히 화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울러, 공연공간에 있어서도 '마당'이라는 한정된 장소로 국한시키지 않고 이른바 현장에서의 공연뿐만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의 공연, 나아가 상업주의적 무대마저도 배제하고 있지 않음에 유의함직하다.
이는 민중의 삶의 현장을 '마당'으로 설정한 마당굿이 '마당'의 이념적 개념을 스스로 넓힘으로써 이제는 연극운동의 당위론적 이념정립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연행예술의 한 양태로 서서히 실체화되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에 참가하고 있는 민중층을 두고 보더라도 일선의 생산 계층이라는 소박한 의미의 순수민중층으로 한정되지 않고 대내외적 억압의 굴레에서 자기해방을 갈구하는 대다수 이 땅의 사람들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가고 있는바, 이는 80년대 중반에 있어 민중운동의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화소집단 특히 지방문화패의 전국적 확산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정이담 외, 앞책 부록 자료편이 참고가 됨.)
그러나 마당굿이 새로운 연행예술로서 자기정위를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마당굿에 동원되는 표현매체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반성적 자각 때문이며 메시지의 제대로되 전달효과를 위해서라도 표현적 기량을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된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하나의 통일 선상에서 각종 표현매체의 총체적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일이 넓은 연계를 위한 자기희생적 장르확산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각 장르마다 스스로 독자적 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자기인식에서 비롯된다.
마당굿의 이념적 성격을 이루었던 제 가지 수레바퀴인 '상황적 진실성' '집단적 신명성' '민중적 전형성' '현장적 운동성'을 여기서 재론하지 않더라도 이를 고정시키지 않고 '상황' '민중' '현장' '집단' 의 4개항과 '진실성' '전형성' '운동성' '신명성'의 4개항을 자유롭게 분산. 조합하는 유연한 대응방식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현장적 진실성' '상황적 전형성' '집단적 운동성' '민중적 신명성'등등으로 확충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형성의 문제만 하더라도 전지적(全知的) 시선 속에 묻혀버린 사소함이라든가 개방성 속에 흘러가는 개성적 인식을 어떻게 구출하여 개별적 구체성과 집단적 보편성을 통합시켜 문제의 핵심에 닿을 것인가의 문제가 생겨난다. 이를테면 개별적인 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전형의 세분화, 부분의 전형화가 거론될 수 있다.
사회적이고도 현재적인, 그리하여 정치적 상상력과 결합한 상황적인 하나의 커다란 전형성이란, 굵은 선상에서 깔묻히는 작은 선들의 수많은 희생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수많은 작은 선들이 제각기 자기발언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커다란 뭉텅이로 통일되고 통일된 가운데에서 작은부분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탄생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당굿의 표현이념이 지속적 연행행위를 통한 창조적 이론화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조적인 데로 치우치지 않고 유연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양분화된 대립을 변증법적 상생(相生)으로 통일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개별적 극적 환상을 통한 내면적 리얼리즘과 공동적. 마당굿적 환상을 통한 비판적 리얼리즘, 순차적 병렬적 극적 구조와 봉합적. 통합적 극적 구조, 정공법과 우회법, 정서적 인식과 인식적 정서, 단순성과 복합성 등을 비롯하여 거칠음과 부드러움, 정려함과 고졸(古拙)함, 비속성과 고담성, 비장과 골계, 우미(優美)와 추(醜)에 이르기까지 민중적표현이념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문제성적 과제로 남는다.
3
여기 실은 마당굿이 암울한 시대의 한 역정을 숨어 증언하고 있는 자료임에는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시대의 마당굿이 과연 민중의 삶의 실상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는가. 민중적 삶의 드러냄만이 문화운동 내지 문화투쟁의 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인가. 문화운동의 전달매체로서의 마당굿이 오늘날 민중의 미적 가치와 삶의 이상을 표현하는데 과연 얼마나 적절한 수단인가. 그리고 그것이 이 땅의 민중의 삶의 한복판에서 오늘의 민중연희로 자리잡고 있는가.
그러므로 여기 실린 마당굿은 민중운동의 여러 양태를 포함하여 마당굿이 성취해야 할 최종적인 성과를 위해 여러갈래로 모색되어온 중. 단기적 과제의 일차적인 중간점검에 지나지 않는다고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닥친 과제는 첫째 현단계 민중문화운동의 향방을 가늠하면서 당위론의 단순 강조가 아니라 새로운 실천이념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현실화하는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고, 둘째로는 오늘날 삶 속의 민중적 미의식과 미적 형식을 발견해냄으로써 창조적 실천에 기여할 새로운 민중미학을 설정하는 일이다. 특히 후자인 경우는 우리의 연극언어, 음악 언어, 춤언어, 조형언어, 놀이언어의 민중적 모국어화 라고 좁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이른바 '신전통주의'로서 전통의 창조적 계승문제와 연관된다. 이의 근본적인 과제는 과거의 민중연희를 어떻게 이어받아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기보다 오늘의 현실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이를 민중전통의 역사적 지속성 속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현단계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현대 예술매체 내지 현대미학의 '민중적 접수'라고 말할 수 있고, 보다 넓게는 운동성의 보다 효과적인 확대. 심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쟁취되어야 할 예술성의 점진적 확보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적 가치가 범 사회적 가치 속에품기어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드높이는 예술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됨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민중의 중첩된 정서체험내용을 전승하는 연희담당자로서 놀이꾼이 개체 보존의 생명 에너지를 덜어낸 그 빈 자리에 민중의 총체적인 예술의욕과 신명을 채움으로써 자신의 신명을 가지고 일반민중의 숨은 신명을 불질러내는 개성적 표현기량의 획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뜻이다.
또 한가지 언급할 것은 마당굿의 창작작업이 전통민속극의 정신적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공동체의식'에 주목하여 공동학습. 공동토론을 통한 공동창작. 공동연출로서 한 개인 중심이 아니라 관중을 포함한 참여자 모두의 보편적 염원과 공동감을 민주적으로 집결하는 방식이고 나아가 문제의 핵심을 발견하고 의견을 통일하여 노선을 정리하는 자체의식화교육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성원 모두의 창조적 상상력을 수평적으로 모은 민주적 집합체가 한 개인의 탁월한 안목의 그것에 결코 못지 않음을 확인 하는 민중공동체적 창조방식의 현실화 방안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비록 개인에게서부터 착안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여러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것이어서 그 과정은 언제나 지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그 성과는 공유의 몫이어야 한다.
여기 실은 연희본들은 공동작업 속의 개별성과 책임소재를 분명히한다는 점에서 공연현장에서의 상황을 개인단위로 '책임정리'한 것이다.그러나 이 정리본은 고정된 양태로 정착될 것이 아니고 민중의 삶과 부딪치며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어 가야 할 공유의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해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기실린 연희본들이 연희본 자체로서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회성, 무형성, 현장성, 즉흥성이 남다른 연행예술에 있어서 공연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역동적인 상황이 문자표기로서는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 다는 기술상의 한계 때문이다. 특히 몸짓이나 춤, 표정이나 탈, 노래와 음악, 동작선과 공간 방위등은 문자로서 정확히 기술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이 연희본이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자와 비문자의 통(通)매체적. 교호적. 유기적. 거시적 통합 속에서 출렁이는 연희현장감을 전달하여 살아 생동하는 자료(material in action)이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행예술은 그 구비적 숙명을 끝내 어쩌는수 없는 것인가. 개체에서 총체적 연관을 보고 하나의 작은 사건조차 우주와 연관된 사건이 되어 한 가지로 열두 가지를 말하는 민중적 이야기성 속에 마당굿은 흘러갈 뿐인가.□
□ 해설
채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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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구비의 시절.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어림짐작 눈길로 전해질 뿐, 있었던 뒷 자취조차 스스로 없이하려 했던 70년대 이후 마당의 연희를 추스려 모아 그 웅크린 정체의 일면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드러내 보았다.
어느 때인들 사람 사는 데에 노래와 춤과 이야기, 재담의 한판 놀이가 없었으랴 마는 이 강요된 구비의 시대, 민중의 삶 속의 연희들은 (한번하고 나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일회적 무형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예나 다름없이 역사의 밑 그늘에서 이름 없이 묻혀 흘러갈 따름이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것은 옛 민중 연희의 내림을 이어받아 차라리 '드러나지 않음'과 '이름 없음'을 가지고 격변하는 한 시대의 역정을 증언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적 삶의 숨은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 크기와 깊이를 좀체로 가늠할 수 없는 민중의 삶의 실체를 언뜻 내비치면서 이 작은 기록물은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민중의 '끝내 살아 있음'을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제대로 알릴 수도,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유언비어의 시대적 수렁에서 알릴 것을 알리고 그릇 알려진 것을 제대로 바로 잡음으로써 민중적 진실을 전하는 언론의 한 통로로서 한 구실을 떠맡았음에는 분명하다.
이제 깔묻혀 숨은 삶의 이야기들을 빙산의 일각처럼 세상에 떠올려 수면 아래 거대한 민중적 삶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말문을 열어 보자.
살아 있음에 겨워 마구잡이로 놀아 대는 것이야말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고 살고 있음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주장하는 민중적 깨우침의 싸움굿이다. 일과 놀이와 싸움과 비념이 한 몸뚱아리인 마당굿은 그러므로 일놀이이며, 제대로 살기 위한 판싸움이고, 적과 적이 화해하는 살풀이이며, 이 땅의 그늘진 삶으로 세계에 빛을 던지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억눌리고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이름 없는 민중의 삶이 거룩한 삶임을, 세계사적 쓰레기가 덤불로 쌓인 이 땅이 거룩한 땅임을 전민족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천명하는 천지 굿이다.
그러므로 마당굿 운동은 새로운 연극 운동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싸움을 삶 속에 모아 다시 나누어 갖는 문화 운동이며,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 공동 해결하는 사회운동이고, 민족적 신명으로 제3세계의 생명을 예축(豫祝)하는 생명 공동체 운동이다.
마당 굿의 개념은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 땅에서 성취되어야 할 민중적 삶의 승리를 위해 끝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굴러가는 생명 분화의 실마리, 열린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물은 민중적 삶의 실체에 접근해 보는 작은 화두(話頭)거리이며, 민중적 신명을 불러 장단을 청하는 불림이자, 이 땅을 유토피아로 신내림 받는 공수이다. 그것은 오늘 이 땅 사회 구성원의 공동적인 염원인 민주. 평등 사회의 건설, 민족 통일국가의 수립을 위한 민족적 비나리의 단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름 없는 민중 군상이 어두운 속 강요된 구비적인 삶을 뚫고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는, 역사 운행의 기운인 민중적 세계관이 지금 이 자리에 터를 잡는 역사맞이굿의 판열음, 터벌임의 길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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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은 연희 본들은 70년대 이후 민중 연희로서 마당 굿의 전체 상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공인된 통로의 것이든 공인 안된 통로의 것이든(아마추어의 것이든 전문 집단의 것이든, 대중 집회의 것이든 극장 예술의 것이든, 실내 공간이든 옥외 공간이든) 경향 각지에서 현장 생산 담당 층을 상대로 하거나 지식인층이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거나 간에 많고 적은 관중을 눈앞에 두고 실제로 연행된 연희 중에서 이른바 '문제의식'을 비교적 선명히 내세우고 있는 것들을 가려뽑은 것인데, 그 사회 문화적 의의나 예술적 수준을 두고 볼 때 이들이 이 시대의 민중극을 대표하고 있다고 하기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일단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선정된 14편의 마당굿은 그 주제나 내용상의 문제의식을 다소간 거친 대로 민족 문제, 농촌 문제, 근로자 및 도시 빈민 문제, 사회 일반 및 시사 문제,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 문제 등으로 나누고 이러한 순서에 따라 이들을 배열하여 목차를 꾸몄다. 문제 단위의 구분은 명확한 것이 아니고 민족-농촌-도시-일반 사회-역사-민족 등으로 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편의상의 구획에 지나지 않는다.
Ⅰ. 민족문제
외지인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뿌리뽑혀 가는 탐라의 현실에 대해 강력한 저항 의지를 담아 내면서, 민족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태 땅].
일본의 정치 경제적 침투, 이에 따른 사회 문화적 예속 상황을 기생 관광에 맞추어 그려내면서 한일간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묻고 있는 [소리굿 아구].
Ⅱ. 농촌 문제
시련과 갈등 속에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현실 문제에 대한 투쟁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한 농촌계몽선전극 [진오귀굿].
농협의 파행적 농산물 수급 정책이 끝내 집단적 피해 보상 운동을 불러일으킨 78년 '함평고구마사건'의 승리 담을 담은 [함평고구마].
농업 축산 정책의 고질적 병폐가 몰고 온 70년대말 '돼지 파동'을 생활 주변의 현장에서 그려내면서 이를 각종 농축 산물 가격 파동의 전형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킨[돼지 풀이].
Ⅲ. 근로자 및 도시 빈민 문제
70년대 노동조합 탄압의 본보기인 동일 방직 사건을 노래굿으로 담아 노동문제의 사회화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창출해 낸 [공장의 불빛].
도시 외곽 지역 날품팔이 가정의 하루 삶을 통해 70년대 초 도시 빈민의 각박한 삶의 비애를 축제로 이끌어 낸 [돼지꿈].
이른바 '무등산타잔사건'으로 알려진 77년 광주 무등산 판자촌 철거반원 살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적 진실을 현장 증언하고 있는 [덕산골이야기].
Ⅳ. 사회 일반 및 시사문제
74년 동아 일보 광고 해약 사태와 함께 언론 자유를 외치다 거리로 내몰린 동아 일보 기자들의 투쟁일지를 그려내 사건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진동아굿].
공해 피해 보상 소송 사건을 소재로 공해 문제가 이 시대 현실 상황의 중요한 극복 과제임을 주지시키면서 반공해운동의 일환으로 마련된[청산리 벽폐수야]
84년 전국을 휩쓴 물난리를 맞아 천재지변이라고 강변하는 관과 대항하여 피해 주민의 단합된 힘을 과시하면서 피해 보상 운동에 참여한 [강쟁이 다리쟁이].
Ⅴ.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 문제
황해도 장수매 설화를 토대로 조선조말 민중의 봉기를 그린[장산곶매].
조선조 철종조 강제 겸란을 토대로 제주도 대정골 화전민의 봉기를 그린 [돌풀이].
'밥이 하늘이다'라는 정치적 주문을 통해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현재성을 묻고 있는 [녹두꽃].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이 시기의 마당굿을 위의 문제의식에 맞추어 아쉬운 대로 천거해 본다면 Ⅰ에 해당되는 것으로 [두한춤][땅풀이(수눌음 공연)][유감풀이][내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Ⅱ에는 [나락놀이][쌀풀이][허연 개구리][땅풀이(녹두패 공연)], Ⅲ에는 [동일방직문제를 해결하라][미얄][노동의 횃불][서울로 가는 길][밤하늘의 별처럼][난장이][민달팽이][우리들의 이야기][어디로 갈거나], Ⅳ에는 [구리 이순신][나폴레옹 꼬냑][땅끝][유랑극단][마스게임][궁정동 말뚝이][호랑이놀이][씻김굿][먹물패][검은 강 검은 땅][햇님 달님][장사의 꿈][마당극 홍동지][냄새굿놀이][기생파티][딸놀이마당][나눔굿][84년문화정책][뛰뛰빵빵][이 세상 절반은 나][잿밥타령][한씨연대기][밥], Ⅴ에는 [노비문서][항파두리놀이][판놀이 아리랑 고개][역사탈][마당쇠][의병굿][사월굿][의병 한풀이][새재][동학][녹두벌에 다시 살아][진양 살풀이][도라지꽃] 등이 있다. 이외에 민중적 예수상을 그려낸 것으로 [금관의 예수][예수전][예수의 생애][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라]등이 있다.
더욱이 민중의 삶의 문제와 투쟁을 민중 스스로에 의해 자족적으로 표현해 낸 이름 없는 수많은 현장 촌극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이 시대 '민중극'이라는 책이름은 결정적인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탈춤, 판소리, 굿, 풍물, 인형극, 민속놀이 등 전통 연희의 형태를 창조적으로 변형시킨 것도 그러하려니와 노래굿, 마당춤판, 그림놀이, 영상매체놀이, 시놀이, 체조놀이 등 새로운 연행장르로 개발되고 있는 장르확산적 각종연희물들을 다루지 않은 것도 흠집으로 남는다.(이에 관하여서는 정이담 외,[문화운동론],도서출판 공동체, 1984, 권말 부록의 자료편이 참고가 됨.)
그리고 또 한 가지 언급해둘 것으로, 의식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널리 활용해온 역할극(roll play)이라든가 정치적 선동극으로서의 유격적 거리굿, 종교 의례의 연행화를 실험해온 예배굿, 대중집회의 현장적 운동성을 노리는 강연굿 등을 포함하여, 4.19등 민중적 기념일을 맞아 사건맞이굿, 그리고 특히 80년대에 들어와 대학가 축제의 한 양상으로 크게 번지고 있는 대규모 대동마당굿 등의 실상도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정리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덧붙일 것으로는, 비록 동지적인 뜻의 나눔이 아닐지라도 이 시기 민중극의 한 모습으로서 함께 포함되어도 좋은 기성연극계의 공연물들을 제외시킨 점에 스스로도 서운할 따름이다.(몇 가지 손쉬운 대로 예를 든다면[서울 말뚝이][너도 먹고 물러나라][망나니][춘풍의처][다시라기][놀부뎐][양반전][토선생전][서울구경]등이다.
이즈음에서 돌이켜보건대. 70년대 격변기에 사회문화운동의 흐름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80년대 초두에 이르러 마치 질풍노도와 같이 기존 문화풍토에 하나의 문화적 충격으로 던져진 마당굿을 두고, '정치편향에로의 지나친 경도' '관념적 과격주의''사물인식의 도식적 상투화' '표현욕구의 무절제' '무정견한 아마츄어리즘의 예술폭력''예술의 이념적 도구화' 등을 빌미로 단순한 연극양식주의자가 아닌 몇몇 뜻있는 이들조차 탈미학(脫美學)의 행태라는 마땅찮은 판정을 내린것에 못지 않게, 아직까지도 마당굿이 '감성적 향토주의' '전근대적 전통의 시대착오적 단순회귀' '무정부적 쟁이 근성의 자기해체' '예술기량의 무장해제가 빚은 저급한 즉물주의' '무양식적 예술로서의 자폭' 등으로 따가운 비판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음은 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몇몇 마당굿판이 실제로 보여준 실질내용이 위에서 지적한 언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마당굿이 일반적인 선입관이나 냉소적인 비판을 온통 묵묵히 감수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이땅에 실현되어야할 민중적 승리의 축제를 위한 문화적 쟁투로서 마당굿의 운동적 이념만을 내세우는 문화운동 관계자들의 폐쇄적인 자기옹호가 아니더라도, 여기에 실린 마당굿의 실제를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작품의 소재나 제재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솜씨가 만만치 않아 그리 단순.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표현상의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전통연희의 양식을 비롯하여 서사극, 리얼리즘극, 표현주의극, 총체연극, 거리극, 게릴라극, 나아가 제3세계의 민중극 등 다양한 현대의 극작술을 유효적절히 화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울러, 공연공간에 있어서도 '마당'이라는 한정된 장소로 국한시키지 않고 이른바 현장에서의 공연뿐만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의 공연, 나아가 상업주의적 무대마저도 배제하고 있지 않음에 유의함직하다.
이는 민중의 삶의 현장을 '마당'으로 설정한 마당굿이 '마당'의 이념적 개념을 스스로 넓힘으로써 이제는 연극운동의 당위론적 이념정립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연행예술의 한 양태로 서서히 실체화되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에 참가하고 있는 민중층을 두고 보더라도 일선의 생산 계층이라는 소박한 의미의 순수민중층으로 한정되지 않고 대내외적 억압의 굴레에서 자기해방을 갈구하는 대다수 이 땅의 사람들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가고 있는바, 이는 80년대 중반에 있어 민중운동의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화소집단 특히 지방문화패의 전국적 확산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정이담 외, 앞책 부록 자료편이 참고가 됨.)
그러나 마당굿이 새로운 연행예술로서 자기정위를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마당굿에 동원되는 표현매체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반성적 자각 때문이며 메시지의 제대로되 전달효과를 위해서라도 표현적 기량을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된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하나의 통일 선상에서 각종 표현매체의 총체적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일이 넓은 연계를 위한 자기희생적 장르확산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각 장르마다 스스로 독자적 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자기인식에서 비롯된다.
마당굿의 이념적 성격을 이루었던 제 가지 수레바퀴인 '상황적 진실성' '집단적 신명성' '민중적 전형성' '현장적 운동성'을 여기서 재론하지 않더라도 이를 고정시키지 않고 '상황' '민중' '현장' '집단' 의 4개항과 '진실성' '전형성' '운동성' '신명성'의 4개항을 자유롭게 분산. 조합하는 유연한 대응방식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현장적 진실성' '상황적 전형성' '집단적 운동성' '민중적 신명성'등등으로 확충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형성의 문제만 하더라도 전지적(全知的) 시선 속에 묻혀버린 사소함이라든가 개방성 속에 흘러가는 개성적 인식을 어떻게 구출하여 개별적 구체성과 집단적 보편성을 통합시켜 문제의 핵심에 닿을 것인가의 문제가 생겨난다. 이를테면 개별적인 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전형의 세분화, 부분의 전형화가 거론될 수 있다.
사회적이고도 현재적인, 그리하여 정치적 상상력과 결합한 상황적인 하나의 커다란 전형성이란, 굵은 선상에서 깔묻히는 작은 선들의 수많은 희생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수많은 작은 선들이 제각기 자기발언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커다란 뭉텅이로 통일되고 통일된 가운데에서 작은부분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탄생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당굿의 표현이념이 지속적 연행행위를 통한 창조적 이론화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조적인 데로 치우치지 않고 유연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양분화된 대립을 변증법적 상생(相生)으로 통일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개별적 극적 환상을 통한 내면적 리얼리즘과 공동적. 마당굿적 환상을 통한 비판적 리얼리즘, 순차적 병렬적 극적 구조와 봉합적. 통합적 극적 구조, 정공법과 우회법, 정서적 인식과 인식적 정서, 단순성과 복합성 등을 비롯하여 거칠음과 부드러움, 정려함과 고졸(古拙)함, 비속성과 고담성, 비장과 골계, 우미(優美)와 추(醜)에 이르기까지 민중적표현이념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문제성적 과제로 남는다.
3
여기 실은 마당굿이 암울한 시대의 한 역정을 숨어 증언하고 있는 자료임에는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시대의 마당굿이 과연 민중의 삶의 실상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는가. 민중적 삶의 드러냄만이 문화운동 내지 문화투쟁의 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인가. 문화운동의 전달매체로서의 마당굿이 오늘날 민중의 미적 가치와 삶의 이상을 표현하는데 과연 얼마나 적절한 수단인가. 그리고 그것이 이 땅의 민중의 삶의 한복판에서 오늘의 민중연희로 자리잡고 있는가.
그러므로 여기 실린 마당굿은 민중운동의 여러 양태를 포함하여 마당굿이 성취해야 할 최종적인 성과를 위해 여러갈래로 모색되어온 중. 단기적 과제의 일차적인 중간점검에 지나지 않는다고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닥친 과제는 첫째 현단계 민중문화운동의 향방을 가늠하면서 당위론의 단순 강조가 아니라 새로운 실천이념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현실화하는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고, 둘째로는 오늘날 삶 속의 민중적 미의식과 미적 형식을 발견해냄으로써 창조적 실천에 기여할 새로운 민중미학을 설정하는 일이다. 특히 후자인 경우는 우리의 연극언어, 음악 언어, 춤언어, 조형언어, 놀이언어의 민중적 모국어화 라고 좁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이른바 '신전통주의'로서 전통의 창조적 계승문제와 연관된다. 이의 근본적인 과제는 과거의 민중연희를 어떻게 이어받아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기보다 오늘의 현실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이를 민중전통의 역사적 지속성 속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현단계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현대 예술매체 내지 현대미학의 '민중적 접수'라고 말할 수 있고, 보다 넓게는 운동성의 보다 효과적인 확대. 심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쟁취되어야 할 예술성의 점진적 확보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적 가치가 범 사회적 가치 속에품기어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드높이는 예술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됨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민중의 중첩된 정서체험내용을 전승하는 연희담당자로서 놀이꾼이 개체 보존의 생명 에너지를 덜어낸 그 빈 자리에 민중의 총체적인 예술의욕과 신명을 채움으로써 자신의 신명을 가지고 일반민중의 숨은 신명을 불질러내는 개성적 표현기량의 획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뜻이다.
또 한가지 언급할 것은 마당굿의 창작작업이 전통민속극의 정신적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공동체의식'에 주목하여 공동학습. 공동토론을 통한 공동창작. 공동연출로서 한 개인 중심이 아니라 관중을 포함한 참여자 모두의 보편적 염원과 공동감을 민주적으로 집결하는 방식이고 나아가 문제의 핵심을 발견하고 의견을 통일하여 노선을 정리하는 자체의식화교육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성원 모두의 창조적 상상력을 수평적으로 모은 민주적 집합체가 한 개인의 탁월한 안목의 그것에 결코 못지 않음을 확인 하는 민중공동체적 창조방식의 현실화 방안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비록 개인에게서부터 착안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여러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것이어서 그 과정은 언제나 지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그 성과는 공유의 몫이어야 한다.
여기 실은 연희본들은 공동작업 속의 개별성과 책임소재를 분명히한다는 점에서 공연현장에서의 상황을 개인단위로 '책임정리'한 것이다.그러나 이 정리본은 고정된 양태로 정착될 것이 아니고 민중의 삶과 부딪치며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어 가야 할 공유의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해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기실린 연희본들이 연희본 자체로서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회성, 무형성, 현장성, 즉흥성이 남다른 연행예술에 있어서 공연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역동적인 상황이 문자표기로서는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 다는 기술상의 한계 때문이다. 특히 몸짓이나 춤, 표정이나 탈, 노래와 음악, 동작선과 공간 방위등은 문자로서 정확히 기술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이 연희본이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자와 비문자의 통(通)매체적. 교호적. 유기적. 거시적 통합 속에서 출렁이는 연희현장감을 전달하여 살아 생동하는 자료(material in action)이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행예술은 그 구비적 숙명을 끝내 어쩌는수 없는 것인가. 개체에서 총체적 연관을 보고 하나의 작은 사건조차 우주와 연관된 사건이 되어 한 가지로 열두 가지를 말하는 민중적 이야기성 속에 마당굿은 흘러갈 뿐인가.□
출처 : 정원기의 국악 아카데미
글쓴이 : 세요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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