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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대하신 음악가 세종대왕

花受紛-동아줄 2008. 12. 15. 23:17
.. **위대한 음악가 세종대왕**

현재, 우리나라의 각 학교 음악실에 걸려있는 음악가 사진을 보면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등 서양음악가 일색입니다.
드물게 우리나라 음악가 사진도 걸려 있긴 하지만 그 사진은 홍난파, 현제명 등과 같은 한국 국적의 서양 음악가 사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음악가 사진은 전멸인 셈입니다.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음악가를 외면하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 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는 내세울만한 음악가가 없기 때문에 바하나 베토벤을 우상으로 섬길 수 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습니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의 국악 역사 속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았습니다.
단지, 우리 후손들이 못나서 그런 분들을 알아 모시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지...

특히, 판소리 쪽으로는 모차르트 이상가는 대천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국악 역사상 가장 큰 별은 세종대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양의 독일 음악이 바하에서 비롯된다면 우리 한국음악은 바로 세종대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세종대왕은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세종 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현악기인 금과 슬을 능숙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 후 임금으로 즉위하자 음악적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우리 국악 역사상 가장 찬란한 음악문화를 이룩하게 됩니다.
세종대왕의 주요 음악 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중국계 음악인 아악을 박연으로 하여금 정리하게 하여 외래 음악 수용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보여줌.
② 제례악(제사음악), 회례악(대신(大臣)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인 보태평과 정대업을 작곡하여 종래 중국계 음악 일변도에서 탈피하게 함.
③ 여민락을 작곡하여 음악을 통한 백성 사랑을 실천함. (비록, 여민락이 궁중에서만 연주되었지만.)
④ 동양 최초의 유량 악보인 정간보를 발명함.
⑤ 편종, 편경의 자체 생산을 가능케 함. 물론, 이러한 훌륭한 음악 업적은 세종대왕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세종대왕의 충신이었던 박연(1378~1458), 맹사성(1359~1438) 등과 같은 음악인들의 힘도 크게 한 몫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중의 한 명인 박연은 대금의 명수였고, 세종대왕 밑에서 많은 음악활동을 한 분입니다.
특히, 박연의 음악에 관한 상소문은 그가 얼마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가를 생생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박연은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향악보다는 중국의 아악을 더 상위 개념의 음악으로 생각했던 사대적(事大的)인 음악관을 가진 분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우의정 벼슬까지 지냈던 맹사성은 당시 향악의 최고 권위자 였다고 합니다.
임금은 충신을 만나야 하고, 신하는 성군(聖君)을 만나야 함은 음악사업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에 대해 더욱 감동적인 것은, 당시 대왕은 박연과 같이 중국사대주의적 음악관에 빠져 있었던 신하들에게 끊임없는 상소(上疏)를 받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민족적인 음악관을 굽히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우리 음악 역사에 세종대왕 같은 음악가가 한 분만 더 계셨더라도... 우리나라 각 학교 음악실에, 아니 딴나라의 학교 음악실에까지도 우리의 위대한 음악가 세종대왕의 사진이 걸리게 될 날을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우리 후손들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정원기의 국악 아카데미
글쓴이 : 사물노리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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