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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레터 김재화 글

花受紛-동아줄 2016. 9. 23. 21:14

말글레터를 팟빵에서도 만나보세요. <김재화의 말글소리편지>

 

 

姑 VS 婦(고부戰)


지난 추석 연휴 때 SNS에 떠돌던 웃픈 이야기 하나.
아, ‘웃픈’은 웃기면서도 슬픈...이라는 뜻입니다.

며느리의 카톡 문자가 우선이었습니다.
<아버님 & 어머님 보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기쁨조가 아닙니다. 나이 들면 외로워야 맞죠. 자식이나 며느리에게서 인생 위안, 기쁨, 안전 따위 구하지 마시고 외로움은 스스로 달래세요. 죽을 땐 누구나 혼자입니다.
나이는 권력이 아니라, 삶이 소멸해 간다는 것이니 혼자 조용히 물러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전화나 방문을 몇 개월에 한 번 하든, 1년에 한 번 하든, 아님 영영 하지 않아도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요? 애들 아빠 그만 좀 괴롭히세요!

이번 명절에 애들 데리고 몰디브 가니까 내려가지 못해요.
어머니 통장으로 10만원 입금해 놓았으니 찾아 쓰세요.>

 

 

시어머니의 답장은 이랬습니다.



<고맙다, 며늘아가야!
이렇게 큰돈 10만원씩이나 보내주고.
이번 명절에 내려오면 선산 판 거 60억하고, 요 앞 도로 난다고 토지 보상 받은 30억 합해서, 3남매에게 선물로 나눠주려 했는데, 아깝구나!
바쁘면 할 수 없지 뭐 어쩌겠냐? 둘째와 막내딸에게 반반씩 갈라주고 말란다.
여행 잘 다녀와라. 제사는 이 시어미가 모시마.>

화들짝 놀란 며느리, 바로 글을 보냈습니다.
<헉~ 어머니!! 친정 부모한테 보내는 메시지가 잘못 갔네요 ㅠㅠ!
친정에 몰디브 간다고 뻥치고 연휴 내내 시댁에 있으려 했거든요 헤헤^^
어머님 좋아하시는 한우갈비 사서 바로 갈게요.
항상 딸처럼 아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은 어머님께 엄마라고 부르고 싶네요. 엄마 사랑해요♡♡>

 

 

시어머니의 이어진 답장입니다.



<사랑하는 며늘아가야!
‘엄마’라 불러줘 눈물 나도록 고마운데, 이걸 어떡하면 좋니?!
내가 눈이 나빠서 ‘만’원을 쓴다는 게 그만 ‘억’원으로 잘못 썼구나.
선산 판 거 60만원, 보상받은 거 30만원이다. 그 돈으로 제사 모시려고 장 봐놓았다. 얼른 와서 전 좀 부쳐라.
사랑하는 딸아~! 난, 너 뿐이다♡♡>

며느리는 차마 더 이상 글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의 글이 다시 이어졌는데요, 이런 필살기가 없습니다.

 

 

 

<니가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구나....


...우리는 절대로 너희를 기쁨조로 생각한 적 없다. 너희가 마지못해 인상 찌푸리고 내 집에 왔다 가면 며칠씩 기분이 상하고 짜증이 났단다.
이제 주말만 되면 너희들이 올까봐 금요일부터 걱정이란다. 그 사실을 눈치 못 챘다면, 아둔하고 답답한 네 머리를 아이가 닮을까 두렵구나.

며늘아가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라. 인생은 60부터이다.
우리는 외로울 틈이 없다. 조선팔도 맛집 찾아다니기 바쁘고, 세계 유명 명승지 다니느라 너희들 생각할 틈도 전화 받을 겨를도 없단다.
참, 애들은 니들 자식이니 니들이 키워라.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
살던 집과 재산은 우리가 쓰고 나중에 우리 부부에게 즐거움을 주는 자가 있다면 넘겨주거나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 결혼식 때 보태준 1억은 그냥 준 것이 아니고 차용해 준 것이니, 조만간 은행금리 적용. 상환하기 바란다.

며늘아가, 너 역시 지금 이 순간도 늙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세월은 잠시다.
네 통장으로 5만원 송금했으니 찾아서 명절이나 잘 쇠어라.>


 

이게 실제 있었던 사건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흉몽이 그냥 꾸어지지 않고 찜찜한 현실이 가상으로 나타나듯 이런 편지 쓰고픈 유혹 느끼는 며느리라 시어머니 있을까봐 심히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