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음악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세시봉', 생음악
무대였던 'OB'S 캐빈'은 명동이 자긍하는 음악의, 젊음의 명소였다.
60세대가 음악을 하려면 가야했던 곳이 명동이었고, 70세대도
'꽃다방'과 같은 음악다방에서 열심히 팝송을 청취했다.
양희은이 대학에 들어가면 꼭 가서 놀리라 다짐했던 곳이 명동이었고
포크의 대부라는 조동진도 명동의 음악 감상실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이제 명동은 고귀와 고급의 명성을 강남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
빼앗겨버렸다. 여전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이 곳을
오는 사람들의 세대와 계층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르다. '밀리오레'의
영향 탓인지 무엇보다 10대들의 발길이 부산해졌다.
◇ 비 내리는 명동 / 배호
비내리는 명동거리
잊을수 없는 그사람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
말없이 떠난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이순간 까지
나는 너를 믿었다 잊지 못하고
사나이 가슴속에 비만 내린다
비내리는 명동거리
사랑에 취해 울던밤
뜨거운 두뺨을 흠뻑 적시고
울면서 떠난 사람아
나를 두고 떠났어도 이순간 까지
나는 너를 사랑해 잊을수 없다
외로운 가슴속에 비만 내린다...
아마도 요즘의 신세대들은 부모가 들었던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
(1970년)가 전달하는 내용물이 왜 그리 진한 지 알 리 없고, 그래서
달라진 감성 때문에 공감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 '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는 확실히 뜨거운 정감의 격발이었지만
감각적인 그들에게는 유치하고 하찮은 과잉의 언어로 폄하될 수 있다.
그래도 명동으로 발길을 대고 부대끼면서 그들도 나중에는 명동정서의
포로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자신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
추억의 흔적들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언젠가는 사나이 두 뺨을 적시는 흠뻑 적시는 눈물의 이유를 알게
된다. 크라잉 넛의 신보 타이틀곡이 '명동 콜링'이다. 우리 가슴의 뜨거움
(日)과 서글픔(月)이 교차해 만들어낸 대중음악 '명(明)품의 거리' 명동의
구속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또 반복된다. - 2004년12월 경향신문
출처 : 그저 그냥~
글쓴이 : 돌고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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