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디지털 생물학 : Peter J. Bentley 지음, 김한영 옮김, 김영사, 2003 (원서 : Digital Biology, Curtis Brown UK, 2001), Page 87~134
1. 회색 물질 (1) 신경세포 (2) 신경망 (3) 머릿속의 배선 (4) 사고 활동 2. 뇌의 구조 (1) 진화의 건물 증축 3. 의식 (1)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2) 맹시 (3) 간지럼 테스트 (4) 자아의 군중 |
4. 컴퓨터의 뇌 (1) 디지털 신경세포 (2) 신경망 (3) 새로운 관리 개념 5. 로봇 뇌의 해부학적 구조 6. 의식에 도달하다? (1) 진화하는 뇌 (2) 이상한 의식 7. 요약
|
"우리는 예를 들면 간지럼에 대해 사라 제인 블레이크모어 (Sarah-Jayne Blakemore) 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프리드 (Chris Frith) 교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간지럼 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상태를 예상하면 자극이 중화되기 때문이지요. 수천 년 동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확실히 입증된 것은 1971 년 래리 바이스크란츠 (Larry Weiskrantz) 에 의해서였습니다. 어쨌든 다른 사람이 감각의 강도를 평가하는 조건에서, 자기 자신이 간지럼 태우는 것이 사람이 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덜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라-제인은 로봇에게 간지럼 태우기를 시키는 방법으로 심상 형성 (imaging side) 에 대해 매우 훌륭한 실험을 했습니다."
내가 뇌와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프리드 교수를 찾아간 것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5 월의 어느 오후였다. 크리스는 특히 정신 장애와 관련된 문제와 정신 장애가 자아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였다. 우리의 대화가 간지럼이라는 주제에 이른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두 개의 빨간 반점이 있는 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을 이었다. "이 뇌 활동을 보십시오. 이것은 이른바 2 차 신체감각 피질입니다. 대뇌피질에서 신체감각 자극을 맨 처음 처리하는 부위 중 하나지요." 그런 다음 그는 뇌 활동을 막대그래프로 그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이 간지럼을 태웠을 때의 뇌 활동입니다. 자신이 간지럼을 태웠을 때와 비교해보세요. 아니오, 저쪽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간지럽혔을 때입니다. 그 옆의 것은 간지럼과는 상관없이 그냥 움직일 때입니다. 변수의 영향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요. 그리고 그 다음 것은 그냥 쉴 때입니다. 이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때에는 뇌 활동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사실상 없다고 봐야겠죠. 그냥 움직일 때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라 제인은 이 예측 효과를 더 깊이 연구했습니다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이 로봇들을 이용했지요. 이 손으로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왼손을 흔들었다. "첫 번째 로봇을 움직이면 그게 두 번째 로봇에게 신호를 보내고, 그러면 그 로봇이 사람을 간지럼 태웁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킵니다. 결국 그녀가 알아낸 것은 기본적으로 이렇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냥 로봇이 간지럼을 내우면 사람은 아주 간지럽게 느낍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령 막대기 같은 것으로 로봇을 조종하면 간지럼은 다시 심해집니다. 간지럼은 이렇게, 아주 정밀한 예측에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는 의자에 등을 기댄 다음 설명을 계속했다. "이런 실험을 한 이유는 내가 정신분열증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증상은, 환자들이 움직일 때 그 움직임을 조종하는 것이 그들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힘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일종의 제어 망상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신경 계통의 이상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면 그런 증상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론대로라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수 있어야 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자기 자신이 간지럽힐 때와 다른 사람이 간지럽힐 때를 비교해봤는데, 아무 차이가 없었지요."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수 있는 사람도 있군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크리스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내가 "그렇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그런 증상과 관련된 뇌 부위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라고 물었다.
"글쎄요, 네, 그렇다고 봐야겠죠. 우리도 다음에는 그 문제를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심상 연구가 흥미로운 것은 대개 우리와 같은 인지 심리학자들이 작은 상자들로 채워진 단순한 모델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긴 형태지요." 그는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가리켰다. "그래서 꼭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아하, 그 상자에 해당하는 부위를 찾아야겠군.' 그것이 대개 우리의 연구 방식이지요. 물론 요즘은 조금 더 정교하고 복잡해지고 있습니다만, 핵심은 그것입니다."
나는 크리스 프리드 교수가 인지 신경학자들의 연구를 너무 겸손하게 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내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수많은 심리학자, 신경학자, 신경과학자, 컴퓨터 공학자, 철학자들을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뇌를 이해하려는 연구가 얼마나 많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뇌에 관해 이미 알려진 내용을 책으로 쓴다면 수백 권이 넘을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의 손에서 그 정도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간지럼 테스트와 같은 여러 가지 기발한 실험들을 통해 인간의 머릿속에 감춰진 신비에 밝혀내기 위해 오래 전부터 연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밝혀내지 못한 신비가 훨씬 더 많다. 우리가 알기로 인간의 뇌는 진화가 이루어낸 가장 놀라운 성과이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한 어떤 컴퓨터보다 수백만 배 더 뛰어나다. 인간의 뇌는 아주 복잡하고 정교해서, 현재의 과학기술로 그렇게 뛰어난 어떤 것을 만들려면 수천 명의 일류 전문가들이 몇 백 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담긴 기술은 우리보다 수백만 년 앞서 있다. 그 앞에서 우리 인간은 태양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는 동굴 거주자에 불과하다.
뇌는 또한 우리의 자아감, 우리의 의식을 만들어낸다. 우리들 각자가 소유하는 가장 개인적인 부분이 두개골에 담긴 세포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어서, 인류의 과반수 이상은 아직도 우리의 '자아' 가 초자연적인 영혼에 의해 창조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것을 믿든 우리는 뇌에 관한 그 모든 해답을 얻기까지 멀고도 험한 길을 남겨두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뇌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연구하고, 신경학자들은 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를 연구하고,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연구하지만, 뇌 전체가 정확히 어떻게 활동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직 철학자들만이 외관상 무관해 보이는 그 분야들을 통합해보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활기찬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칠 뿐, 폭넓은 동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논쟁의 이면에는 의사결정, 학습, 기억, 의식의 기초 원리를 이해할 만큼의 충분한 지식이 축적되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뇌에 관한 연구의 최신 성과를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컴퓨터 안에 의사결정, 학습, 기억을 수행하는 디지털 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간지럼 테스트와 디지털 뇌에 관한 궁금증은 당분간 접어두기로 하자. 이 두 가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뇌파 기록 장치 (EEG) 위에 물결 모양의 선을 만드는 동력이고, 우리가 생각을 할 때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 이며, '회색 물질' 을 회색으로 만드는 원료이다.
1. 회색 물질
좋든 싫든 - 나는 싫어하는 편이다 - 우리의 뇌는 물질이다. 우리의 활동, 행동, 기억, 감정, 동기, 관념, 결정, 지각, 생각, 개성이 모두 하나의 신체 기관에서 만들어진다. 만약 영혼이 존재한다 해도 그 역할을 대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는 몰라도, 뇌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분명히 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누군가가 머리를 다쳤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교통 사고나 낙상 사고 또는 뇌졸중으로 인해 뇌 손상을 입고 있을 것이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뇌의 일부가 없거나 죽은 사람을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뇌의 어느 부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가에 따라 환자들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부 환자들은 기억을 잃어버리고, 그 중 어떤 환자들은 가령 동물 이름과 같이 특정한 종류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또 어떤 환자들은 팔다리를 움직이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아주 이상한 행동을 시작하는 환자, 신이 자기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끼는 환자,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고, 왼쪽에 있는 것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심지어는 뇌 손상과 함께, 우리가 하나밖에 없는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개성까지도 주인 모르게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모두가 매우 슬프지만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는 대단히 쓸모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물질로 구성된 존재라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처럼 뇌가 '제어 센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뇌는 결국 하나의 신체 기관이다. 폐나 심장이나 피부처럼 뇌도 특수한 일을 하게끔 분화된 세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세포들은 모두 혈액으로 공급되는 산소와 양분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감염의 가능성이 있으며 적정한 온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뇌세포는 약간 특별하다. 우선, 뇌세포는 손상을 막아주는 뼈 (두개골) 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재생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태어날 때 할당된 것이 거의 전부이다. 아기의 머리가 그렇게 커서 산모에게 출산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최대치로 성장하는 2 세 이후부터는 매일 죽어가는 수만큼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맙게도 우리에게는 충분한 뇌세포가 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뇌세포는 약 1 천억 개로, 지구에 사는 인구의 약 15 배에 달한다. 머리가 복잡할 정도이다.
뇌세포는 그 밖의 측면에서도 특별하다. 우선 뇌세포는 전기를 이용한다. 우리가 전화를 걸 때 전선으로 충격 전파를 보내 서로 통화하듯이, 뇌세포들도 축색돌기라는 전선으로 충격 전파를 보내 의사를 소통한다. 그리고 (위성 통신 체계가 생기기 이전에) 우리가 바다 밑으로 엄청나게 긴 전선을 깔아 대륙을 연결했듯이, 우리의 신체도 뇌로부터 근육과 감지 장치들을 이어주는 긴 축색돌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흰긴수염고래의 경우, 하나의 뇌세포로 머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 연결하는 데 필요한 축색돌기의 길이가 얼마나 될지 한번쯤 상상해볼 만하다.
그러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이제 여러분에게 뇌세포를 정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는 1 천억 개의 세포가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자, 신경세포를 만나보자.
(1) 신경세포
신경세포의 종류는 100 여 개나 되므로, 이 글에서는 모든 신경세포의 공통적인 특징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종류의 신경세포는 세 개의 중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모든 세포가 그렇듯이 신경세포에도 DNA 를 가진 핵이 있다. 둘째, 세포체에서 뻗어나온, 축색돌기라 불리는 긴 돌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 개의 가지처럼 세포체에서 뻗어나온 '뿌리' 가 있는데, 수상돌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따라서 신경세포의 모양은 일반적으로 식물의 구근 부리와 비슷하다 (그림 3 참조). 사방으로 뻗어 있는 뿌리 중 주된 뿌리는 축색돌기이고, 구근은 세포체이다.
형태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기능은 다소 복잡하다. 신경세포에서는 화학물질이 전기를 생산하고, 전기가 다시 화학물질을 생성하며, 이 화학물질이 또다시 전기를 생산하는 식으로 순환이 계속된다. 신경세포는 여러 가지 물질들이 복잡하지만 매우 섬세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고 간단한 컴퓨터이다.
신경세포의 작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잠시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보자. 우리 앞에 포도주 잔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깔대기에 연결된 빨대를 이용해 그 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있다. 포도주의 수위가 천천히 높아진다. 그런데 왼쪽에 앉은 사람이 다른 빨대를 이용해 그 잔의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이제 포도주의 수위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붉은색 포도주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우리는 잔이 넘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이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더 큰 깔대기로 포도주를 따른다고 상상해보자. 잔에 흘러드는 포도주의 속도가 왼쪽 사람이 마시는 속도보다 더 빨라진다. 수위는 계속 올라가고, 마침내 잔이 넘친다. 가운데 앉은 나는 붉은 포도주를 온통 뒤집어쓴다. 으악!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난다.
이 우스운 이야기가 바로 신경세포의 작동이다. 포도주 잔은 세포체의 한 가지 임무를 수행하고, 빨대는 수상돌기 역할을 한다. 우리는 축색돌기이며, 포도주는 전기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인가? 그러면 다시, 이번에는 비유하지 않고 이야기해보자. 우리 앞에 신경세포의 세포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오른쪽으로 전기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상돌기가 있다. 우리는 이 신호를 여자 (excitatory) 신호라 부른다. 왼쪽에도 전기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상돌기가 있다. 이 신호는 억제 (inhibitory) 신호라 부른다. 전기는 포도주처럼, 두 수상돌기를 통해 세포체로 들어온다. 균형이 유지되는 동안 세포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이제 오른쪽 수상돌기에서 오는 전기신호가 왼쪽 신호보다 더 강하다고 가정해보자. 세포체 안의 전기는 금방 강해져서 조만간 한계에 도달한다. 한계에 도달하면 전기 펄스 하나가 축색돌기에 전달된다.
이렇게 신경세포는 일정한 한계 (약 -0.055 볼트) 이상으로 흥분하면 전기펄스를 방출한다. 그리고 두 수상돌기에서 여자 자극이 억제 자극보다 더 강하게 들어오면 흥분한다. 또한 수상돌기에서 오는 자극의 정도는 빨대의 굵기에 해당하는 화학적 변화에 따라 변한다.
이러한 작동이 각각의 신경세포를 작은 컴퓨터로 만든다. 그것은 두 입력물의 합이 한계값을 초과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이진수 신호를 방출한다. 이 설명이 생소하다면 포도주 잔을 기억해보라. 잔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포도주의 합이 잔의 꼭대기를 넘칠 때 우리는 신호 (으악!) 를 방출한다.
이것이 신경세포의 모습이다. 그리고 각각의 신경세포를 간지럽히는 전기는 물론 다른 신경세포들에게서 온다.
(2) 신경망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눈은 전기를 생성한다. 안구 뒤의 망막을 구성하는 수천 개의 작은 세포들이 빛을 무수한 전기 펄스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세포들도 신경세포의 종류이므로, 전기신호는 축색돌기를 따라 흐른다. 축색돌기는 시신경이라 불리는 장소에 모여 있으며, 뇌속의 다른 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수상돌기들과 만난다. 이 신경세포들은 신호에 대한 반응으로 펄스를 방출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방출하는 경우 그 전기 펄스는 축색돌기를 통과해 다른 신경세포의 수상돌기로 흘러들고, 여기에서 더 많은 펄스가 방출되면 또 다른 신경세포로 들어가 다시 더 많은 펄스를 생산해낸다.
이런 일은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에서 발생한다. 입안의 화학물질은 모스식 전신 부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된다. 냄새, 촉감, 소리, 열, 고통, 평형감각, 팔다리의 위치 감각, 방광이 꽉 찼다거나 위가 비었음을 알려주는 감각, 이 모든 것들이 세포에서 전기신호로 변환된 다음, 축색돌기를 통해 (어떤 것은 척수를 통해) 뇌 속의 다른 신경세포들로 전달된다. 들어오는 전기가 있으면 나가는 전기도 있다. 전기신호는 축색돌기를 통해 온몸의 근육으로 전달되어, 호흡, 움직임, 환호, 달리기 등등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가능케 한다.
우리의 신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전기 설비망을 가지고 있다. 신경계의 배선은 인간이 만든 모든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모든 전기 설비를 합친 것보다 더 복잡하다.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앞의 포도주 잔을 기억해보자. 잔에 꽂힌 두 개의 빨대는 세포체의 두 수상돌기였다. 보통의 신경세포에는 수상돌기가 그보다 몇 개 더 많다. 여러 개의 수상돌기가 있고, 그 수상돌기들은 더욱 더 작은 여러 개의 뿌리 구조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의 신경세포는 약 1 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된다. 아주 많은 수이다.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 대략 1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음을 기억해보자. 각각의 신경세포가 평균 1 만 개의 동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해보면, 우리의 뇌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신경세포는 아주 단순한 계산만을 수행하지만 그것들을 충분히 연결시키면 그 결과는 학습, 기억, 의식 등과 같은 복잡하고 신비한 현상들로 나타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신경세포들의 신경망 덕분이다.
(3) 머릿속의 배선
연결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뇌는 어떤 신경세포가 어떤 신경세포와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까? 앞으로 우리는 뇌의 분화된 여러 부위들 - 시지각, 언어, 기억, 냄새 등을 처리하는 부위들 - 을 살펴볼 것이다. 눈과 시지각 중추가 연결되어야 하고, 간지럼 감각세포가 신체감각 피질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신경세포는 어떻게 아는가? 어떻게 특정한 신경세포의 축색돌기가 뇌에서 출발한 다음 척주를 통해 오른쪽 새끼발가락 끝에 도달하는가?
대부분의 작업은 출생 후 2, 3 년 내에 완료된다. 뇌 속의 신경세포는 이미 자궁 속에서 수상돌기를 뻗는다. 식물이 빛을 찾아 가지를 뻗는 것처럼, 축색돌기는 화학물질을 따라 신체의 올바른 부위로 뻗어나간다. 망막에서 자라는 신경세포에는, 마치 냄새를 추적하는 경찰견처럼, 뇌의 시지각 중추를 찾으라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다.
뇌 안의 신경세포들을 서로 연결할 때에도 똑같은 기술이 적용된다. 출생 직후 시냅스 (수상돌기와 축색돌기의 연접 부위) 의 수는 신경세포 당 2,500 개에서 1 만 8 천 개로 급증한다. 그후 5 년 동안 뇌는 수많은 가지를 쳐낸다. 신경세포간의 연접 부위 중 사용되지 않는 것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2 세경에는 예전의 60 퍼센트에 불과한 연접 부위만 남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뇌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연결한 다음 쓸모없는 것들을 제거'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계곡 전체에 비계를 세우고 그 위에 다리를 건설한 다음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해내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 결과, 효과적인 다리가 - 혹은 효과적인 뇌가 - 생겨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아주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환경에 처하면 뇌는 연접 부위의 수를 갑자기 늘린 다음 몇 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다시 불필요한 것들을 쳐낸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과학자들은 원활한 배선을 위해서는 신경세포 자체도 잘려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새 직장에 들어간 후 처음 며칠 동안 피곤하고 멍한 느낌이 드는 것도 뇌에서 갑자기 많은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다.
뇌가 복잡한 배선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적용하는 몇 가지 비결이 더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함께 작동하는 신경세포는 함께 배선된다" 고 말한다. 가령 출생후 몇 개월 만에 우리의 신경세포는 시지각 배선을 완료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빛이 두 눈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자극을 받고, 두 눈 사이에 연접 부위가 형성되는 동시에 뇌와 눈이 연결된다. 그러나 이 중요한 시기에 눈병이 발생하면 한쪽 눈에 일시적인 시력 상실이 올 수 있는데, 이때 신경세포는 정상적인 자극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 양쪽 눈이 뇌와 연결되는 대신, 모든 시지각 신경세포들이 정상적인 한쪽 눈에만 연결된다. 그 결과, 눈병이 나아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그 눈은 신경세포와 제대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시력을 회복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대개 뇌는 정상적이고 만족스러운 활동에 필요한 복잡한 방법들을 아주 잘 수행해낸다. 뇌는 우리에게 학습 능력, 기억 능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이제 우리는 이 회색 물질에 관한 마지막 문제를 제기할 때가 되었다. 신경세포들로 구성된 이 똑똑한 신경망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 작은 신경세포들 모두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학습이나 기억이나 그 밖의 일들을 수행하는가?
(4) 사고 활동
우리의 뇌는 주식회사와 같다. 이 회사에는 많은 수의 직원이 있지만 전체를 통솔하는 한 명의 우두머리는 없다. 경영관리는 엄격한 계급구조 아래 이루어지지만, 모두가 민주주의를 믿는다. 이 회사는 일종의 컨설턴트 회사이다. 따라서 상품을 생산하는 대신 자료를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이제 이 회사의 대표적인 업무 한 가지가 어떻게 수행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어느 날 뇌 주식회사의 고객들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온다. 고객들은 그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그 속에 어떤 유용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 전혀 모른다. 회사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먼저 이미지 전문가들이 스크린 앞에 모인다. 이미지 담당 직원들은 각자 그림의 작은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다음 직속 상사에게 결과를 보고한다. '이 조각은 짙은 색입니다.' '이 조각은 밝습니다.' '이 조각은 빨간색입니다.' 상사들은 팀원들의 정보를 신중히 들은 다음 (발언하는 직원들의 신뢰성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수의 견해를 수용한다. 그리고, 그들의 직속상사에게 보고한다. '이 작은 부분은 짙은 빨간색입니다.' '왼쪽 부분도 짙은 빨간색입니다.' 보고를 받은 상사들은 팀원들의 정보를 신중히 듣고 다수의 견해를 수용한다 (이번에도 가장 믿을 만한 직원의 말을 가장 잘 기억한다). 그들은 또다시 바로 위의 상사에게 보고한다. '그림 이쪽에는 짙은 빨간색 선이 있습니다.' '밑에도 짙은 빨간색 선이 있습니다.' 팀원의 정보를 들은 상사는 다수의 견해를 수용하여, 그들의 상사에게 보고한다. '이 쪽에 짙은 빨간색이 직사각형이 있습니다.' '저쪽에는 회색 원이 있습니다.' 상사들은 이 정보를 잘 듣고 그들의 상사에게 보고한다. '이것은 빨간색 스포츠카처럼 보이는 물체입니다.' '나도 방금 비슷한 것을 봤습니다만, 조금 전에는 훨씬 먼 곳에 있었습니다.' 상사들은 정보를 듣고 위에 보고한다. '빨간색 스포츠카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 정보를 들은 상사들은 이렇게 보고한다. '빨간색 스포츠카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으니 피해야 합니다.' 그 상사들은 이렇게 보고한다. '저런,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군요!'
우리가 스포츠카를 피해야 한다고 결정할 때에는 항상 이런 과정이 발생한다. 어떤 직원들은 펄쩍 뛰라고 제안하고, 어떤 직원들은 걸으라고 제안하고, 어떤 직원들은 가만히 서서 '멈춰!' 라고 소리치라고 제안하고, 또 어떤 직원들은 달리라고 제안한다. 상사들은 과거에 가장 믿음직한 제안을 했던 직원들은 달리라고 제안한다. 상사들은 과거에 가장 믿음직한 제안을 했던 직원들의 말에 따라, 펄쩍 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최종 메시지를 전달한다. '왼쪽으로 펄쩍 뛰어요!'
잠시 후 그 일에 참여했던 많은 직원들이 다른 직원들로부터 업무 성과가 매우 좋았다는 말을 듣는다. 상사들은 그들이 팀원 가운데 누가 올바른 내용을 보고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둔다. 그러면 미래에는 그 직원들의 발언권이 약간 더 강해진다. 그리고 회사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직원들의 말을 가장 많이 듣기 때문에, 올바른 해결책을 더 자주 그리고 더 신속하게 찾아내는 전반적인 능력을 끊임없이 향상시킬 수 있다.
물론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했을 테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뇌가 우리 눈앞에 나타난 어떤 것을 처리할 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명한 것이다. 회사의 고객들은 우리의 감각과 근육이었고, 직원들과 여러 층의 상사들은 신경세포였다. 방금 회사가 수행한 일은, 우리의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한 다음 그 결과를 이용하여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무는 간단했지만 그에 필요한 계산은 엄청난 양이었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모두 동원한다 해도, 위험한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를 인지하고 관찰자를 피하게 만드는 일을 쉽게 해낼 수 없다. 대상이 무엇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신경세포는 이런 종류의 일에 독보적이다 (사실 컴퓨터 과학에서 컴퓨터에게 이런 종류의 일을 시킬 때에도, 소프트웨어로 된 디지털 신경세포를 이용한다). 신경세포의 계산 능력이 그렇게 탁월한 데에는 여러 가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 신경세포의 배선은 계급구조 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에, 최초의 신경세포들이 아주 간단한 일 - 가령 빛의 작은 부분을 확인하는 일 - 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정보가 계급 구조의 망을 따라 위로 전달되면, 그곳에서는 정보를 요약하여 빛의 큰 부분을 인식하고 그 다음은 선을 그 다음은 형체를, 그 다음은 확인 가능한 어떤 물체를 인식한다. 이와 같이 각각의 신경세포는 극히 간단한 신호만을 처리하지만, 그 신호들이 의미하는 정보는 갈수록 구체적인 성격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신경세포들은 망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요약중인 정보를 다른 정보와 통합할 수 있다. 다른 신경세포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기억이나 감각 정보의 형태로 제공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신경세포들이 매우 영리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뇌가 계급구조의 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우리의 뇌는 '방대한 병렬식' 이라 할 수 있다. 한 번에 한 가지 명령만을 수행하는 일반적인 컴퓨터와는 달리, 신경세포는 수억 개가 동시에 활동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일부는 우리가 스포츠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을 처리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을 처리하며, 또 다른 신경세포들은 '운전자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군' 이라는 생각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이밖에도 심장을 뛰게 하고, 폐를 작동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머리를 돌게 하고, 눈을 움직이는 등의 수많은 일들이 신경세포의 계급구조 망을 통해 처리된다. 그리고 여러분이 장을 보기 위해 계획을 세울 때에는, 질주하는 스포츠카를 피하기 위해 펄쩍 뛰어야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처리될 것이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똑똑한 또 다른 이유는, 뇌의 계급구조 망이 자기 스스로를 정밀하게 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듣는 경우, 신경세포가 '각자의 상사' 에게 보고할 때마다 그들의 신뢰성이 고려된다. 따라서 두 신경세포가 상사에게 서로 다른 보고를 올리는 경우 - 가령 한 신경세포는 '저 차는 페라리예요' 라 말하고 다른 신경세포는 '저건 람보르기니예요' 라고 말하는 경우 - 에도 상사는 두 번째 직원이 믿을 만하다는 판단에 따라 그 차는 람보르기니라고 결정한다. 이 설명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여러분은 두 개의 빨대와 포도주 잔을 기억할 것이다. 포도주 잔이 넘치면 그 차는 라보르기니라고 가정해보자.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그 판단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그는 그 차가 람보르기니가 아니라 페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른쪽 사람이 더 믿음직스럽다. 즉, 오른쪽 사람의 빨대가 조금 더 크다. 그래서 그가 포도주를 따르는 속도가 더 빠르고, 포도주가 잔을 넘치는 순간 우리는 '라보르기니!' 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이것이 뇌가 하는 일이다. 뇌는 다양한 신경세포들이 보내는 자극의 무게를 저울질하는데, 이때 뇌는 이전 신호의 신뢰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신경세포가 람보르기니를 아주 잘 알아본다면, 그 상사 (그의 신호를 받는 신경세포) 는 자신의 수상돌기와 그 신경세포의 축색돌기의 연접 부위를 화학적으로 조정하여, 그곳에서 더 강한 신호가 오게 만든다. 보다 믿음직스런 정보 출처의 빨대가 더 굵은 것이다.
이렇게 신경세포의 망을 타고 이동하는 신호들을 미세 조정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뇌는 인식, 학습, 예측, 기억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일들을 수행해나간다. 얼마나 똑똑한가? 이와 같이 우리의 회색 물질은 계급구조 망으로 배선된 방대한 병렬식 신경세포를 이용하면서, 망 내부의 배선 방식과 신호 강도를 적절히 변화시켜나간다.
그러나 뇌에는 전문화된 중추들 - 예를 들어 시지각, 냄새, 언어 등을 전담하는 부위들 - 이 있다. 즉, 우리의 신경망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그물이 아니다. 신경망 속에는 종종 서로 무관하게 활동하는 더 작은 망들이 있다. 마치 뇌 주식회사 안에 수많은 부서들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2. 뇌의 구조
우리의 뇌는 커다란 파스타 반죽과 모양이 비슷하다. 심지어는 색과 밀도도 거의 비슷하다. 그 외에 닮은 점은 더 이상 없다. 뇌는 하나로 반죽된 물질과는 달리 몇 개의 부위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부위의 구조와 위치 또한 매우 신중하게 결정되어 있다 (그림 4 참조). 그것은 마치 파스타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여러 무더기를 만든 다음 서로 엉겨붙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쌓아놓은 것과 아주 비슷하다.
우리는 외의 여러 부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몇 년 전 (그 일이 아직 합법적이었을 당시) 와일더 펜필드 (Wilder Penfield) 를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의식이 있는 환자의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곤 했다. 그들이 전류를 가하는 부위에 따라 환자는 팔다리를 떨거나, 맛을 느끼거나, 신경질적으로 웃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의 실험 방식은 훨씬 덜 강압적이다. 신경학자들은 환자들이 여러 가지 실험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그들의 뇌 활동을 측정하기 위해 뇌 스캐너를 이용한다. 뇌 스캐너는 아직 조잡한 편이지만 (대개는 활동중인 신경세포에 흘러드는 혈류량의 증가를 측정할 뿐이고, 해상 범위 또한 가로 세로 5 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뇌의 부위들과 그 기능들을 확인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오늘날 우리는 뇌가 여러 부위들뿐 아니라 여러 층으로도 이루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척주와 뇌가 만나는 뇌의 중심부는 후뇌라 불리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 중 척수라 불리는 부위는 호흡, 심장과 혈관 활동, 삼키기, 토하기, 소화 작용을 제어한다. 소뇌라 불리는 부위는 운동과 자세를 감지하고 조절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신경세포들의 망이다. 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면 중뇌가 있다. 중뇌는 청각과 시각 정보와 같은 감각 정보를 불러들이는 최초의 항구이며, 또한 각성 상태를 조절하는 곳이기도 하다. 더 앞으로 가면, 시상, 시상하부, 종뇌 등의 부위들이 가득 들어찬 전뇌가 있다. 마지막은 겹겹이 포개진 모양으로 대부분의 다른 부위들을 감싸고 있는 대뇌피질이다. 이 뇌는 두 개의 반구로 나뉘었으며, 각 반구에는 네 개의 뇌엽이 있다. 또한 각가의 뇌엽은 서로 다른 기능을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전두엽 (이마에서 약간 아래쪽) 은 학습과 계획, 그리고 그 밖의 심리적 과정들을 담당한다. 후두엽 (뒤통수 쪽) 은 시지각을 담당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뇌의 구조는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다 (특히 각 부위의 이름은 발음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가? 왜 대뇌피질은 바깥쪽에 있고 후뇌는 중심부에 있는가? 왜 시지각 중추는 뇌의 뒷부분에 있는가? 눈과 가까운 머리 앞쪽에 있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1) 진화의 건물 증축
뇌는 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들의 위치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왜 손가락은 세 개가 아닌 다섯 개인가, 왜 갈비뼈나 척추골이나 이빨은 하필 그 숫자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우리가 지금과 같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방식보다는 지구상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온 방식과 더욱 밀접하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제 여러분에게 우리 집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크고 오래된 건물의 맨 오른쪽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에서 산다. 건물은 지은 지 150 년이 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여러 번 변하고 확장되었다. 확인 가능한 기록을 더듬어보면, 그 집은 원래 상당히 튼튼한 19 세기 건물로 생을 시작했다고 한다. 100 여 년 전에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 건물 뒤편을 증축했다. 그뒤로 (대략 1860 년경) 건물 전체가 둘로 분리되어, 오른쪽 절반은 경찰서로, 왼쪽 절반은 경찰국장의 집으로 사용되었다. 그후 두 부분은 각각 상점으로 개조되었고, 첫 번째 절반의 뒤편은 또 한 번 증축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은 여러 번의 개조를 거친 후에 내가 사는 아파트로 창조되었다. 이렇게 긴 변화의 역사 덕분에 나의 아파트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복잡한 성격' 을 갖게 되었다. 벽들은 서로 두께가 달라 보이고, 창문들도 크기가 다르며, 거실 바닥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보다 1 피트 정도 높고, 지붕도 여러 부분의 각도와 높이가 눈에 띄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갖춰진, 매우 안락하고 훌륭한 집이다.
우리의 신체, 특히 우리의 뇌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물고기 같은 생물에서 파충류로, 작은 포유류로, 단순한 영장류로,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하는 동안, 우리의 뇌도 확장과 증축, 개조와 형태 변화를 겼었다. 그리고 내가 아파트의 모양을 보고 그것이 여러번 증축되고 개조되었음을 알 게 된 것처럼, 신경학자들도 뇌의 모양을 보고 그것이 여러 번 확장되고 변화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의 시지각 중추가 뇌의 뒤편에 자리잡은 이유도, 우리의 뇌가 수백만 년에 걸친 개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대뇌피질이 바깥쪽에 있고, 뇌간이 중앙에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뇌간은 가장 오래된 초기 뇌의 일부인 반면, 대뇌피질은 한참 나중에 증축된 부분이다. 진화는 최고를 추구하는 데 대가이므로, 우리의 뇌도 굉장히 능률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뇌의 전체적인 구조와 설계는 무작위로 진화된 조상들의 뇌가 그대로 전해진 것일 뿐, 특정한 기능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가끔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도 있다).
한 유명한 모형에서는 우리의 뇌를 삼위일체 구조로 설명한다. 한가운데에는 파충류의 뇌가 있고, 그 바깥에는 변연계라는 이름의 포유류의 뇌가 있으며, 가장 나중에 생긴 신피질이 변연계를 덮고 있다는 이론이다. 뇌의 세 부분은 각각의 것이 이전의 것을 둘러싸고 있는 층위 구조로서,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하나씩 덧붙여졌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층위 구조의 효과는 배아의 성장기에 아주 뚜렷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정된 지 45 일이 지난 인간 배아의 뇌는 파충류의 뇌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오늘날 존재하는 생명체들을 조사해보면, 우리의 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제 진화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그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최초의 다세포 유기체가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 세포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소통은 전적으로 화학적인 형태였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그 화학적 신호방식이 호르몬이란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한 소통이 개선된 것은, 전기를 생성하는 새로운 화학물질로 인해 최초의 신경세포가 생겨났을 때였다. 새로 생겨난 신경세포 덕분에 해파리 같은 생물들은 자신의 운동을 제어하고 자극에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인간에게도 그렇게 단순한 신경 연접 부위가 아직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불에 데면 우리는 그 신호가 뇌에 도달하기도 전에 손을 위험 지역에서 잡아뺀다. 어떤 특별한 신경세포들이 고통 신호를 포착해서 반응하면 무의식적인 반응, 즉 '반사 작용' 이 일어나는 것이다.
진화가 진행되면서 단순한 관상 생물들의 소화기 계통을 제어하기 위해 신경세포의 망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단순한 뇌는 지금도 우리의 장 속에 잔존해 있다. 일부 신경학자들이 '제 2 의 뇌' 라고 부르기도 하는 장 신경계는, 배아 상태에서 뇌와 독립적으로 발달하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미주 신경이라 불리는 하나의 밧줄로 뇌와 연결된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 '뇌' 가 무대에 서기 전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의 원인이며, 그 이유는 그 '뇌' 가 중추신경계의 근심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화가 무자비한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어느새, 체절을 가진 동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요 감각세포는 음식을 섭취하는 머리끝에 몰려 있었다. 각 체절의 움직임은 신경절이라 불리는 신경세포 집단의 제어를 받았다. 또한 가늘고 긴 삭상 조직이 신경절과 머리끝의 신경세포 집단을 연결했다. 일종의 대뇌 신경절인 이 조직이 신체와 감각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넘어가면서 신경계는 급격히 복잡해졌다. 삭상 조직은 뼈 (척주) 로 둘러싸였고, 뇌는 향상된 감각과 새로운 운동 방식을 처리하기 위해 더욱 커졌다. 파충류가 출현하자. 후각과 보다 나은 시력을 담당하는 새로운 뇌 중추들이 함께 생겨났다. 포유류가 출현하면서 그 중추들은 기억과 기초적인 감정 (사랑, 미움, 공포 등) 을 처리하는 보다 새로운 뇌로 둘러싸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바깥쪽에 신피질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뇌가 생겨남으로써 이 뇌를 가진 생물은 계획과 이해와 의사소통의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 복잡해짐에 따라, 대뇌피질도 계속 팽창했으며, 이와 함께 표면의 면적과 신경세포들 사이의 접속을 늘리기 위해 갈수록 많은 주름이 형성되어갔다.
이것이 우리의 뇌가 걸어온 역사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무계획적이고 불규칙적인 변화를 겪어온 내 아파트처럼, 우리의 뇌도 여러 번 확장되고 형태가 변경되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부분이 기존의 뇌에 더해진 끝에, 결국 오늘날과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그리고 진화의 어느 시점에 우리의 뇌는 자기 자신을 인식할 만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의식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3. 의식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생명체이다. 우리는 행복과 슬픔을 알고, 실수했을 때를 알고,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했을 때를 알고, 각자가 주변과 독립된 존재임을 안다. 우리는 자신만의 생각과 견해를 갖고 있어서, '여기 사는 인류의 생각으로는' 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 생각에는' 이라고 말을 꺼낸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 나의 개인적 '자아' 라 할 수 있는 그 유일무이한 특징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무엇이 나의 자아 의식을 만드는가? 나는 뇌인가? 마음인가? 영혼인가?
이것들은 수세기 동안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문제들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 해답은 인식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조사하는 과학자들이 제공하고 있으며, 그러한 장애는 뇌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1)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물질의 낙엽은 (위쪽에 있음) 정보를 요리한다. 낙엽은 보는 로부터 '모형' 을 만들어서 너에게 물의 위치를 주는 별난 일을 행한다. 때로 중환자들에는 오른쪽 낙엽의 성능을 버리는 경우가 있다. 비록 그것들은 위의 물들을 마실 수 있지만, 쪽에 있는 것들에서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쪽에 있는 물체를 적으로 볼 수는 있지만, 그들을 그들의 모형 속으로 결합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의 쪽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은 먹기가 매우 쉬워진다. 그러나 다른 분들이 가만히 놀지는 않는다. 그들은 기러기 붕어들을 버리고, 쪽 반만 남는 것을 가지고 붕어를 요리해낸다.
이 글은 인쇄상의 실수인가? 아니다. 이것은 뇌기능 장애를 앓는 사람이 어떤 글을 읽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이다. 실제로 내가 쓴 글은 다음과 같다.
피질의 두정엽은 (머리 뒤쪽에 있음) 감각정보를 처리한다. 두정엽은 우리가 보는 것들로부터 '세계 모형' 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변 사물의 위치를 알게 해주는 매우 특별한 일을 수행한다. 때때로 뇌졸중 환자들 중에는 오른쪽 두정엽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비록 그들은 주위의 사물들을 잘 볼 수 있지만, 왼쪽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왼쪽에 있는 물체를 의식적으로 볼 수는 있지만, 그 물체들을 그들의 세계 모형 속으로 통합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의 왼쪽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환자들은 읽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나 뇌의 다른 부분들이 가만히 놀고 있지는 않는다. 그들은 부스러기 단어들을 버리고, 오른쪽 절반만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단어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라도 우리의 두정엽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우리가 위의 글을 읽을 때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부위가 바로 두정엽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그러한 장애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뇌에서 발생하는 의식적ㆍ무의식적 과정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들 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행위들은 우리가 주변 환경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정엽의 기능을 상실한 환자들도 주변 세계에 대한 전체적 인식이 왜곡된다. 꽃을 그리게 하면 그들은 한 송이의 절반만 그린다. 이와 같이 뇌의 무의식적 활동이 정상적이어야, 우리의 의식적 활동도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방금 뇌의 오른쪽 두정엽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의 눈에서 송출되는 신호도 뇌의 특정 부위로 - 시지각 중추인 후두엽으로 - 전달된다. 이 부위 덕분에 우리는 주변 세계를 의식적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뇌졸중 환자들 중에는 후두엽의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2) 맹시
한 환자가 컴퓨터 화면을 응시한다. 작은 사각형이 나타나더니 위로 이동한다.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 모르겠음." 작은 사각형이 나타나더니 아래로 이동한다. 환자는 "아래, 모르겠음" 이라고 말한다. 다시 사각형이 나타나더니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오른쪽, 모르겠음" 이라고 말한다.
이 환자는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자동차 사고로 왼쪽 후두엽이 손상된 순간, 그는 눈에서 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뇌의 부위를 잃고 말았다. 그후로 그는 오른쪽에 대해서는 사실상 장님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 사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정확히 추측할 줄 안다. 그것은 영감을 이용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두정엽을 이용해서이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의 두정엽은 눈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의식적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맹시' 라 부르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뇌 손상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환자들은 사물을 보면서도 그 존재를 인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떤 사물이 눈앞에 존재한다는 것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안다.
이러한 이야기가 의식의 생성을 이해하는 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논하기 전에, 이 장 첫 부분에서 소개했던 실험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3) 간지럼 테스트
사라 블레이크모어와 크리스 프리드 교수는 단지 재미로 환자들을 간지럽힌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크리스가 제기한 의식 행동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스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뇌 속에 두개의 모형을 만듦으로써 주변 세계를 경험한다고 한다. 첫째 우리는 '역모형' 을 만들어서, 근육에게 어떤 명령을 내릴지를 산출해낸다. 둘째 우리는 '전진 모형' 을 만들어서, 그 명령이 주어졌을 때 우리의 팔다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그리고 입력된 감각이 어떤 것인지를 산출해낸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의식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그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행동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항상 계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실제로 발생한 결과와 우리가 예상했던 것을 비교하고, 미래의 행동을 미세하게 조정해나간다.
간지럼 테스트는 바로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때에는 손의 움직임과 느낌을 예측하기 때문에 놀람의 요소가 제거되어 덜 웃기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명령에 즉시 반응하는 로봇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때에도 로봇의 동작과 느낌을 예측하기 때문에 웃음이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러나 로봇의 동작이 조금 늦어지면 예측이 빗나가기 때문에 간지럼은 다시 웃기는 효과를 발휘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언제든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은 '전진 모형' 에 작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할 줄 알지만 때로는 그 동작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동작이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느끼며, 자신의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그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자기 자신을 간지럽힐 수 있는 것이다.
간지럼 테스트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뇌 속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 과정들 (모형 만들기와 예측) 이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보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우리의 주제인 '의식이란 무엇인가' 에 정면으로 도전할 때가 되었다.
(4) 자아의 군중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은 조용하고 약간 들떠 있는 상태이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몇 명이 파도타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한다. 파도가 퍼져나가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파도타기에 참가한다. 머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관중석을 휩쓴다. 갑자기 경기장이 활기를 띤다. 공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빗겨가자 관중들이 하나같이 탄식을 내뱉는다. 경기는 다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조금 전의 결정적인 기회를 아쉬워하는 일부 관중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는 점점 커지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곧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때 한 선수가 파울을 범하자 수천 명이 동시에 불만을 터뜨린다.
우리는 이러한 군중 행동을 자주 경험한다. 수천 명의 개인들이 경기를 관전함으로써 하나가 된다. 그들의 관심은 파도타기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관전으로, 그리고 환호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자신의 행동을 수행하는 개인들이다. '자, 파도타기!', '다 같이 노래!', '하나, 둘, 셋, 불평!' 이라고 명령하는 대장은 없다. 몇 명이 새로운 노래를 시작하거나 극적인 일이 벌어지면 군중은 다시 그 일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것이 우리의 행동 방식이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의식은 뇌 속에 부위별로 조직된 수많은 신경세포들의 '군중 행동' 이다. 뇌 속에 이른 바 '자아' 가 살고 있는 특정한 장소는 없다. 우리의 의식은 뇌 전체에 의해 만들어진다. 축구 관중처럼 개별 신경세포들도 수천 가지 행동을 하지만, 어느 것도 의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관중 속의 사람들은 호흡하고,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화장실을 가고, 전화를 거는 등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행동' - 전체 군중을 기준으로 - 을 한다. 우리의 신경세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가령, 눈의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지금 읽는 이 글을 해석한다. 이것은 모두 무의식적인 행동들이다.
또한 축구 관중처럼, 우리의 '인식', 즉 관심의 초점도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단 몇 명의 노래가 전체 군중에게 '노래 부를 생각' 을 자극하듯이, 몇 개의 신경세포가 적절한 시점에 발화되면 수많은 신경세포가 함께 활성화되고, 그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극적인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든 관객이 그 사건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도 관중의 초점은 즉시 전환된다. 마찬가지로 시지각 중추의 신경세포 집단이 이상한 물체를 보고하면, 전체적인 신경세포의 초점이 즉시 그 대상으로 전환된다.
자아 인식이란 무엇인가? 축구 관중은 자기 자신을 분명히 인식한다. 그래서 몇 명이 엉뚱한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저도 모르게 엉뚱한 말을 한 후에 우리는 실수했다는 사실을 즉시 인식한다. 의식의 한 부분이 방금 실수를 저지른 그 부분에게 야유를 던질 때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편두통 환자인 나는 그 증세가 시작되는 순간 '번쩍이는 빛' 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뇌의 한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른 부분이 깨닫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중석 반대편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서 부상을 당하면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경계 반응을 보일 것이다. 자아의식의 또 다른 예이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의식적인 생각과 무의식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변하고, 생각이건 환경이건 그 자신이건 새로운 어떤 것이 나타나면 그에 열심히 집중하지만, 책임자는 한 명도 없는 군중과 같다. 우리의 '자아' 는, 두개골 속의 신경세포와 연접 부위와 뇌의 부위들로 구성된 군중에 의해 창조된다.
이로써 우리는 뇌 여행을 마쳤다. 우리는 신경세포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뇌의 구조와 다양한 부위의 기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협동하여 우리의 의식을 창조하는가도 살펴보았다. 이제 여행을 마친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뇌, 신경세포로 이루어졌지만 회색도 아니고 물렁물렁하지도 않은 뇌를 탐구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컴퓨터의 디지털 세계 안에서 사고하는 디지털 뇌이다.
4. 컴퓨터의 뇌
언어 철학자 존 설 (John Searle) 교수는 기계 지능을 창조하려는 초기의 시도에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하나의 사고실험 - 중국어 방 (Chinese room) - 을 만들었는데, 일부 컴퓨터 공학자들은 아직도 그 방을 탈출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설 교수의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다. 그는 자신이 어떤 방 안에 앉아 있다고 가정한다. 그 방의 창문 밖으로 중국어 글자들이 지나간다. 그는 주어진 규칙서를 뒤적이며 그 글자들을 찾은 다음, 규칙서의 지시에 따라 방안에 있는 커다란 서류 정리함에서 다른 문자를 찾아서 창밖으로 보여준다. 그는 글자들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방밖에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아주 다르다. 그들의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중국어로 된 질문들을 보여주면, 방 안에서는 정확한 답을 제시한다. 그들은 방 안의 누군가가 지능이 있어서 질문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고 믿는다.
존이 이러한 사고실험을 제기한 목적은, 컴퓨터는 지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컴퓨터가 하는 일은 이해가 아니라 기호처리에 불과했다. 따라서 컴퓨터는 진정한 지능이나 인식 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옳았다. 당시 '노련한 시스템' 이라 불리던 컴퓨터 프로그램은 꼭 그렇게 작동했다. 그것은 입력된 기호에 반응하여 적절한 출력 기호를 찾아내곤 했다. 따라서 '현재 시간은 몇 시인가?' 라는 질문에는 정확히 대답했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기계 지능' 은 더 이상 잘못된 말이 아니다. 이전 장들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이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디지털 실체들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컴퓨터에게 지능적인 행동을 시키고 싶을 때에는 디지털 신경세포를 이용한다. 디지털 신경세포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신경세포와 똑같이 기능하고, 똑같은 신경망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컴퓨터 내부에는 (간단하기는 해도) 정말로 디지털 뇌가 존재하며, 이 뇌는 학습, 예측, 신분 확인, 제어, 기억을 포함한 수백 가지 일들을 수행한다.
뇌 속의 개별 신경세포들처럼 디지털 신경세포도 우리의 예측대로, 입력 신호의 합이 한계를 넘을 때 발화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신경세포나 디지털 신경세포처럼 개별적인 신경세포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을 알지는 못하지만 (중국어 방 안에 있는 존처럼), 함께 활동하는 신경세포 군중은 상황을 이해할 줄 안다. 내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컴퓨터 신경과학자인 지오프리 힌튼 (Geoffrey E. Hinton) 교수와 토론하면서 확인한 것처럼, 컴퓨터 내부의 신경망은 비록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는 해도 결코 자연의 모조품이나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세계 내부에 존재하는 신경망은 기초적으로 생물학적 뇌와 똑같은 과정을 따르고, 그래서 디지털 뇌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내가 힌튼 교수에게 언젠가는 디지털 뇌가 생물학적 뇌와 비슷한 복잡성과 능력을 갖게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 그럴 겁니다."
이제 그 문제는 분명해졌으므로, 디지털 뇌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 비생물학적 지능체는 어떻게 생겼을까? 디지털 신경세포는 어떤 일을 할까?
(1) 디지털 신경세포
우리의 머릿속에는 100 가지 종류의 신경세포가 있지만, 디지털 신경세포는 종류가 더욱 많다. 그러나 자연의 신경세포와는 달리, 서로 다른 종류의 디지털 신경세포들이 같은 신경망에서 함께 이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생물학적 신경세포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나에게는 온갖 종류의 디지털 신경세포를 모두 설명할 지면도 인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컴퓨터 신경과학자들이 생물학적 뇌의 모형으로 만든 극도로 복잡한 (대개 전자 회로 형태인) 디지털 신경세포들을 살펴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세계 컴퓨터 공학자들이 수천 가지 신경망에 응용하고 있는 특이한 종류의 디지털 신경세포들도 살펴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 글에서는 대부분의 디지털 신경세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종류의 생물학적 신경세포에는 세 개의 중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세포체, 축색돌기, 수상돌기가 그것이었다. 디지털 신경세포도 단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제외하고 그와 상당히 비슷한 구조이다. '세포체' 는 종종 처리 요소를 가리키지만, 단순히 신경세포를 지칭하기도 한다. 처리 요소에는 하나의 출력부와 다수의 입력부가 있다 (각각 축색돌기와 수상돌기에 해당한다).
('모두' 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디지털 신경세포는 출력부와 입력부를 통해 펄스를 보내거나 받는 대신, 0 이나 1 의 같은 신호를 꾸준히 송출하고 감각기나 다른 신경세포들로부터 그와 비슷한 신호를 받는다. 이 지속적인 신호는 생물학적 신경세포가 방출하는 일련의 펄스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유사함은 이밖에도 많은 곳에 응용될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디지털 신경세포는 그 작용 방식도 생물학적 신경세포와 상당히 비슷하다. 빨대가 두 개 꽂힌 포도주 잔을 기억하는가? 잔으로 들어오는 포도주의 총합이 잔의 용량을 초과할 때 여러분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고, 이것은 입력물이 한계를 초과하면 신경세포가 하나의 펄스를 발화하는 것과 같았다. 디지털 신경세포도 이와 똑같이 작동한다. 일련의 입력물이 주어지면 신경세포는 그 가중 총합을 계산한 다음, 그 값이 한계치 이상이면 1 을 출력하고 한계치 이하이면 0 을 출력한다.
나는 방금 '가중 총합' 이라고 말했다. 포도주 잔에 꽂힌 두 개의 빨대는 굵기가 서로 달랐다. 그것은 우리의 신경세포가 두 신경세포 중 하나에서 보내는 신호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에 해당한다. 디지털 신경세포의 경우도 이와 똑같은 '빨대 굵기' 의 효과를 내기 위해, 모든 입력은 가중치 값을 갖는다. 그래서 두 입력부에서 신호 1 을 보내도, 왼쪽 입력이 0.5 의 가중치이고 오른쪽 입력이 1.0 의 가중치이면, 입력물의 가중 총합은 1 × 0.5 + 1 × 1.0 = 1.5 가 된다. 다시 말해 왼쪽 입력의 빨대가 오른쪽의 절반이고, 그래서 오른쪽 입력물의 효과가 왼쪽의 2 배가 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만약 한계치가 0.75 라면 이 경우 신경세포는 1 을 출력할 것이다. 입력물의 가중 총합인 1.5 가 그 한계치보다 높기 때문이다. 만약 두 입력물 중 어느 하나를 이용해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대신 억제하기를 원한다면, 간단히 마이너스 가중치를 이용하면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반적으로 디지털 신경세포가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가중 총합이 한계치 이상인가 아닌가에 따라 1 이나 0 을 출력하는 대신, 디지털 신경세포는 입력물들의 가중 총합을 계산하고, 여기에서 한계치를 뺀 다음, 그 값을 곧바로 출력한다. 그러나 디지털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은 생물학적 신경세포와 비슷하다. 높은 출력값은 일련의 빠른 펄스에 해당하고, 낮은 출력값은 일련의 느린 펄스에 해당한다.
그러나 결국 이런 종류의 신경세포, 이른 바 '지각자 (perceptron)' 는 일반화되지 못했다. 출력이 단지 단선적으로 입력에 반응하기 때문에 신경세포가 배울 수 있는 기능은 아주 기초적이고 선형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단지 입력의 변화가 출력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어떤 입력물에 작은 변화를 가하면 출력물에도 그에 따른 작은 변화가 발생할 뿐이다. 출력이 입력에 정비례한다면 그 신경세포는 다소 지루하고 비효과적일 것이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날 일반적인 디지털 신경세포에는 한 가지 비결이 추가되었다. 일단 입력물들의 가중 총합을 계산하고 한계치를 빼고 나면, 신경세포는 그 값을 변형시킨다. 이것은 전송 함수나 활성화 함수로 계산되는데, 대개 S 자형 곡선 (sigmoid curve) 이 이용된다. 여러분이 수학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함수는 y = 1/(1 + e-x) 이다. 나도 그렇지만, 이 함수의 의미가 별로 감동적이지 않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단지, 신경세포가 입력에 따라 0 이나 1 의 값을 출력할 때 비선형적 방식을 적용하게 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것은 신경세포가 이제 선형적 방식에서 벗어나 훨씬 더 복잡한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대표적인 디지털 신경세포이다. 그것은 우리의 컴퓨터 안에 살면서 0 이나 1 로 된 수많은 입력물들을 받는다. 이때 신경세포는 그 입력물들의 가중치와 합을 계산하고 그 값에서 한계치의 값을 뺀다. 그리고 비선형적 S 자형 함수를 이용하여 그 값을 변형시킨 다음 결과를 출력한다. 출력물은 0 이나 1 의 값이다.
그리고 입력되는 값들은 다른 신경세포들에게서 전달되는데, 이 신경세포들은 하나의 신경망을 이룬다.
(2) 신경망
우리의 눈 뒤에 있는 신경망들은 수백만 년의 진화로 완성된 명령에 따라 형성된다. 아직도 우리는, 여러 가지 과제 수행을 위해 디지털 신경망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를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지난 50 년 동안 디지털 신경세포를 사용한 끝에 우리는 신경망의 작동 방식에 대해 한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디지털 신경망에 사용되는 연결 방식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피드포워드 (feedforward : 실행에 옮기기 전에 결함을 미리 예측해 행하는 피드백 제어 - 옮긴이) 방식과 회귀 (recurrent) 방식이 그것이다. 피드포워드 망의 신경세포는 열이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망막과 연결된 어떤 신경망들처럼 피드포워드 망은 신경세포를 오직 앞 방향으로만 연결시킨다. 맨 앞의 신경세포 층은 다음 층과 연결되고, 다음 층은 다시 그 다음 층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어떤 신경세포 층도 이전의 신경세포 층과는 달리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피드포워드'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반면에 회귀식 (또는 피드백) 망은 어떤 신경세포와도 연결된다. 아직은 회귀식 망들도 대개 층으로 배열되지만, 여기에서는 나중의 신경세포들이 자신의 출력물을 이전 신경세포에게 입력할 수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피드포워드 망을 더 놓아한다. 오늘날 피드포워드 망의 행동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이론과 수학이 상당한 양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귀식 망은 더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론의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거나 로봇의 동적 제어 (dynamic control) 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회귀식 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피드포워드 망과 그 문제 해결 방식에 주목하기로 하자.
우리가 공장에서 접시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접시는 주형에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지고, 가마로 보내져 구워진 다음, 표면에 무늬가 새겨지고, 다시 구워진 후 상자에 포장된다. 이 모든 과정은 기계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기계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열두 개 중 한 개는 금이 가거나, 얼룩이 묻거나, 무늬가 잘못 새겨진다. 생산 속도를 감안하여 우리는 생산라인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을 조사하기 위해 종업원 10 명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런데 워낙 단조로운 작업이라 그들도 가끔 실수를 범하고, 그 결과 불량품이 고객에게 발송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완제품을 검사하고 그 상품성을 판단하는 자동 시스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컴퓨터에게 카메라가 보내는 이미지를 완벽한 접시의 그림과 비교하게 한다. 문제는 이 카메라가 매번 조금씩 다른 접시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접시들은 저마다 밝기가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컴퓨터는 불량품과 조명 때문에 다르게 보이는 접시를 구별할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우리는 컴퓨터의 지능을 높이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컴퓨터에 피드포워드 신경망을 만들어준다. 카메라 영상의 각 화소 (픽셀) 에 색깔을 의미하는 숫자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숫자들을 한 층의 신경세포에 공급한다. 이들 신경세포의 출력물이 또 다른 층의 신경세포에 공급되고, 그것이 다시 또 다른 층의 신경세포에 공급된다. 마지막에는 한 층의 출력물이 단 하나의 신경세포에 공급되어 하나의 출력물로 산출된다. 이 신경세포의 출력물이 높은 값 (high) 이면 그 접시는 합격 판정을 받는다. 낮은 값 (low) 이면 물론 불합격이다.
우리는 이제 접시를 검사하여 '합격' 과 '불합격' 을 가려내는 디지털 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디지털 뇌는 어떤 접시가 좋고 어떤 접시가 나쁜지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그 신경망에 좋은 접시와 나쁜 접시가 찍힌 사진들을 미리 보여준다. 신경망이 각각의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것은 합격' 혹은 '이것은 불합격' 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신경망은 이것을 '학습' 한다. 잠시 후 신경망은 말해주지 않아도 정답을 알게 된다. 이제 우리의 교육받은 신경망에게 난생 처음 보는 접시의 영상을 보여주면, 신경망은 어느 것이 합격품이고 어느 것이 불합격품인지를 정확히 가려낸다. 이리하여 디지털 뇌를 가진 우리의 컴퓨터가 공장에서 품질 관리를 대신하게 된다. 컴퓨터는 절대로 지루해하지 않고 좀처럼 실수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은 눈의 띄게 증가한다. 품질 관리 부서의 10 명을 판매 부서로 돌릴 수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자. 그 신경망은 어떤 방법으로 학습했을까? 이전의 내용을 더듬어보자. 우리는 앞에서 생물학적 신경망이 하나의 회사와 약간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회사는 직원들이 직속 상사에게 보고하면, 그들은 다시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하고, 그들은 또 그 위로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각각의 상사는 가장 훌륭한 내용을 보고한 직원을 기억해서 다음 번에는 그들의 말을 더 귀담아들었다. 생물학적 신경망은 신경세포간 연결의 강도를 화학적으로 조정하여 주어진 상황에 가장 적절한 신호가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방법을 학습했다.
물론 우리의 디지털 신경망도 이런 식으로 학습한다. 위의 예에서, 우리가 피드포워드 신경망에게 접시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것은 합격' 이라고 말하면, 신경망은 그때마다 자신의 출력값을 검토한다. 출력값이 높지 않으면 (높은 값은 합격품에 해당한다) 신경망은 각 신경세포의 입력 가중치를 조정하여 출력값이 높아지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량품 사진을 보여주고 '이것은 불량품' 이라고 말하면, 신경망은 매번 자신의 출력값을 조사한다. 만약 그 값이 낮지 않으면, 신경세포들의 입력 가중치를 조정하여 그 값을 낮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신경망의 가중치들은 구체적인 값으로 결정된다.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고, 어떤 것은 중간이다. 그 값은 신경세포마다 다르다. 신경망에는 이제 우리가 보여준 접시들에 대해 서로 다른 가중치 값으로 매겨진 지식이 담겨 있다. 이것은 마치 카펫의 해진 자국에 주인이 보통 어느 곳으로 걸어다니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훈련받은 신경망에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영상을 제시해도, 그것은 학습한 지식을 이용하여 올바른 값을 출력한다.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경망은 정확히 어떻게 자신의 가중치들을 조정하는가?'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는 뇌에서 그런 일이 진행된다는 것만을 알 뿐, 우리의 뇌가 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전혀 모른다. 따라서 컴퓨터 공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은 자기 나름의 방법들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방법들은 '학습 규칙' 이라 불리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이 자리에서는 자세히 언급하기가 어렵다. 각각의 이름도 매우 희한해서, '일반화된 델타 규칙', '레벤버그-마르콰르트 법칙', '켤레 기울기 하강 법칙' 등으로 불린다. 일부 과학자들은 진화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가중치를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모든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신경세포들의 입력 가중치는 작은 단계에 따라 여러 번 조정되어야 하고, 그 동안 출력이 개선되는지를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한다. 그것은 TV 화면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수백 개의 부품들을 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학습 규칙, 연결 유형, 신경세포의 유형, 활성화 함수의 유형, 이것들 모두가 신경망의 종류를 (그리고 이름을) 결정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디지털 뇌는 수백 종에 이르며, 그 모두가 각기 다른 일을 위해 설계되었다. 우리는 그 이름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아주 독특하고 복잡하다. 예를 들면 '홉필드', '코호넨', '선형 망' 등이다). 다만 신경망이 어떤 일에 적용되는지 그 범위에 대해서는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3) 새로운 관리 개념
이 책에 소개된 '생물학적으로 촉발된 컴퓨터 사용' 의 방법들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고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바로 신경망이다. 오늘날에는 전적으로 다른 회사의 문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 뇌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응용되는 분야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신경망은 이제 특히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하는 '하나의 도구' 에 불과하다.
위에서 나는 접시의 품질 관리를 위해 신경망을 이용하는 예를 제시했다. 이것은 실제로 매우 흔한 경우이다. 수많은 공장들이 제품을 검사하는 데 그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한다. 전자회로에서 의류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뇌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의 생산물을 검사하고 있다. 몇 년 전 SAIC (Science Applications International Corporation) 사는 뉴욕 JFK 국제 공항의 수하물 검사 시스템에 신경망을 도입했다. 스누프 (SNOOPE) 라는 이름의 이 신경망은 폭발물에서 방출되는 독특한 감마선을 탐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예전의 '멍한' 기계들과는 달리, 스누프는 폭약 속의 질소와 (가령) 치즈 속의 질소를 구별할 줄 알았다. 스누프에게 수상한 점이 발견된 가방은 자동적으로 인간이 조사하는 검사대로 운반되었다.
신경망이 금융 시스템에 적용되는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였다. 신경망은 신용카드의 위조 여부를 조사하고, 보험 청구를 평가하고, 고객의 정보를 찾는다. 최초로 신경망을 도입한 회사 중 하나인 네스터는 저당 신청내용을 평가하는 데 신경망을 이용했다. 그들의 신경망은 수천 가지 내용에 대해 승인할 것과 거부할 것을 훈련 받았다. 그 결과 신경망은 매우 위험한 대출 신청이 어떤 것인지를 예측할 줄 알게 되었고, 인간과 업무성과를 비교하는 시험에서 더 정확하고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늘날 많은 회사들이 그러한 지능 소프트웨어를 금융 부문에 공급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신경망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들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지게차 조종장치, 수중 광산 음파 탐지기, 필체와 음성 인식기, 종양 탐지기 등, 이 모든 것들이 디지털 뇌로 작동한다. 그리고 신경과학자들이 우리의 뇌를 이해하고 그 모형을 뇌로 작동한다. 그리고 신경과학자들이 우리의 뇌를 이해하고 그 모형을 만들기 위해 이용하는 신경망도 잊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이 기술이 적용되는 한 분야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상을 수상한 버나드 위드로 (Bernard Widrow) 가 1950 연대에 개발한 것으로, 모든 신경망 기술 중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성공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신경망 분야의 개척자였던 버나드는 원격통신 산업에서 최초의 적응 소음 제거 시스템을 개발했다. 신경세포에서 영감을 얻은 적응 필터는 전화선의 메아리를 제거했고, 변조 장치의 전송 에러를 감소시켰다. 디지털 통신이 나오기 이전 시대에 이것은 통신의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에, 적응 필터는 세계적으로 원격 통신 시스템에 30 년 이상 사용되었다. 지금도 디지털 뇌는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서로의 말을 더 쉽고 또렷이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가장 성공한 디지털 뇌이다. 수백 가지 문제에 이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컴퓨터의 디지털 세계 안에 살면서 하나의 망을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디지털 뇌는 아니다.
5. 로봇 뇌의 해부학적 구조
우리는 앞에서 인간의 뇌가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인간의 여러 부위들이 기능에 따라 분화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우리의 뇌는 여러 부위들이 기능에 따라 분화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회색 물질에는 시지각, 말, 동작, 듣기, 기억 중에서 많은 것들이 서로 무관하게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수행한다. 이것은 마치 여러 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작동하면서도 서로 다른 명령을 수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MIT 공대의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 교수는 이 개념을 극단적으로까지 발전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학적 뇌는 더 작고 서로 독립된 다수의 컴퓨터 혹은 '대행자' 로 구성된 복잡한 기계이다 (그는 또한, 의식이란 대개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중에 이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마음의 사회' 라고 부른다. 각각의 뇌 부위가 개별적 행동을 모아 전체를 돕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과 같기 때문이다.
같은 MIT 공대의 로드니 브룩스 (Rodney Brooks) 교수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뇌를 개발한 것도 아마 그러한 이론의 영향과 로봇 제어에 관한 오랜 연구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가 개발한 뇌는 주로 물리적 장치들 - 외형들 - 이었다. 그리고 모든 뇌에는, 포섭 구조 (subsumption architecture) 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되었다.
생물학적 뇌가 분업화된 여러 부위로 구성되어 있듯이, 로드니의 로봇 뇌도 독립된 과제를 수행하는 독립된 회로와 뇌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뇌의 해부학적 구조는 주로 우리 자신의 독특한 진화사의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로드니와 그의 연구팀도 진화와 비슷한 일종의 점증적 과정을 이용하여 로봇 뇌를 만들었다.
따라서 단 하나의 신경망이나, 입력물을 처리하고 세게 모형을 개발하고 단 하나의 결과물을 생산하는 전통적인 컴퓨터 설계에 의존하는 대신 그는 포섭 구조를 적용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로봇 뇌를 개발할 수 있었다. 병렬식으로 작동하는 이 뇌는, 다수의 처리기가 다수의 감지기를 동시에 검사하고 다수의 행동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 뇌의 작동 방식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포섭 구조를 이용하여 개발된 최초의 로봇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 이름은 앨런이었다. 앨런은 동력장치가 달린 쓰레기통과 같은 모습이었고, 장애물을 피해 먼 목표물까지 이동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의도적으로 목표물 주위를 조사하는 중앙제어 장치는 없었다. 대신 앨런에게는 세 개의 간단한 제어층으로 구성된 디지털 뇌가 있었다. 첫 번째 층은 앨런의음파 탐지기를 이용했다. 어떤 것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앨런은 안전 거리 밖으로 이동했다. 뿐만 아니라 전진하는 중에 음파 탐지기가 앞에 놓인 어떤 물체를 '보면', 로봇은 그 자리에 정지했다. 두 번째 층은 첫 번째 층을 '포섭' 했다. 즉, 10 초마다 주변을 무작위로 배회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장되었다. 장애물을 피하는 첫 번째 층이 활성화된 상태에서도, 앨런이 물체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두 번째 층에 의해 운동 방향이 새롭게 규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층은 로봇으로 하여금 먼 장소들을 찾고 그 장소를 향해 나아가도록 했다. 세 번째 층도 나머지 두 층을 포섭하여, (다른 층들이 운동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가하는 동안, 장애물이 앞길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운동 방향을 규정했다. 결국 앨런의 운동은 뇌 속에서 존재하는 독립된 세 과정 '어떤 물체에도 부딪히지 말라', '탐험하라',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 에 의해 창출되었다. 이 세 과정이 함께 작용함으로써 앨런은 장애물을 돌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영리한 '길 찾기' 를 수행할 수 있었다.
각각의 제어층이 그 밑의 제어층을 포섭하는 이 포섭 구조는 뇌의 개별부위들이 서로 어떻게 협동하는가에 대한 특정한 개념과 일치하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뇌에는 걷기를 처리하는 거의 무의식적인 '층들' 이 있지만, 그 층들은 웅덩이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구에 의해 제압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로드니의 로봇 뇌에는 서로 다른 과정들이 담겨 있으며, 각 과정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다른 과정의 효과를 압도하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과정들이 항상 신경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로드니는 전체적인 (해부학적) 구조가 개별 과정의 구조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병렬식으로 존재하는 다수의 간단한 과정들이 자기 자신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덕분에, 이 로봇 뇌들은 대단히 빠르고 적응력이 높다. 이 점을 보여주기 위해 MIT 공대 인공지능 연구소에서는 앨런의 연구 성과를 이어받아 점점 더 복잡한 로봇을 창조하고 있다. 두 대의 장난감 자동차처럼 보이는) 톰과 제리는, 실제로 물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 물체를 추적하는 능력이 있었다. (24 개의 간단한 처리기로 구성된 뇌를 가진) 허버트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굴러가서 음료수 캔을 훔쳐오는 능력이 있었다. 징기스는 여섯 개의 다리에 각각 제어기가 달린 로봇이었는데, 울퉁불퉁한 지면도 별 어려움없이 통과하곤 했다.
가장 주목받는 로봇은 15 년에 걸쳐 천천히 완성되고 있는 실물 크기의 인간 로봇, 코그이다 (그림 5 참조). 코그는 이제 두 팔과 관절 운동이 가능한 머리를 갖게 되었다. 머리에 달린 두 개의 카메라 눈은 거의 인간의 눈만큼 능숙하게 움직인다. 또한 엄청난 수의 처리기들이 포섭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코그는 여러 가지 반사 작용을 하고, 머리를 끄덕일 줄 알고, 눈으로 물체를 추적하고 그 물체를 향해 손을 뻗을 줄 안다. 또한 얼굴을 인식할 줄도 아는데, 현재 연구팀은 사회적 교류를 위한 행동들을 추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많은 행동이 추가되고 있는 코그에 대해, '코그 숍' 의 과학자들은 로봇의 발달을 성장하는 유아의 발달에 비유하고 있다.
한편, MIT 과학자들의 로봇 뇌 개발을 일종의 진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진짜 진화를 이용하여 디지털 뇌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 6 참조).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과학기술에서 바로 이 가능성 - 의식을 가진 컴퓨터 - 이 가장 뜨거운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6. 의식에 도달하다?
진화적 컴퓨터 분야와 신경계를 이용하는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활발한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앞에서 나는, 학습하는 동안 신경망의 가중치를 조정하기 위해 진화를 이용한 예를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얼마나 많은 수의 신경세포를 이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신경세포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지정하여 전체 신경망을 설계하는 데 진화를 이용하고 있다.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응용하고 있는 분야는 로봇 공학으로, 과학자들은 실제 로봇의 감각계와 뇌를 진화시키고 있다.
(1) 진화하는 뇌
진화하는 뇌의 좋은 예로는 서식스 대학의 인만 하비 (Inman Harvey), 필 허스번즈 (Phil Husbands), 데이브 클리프 (Dave Cliff) 의 연구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진화를 이용하여 회귀식 신경망과 로봇 눈의 '시계' (visual field, 빛을 수용하는 영역) 를 창조했다. 그들의 '갠트리 로봇' - 천장에 매달린 로봇 - 은 삼각형과 사각형을 구별할 수 있는 뇌와 눈을 신속히 발달시켰다. 이 연구가 특히 인상적으로 비쳤던 이유는, 이 로봇이 단 두 개의 시계만을 이용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단 두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겹눈과 같았다.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연구는 칼 심스의 손에서 나왔다. 그는 당시의 가장 강력한 컴퓨터들을 이용하여 우리 세계의 여러 법칙들이 적용된 디지털 세계를 창조했다. 중력, 마찰, 모멘트 법칙, 관성뿐 아니라 빛, 물, 땅도 창조되엇다. 칼은 이 환경에서 '가상 생물들' 을 진화시켰다. 아주 작은 뇌나 몸으로 시작된 진화는 결국, 네 발을 움직여 헤엄치는 거북이나 물 속을 구불구불 헤엄치는 뱀 같은 생물들을 낳았다. 육지에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생물, 기묘한 형태로 깡충깡충 뛰거나 구르는 생물들이 생겨났다. 칼은 실험적으로 헤엄치는 물뱀을 육지에서 다시 진화시켜보았다. 그들은 자연 속의 방울뱀과 똑같은 동작을 재빨리 습득했다. 이 놀라운 연구의 뒤를 이어 제프 벤트렐라 (Jeff Ventrella) 는 현대적인 데스크탑 컴퓨터로 똑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물 속 생물이 우리의 눈 앞에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아주 매력적인 오락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브랜다이스 대학의 조던 폴락 (Jordan Pollack)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실제 로봇의 뇌와 몸을 진화시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의 세계로 이주시킬 계획을 시도하고 있다.
진화의 과정으로 창조된 디지털 신경망과 디지털 생물들이 자연의 생물과 똑같이 생겼으며 똑같이 겁 많은 행동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진화한 디지털 뇌의 복잡성도 그에 못지 않게 놀랍다. 칼은 다음과 같은 말로 청중을 즐겁게 한 적이 있다. 즉, 그의 가상 생물들이 아주 복잡한 신경망을 갖게 되어서 어느 한 신경망을 그리려면 방안을 가득 덮을 만한 종이가 필요하며, 따라서 그들의 신경망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연구를 배경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컴퓨터 중 100 개 이상의 신경세포를 이용하는 신경망은 거의 없다. 칼의 생물들도 다수가 이 수를 초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의 민달팽이는 350 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디지털 뇌는 지능이 생물학적 뇌의 절반 이하이다. 가령 코그의 뇌처럼 보다 복잡한 디지털 뇌는 작은 달팽이 집단의 수준이지만, 우리의 뇌에는 1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아직은 디지털 뇌의 위대한 지능에 대해 논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따라서 의식을 가진 컴퓨터라는 과학자들의 요원한 목표를 성취하려면, 디지털 뇌의 복잡성은 대략 100 만 배까지 증가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주목해온 과학자들 중에는 그렇게 방대한 신경망을 창조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과학자는 현재 브뤼셀 스타랩 연구소 두뇌 제작 그룹의 책임자인 위고 드 개리스 (Hugo de Garis) 일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겸비한 위고는 10 억 개의 신경세포를 가진 최초의 디지털 뇌를 개발해서 실물 크기의 고양이 로봇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와 그의 연구팀은 (앞장에서 언급한) 진화 가능 하드웨어의 방법을 이용하여 실제 전자 회로 안에 신경망이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재구성이 가능한 칩들은 전기적으로 '다시 배선' 되어 순식간에 다른 회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서로 다른 신경망들과 똑같이 동작할 수 있다. 한 디지털 뇌 안에서 재빨리 자기 자신을 재구성하여 일초에 수백만 번씩 새로운 신경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위고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소유자이지만, 그의 생각은 현재의 기술 수준을 너무 앞서고 있다. 그의 그룹은 최근 연구 목표를 10 억 개의 신경세포를 가진 신경망에서 7,500 만 신경세포의 신경망으로 수정했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성과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복잡한 뇌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 뇌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일도 어렵다. 그렇다면 컴퓨터의 의식은 어떠할까? 이 분야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2) 이상한 의식
우리는 현재 잘 다져진 땅을 딛고 서 있다. 유명한 철학자와 컴퓨터 공학자에서 다소 광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의 친구인 위고는 최근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인생의 주요 목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인공적인 뇌를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대규모 살상이 가능한 인공지능 전쟁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후자의 위험성에 대해 위고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초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전쟁을 벌여서 '인류를 전멸'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훨씬 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지능' 의 도움으로 로봇에게 의식을 부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 회로를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지능을 가진 외계인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미심쩍을 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고의 전이' 나 '집단 의식' 과 같은 불확실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컴퓨터 의식을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견해들도 있다. 우리는 앞에서 존 설 교수의 반대 의견 (중국어 방을 비유로 든 주장) 과, 그것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다른 한편으로 옥스퍼드 대학의 물리학 교수 로저 펜로즈 (Roger Penrose) 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한 기계' 와는 달리 직관적 비약을 하는 존재이므로, 의식에도 반드시 비 알고리즘적 기초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가 양자 물리학자임을 고려할 때, 양자 역학의 이상한 법칙들이 의식을 창조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그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답이 진리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빈 민스키 교수의 생각은 로저 펜로즈와 정반대이다. 우리의 뇌는 기계이고, 우리가 의식적 존재라는 인상은 대개 착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빈은 '의식'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상당히 제한적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아는 상태, 즉 생각하는 동안 나 자신을 내적으로 자세히 조사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왜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항상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마빈의 견해이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인간이 소유하는 의식은 별로 큰 것이 아니다. 즉,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지하는 선천적 능력이 거의 없는 편이다." 심지어는 그는, 우리의 컴퓨터도 그들 자신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사고 과정들' 을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기계들은 이미 잠재적으로 인간보다 더 의식적인 존재가 되었다" 고 말한다.
그러나 MIT 의 인지 신경과학자 스티븐 핀커 (Steven Pinker) 교수는, "의식이라는 단어의 아주 다른 의미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고 지적한다. "그 의미는 감각능력 (sentience), 즉 존재 그 자체, 주관적 경험, 자연 그대로의 느낌, 일인칭 현재시제이고, 빨간 것을 보거나 고통을 느끼거나 짠맛을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안다. 앞에서, 축구 관중의 형태로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에 반응하는 과정을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은 주목을 끌기 위해 경쟁하면서, 새로운 것에 적극적으로 집중하고, 새로운 집단 혹은 '대행자' 를 형성하지만, 중앙 통제는 전혀 없는 신경세포와 연접 부위와 뇌 부위의 군중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이 모든 일이 뇌라는 회색 물질 안에서, 우리가 이 장에서 탐구한 과정들을 따라 발생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을 컴퓨터 안의 디지털 세계에 적용할 때, 충분한 신경세포와 연접 부위와 적절한 구조가 주어진다면, 디지털 뇌도 우리의 뇌만큼 확실한 의식을 얻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가능한 일이지만,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연의 뇌처럼 잘 작동하는 디지털 뇌를 만들거나 진화시킬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만,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7. 요약
뇌를 이해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주제이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의 머릿 속에 감춰진 신비에 빛을 비추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의 뇌는 신경세포의 이용을 생각하고 학습하며, 신경세포는 두 개의 빨대가 꽂힌 포도주 잔과 흡사하다. 이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신경망들은 각각 여러 계층의 직원과 상사들로 구성된 회사처럼 작동한다. 또한 뇌에는 여러 부위가 있고, 이 부위들은 건물이 증축되듯이 진화에 의해 서서히 추가된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의식은 축구장의 군중처럼 행동하는 여러 과정 - 의식적 과정과 무의식적 과정 - 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지털 뇌는 이보다 훨씬 간단해서, 우리는 디지털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거의) 안다. 디지털 뇌는 '중국어 방' 이 아니라 보통 컴퓨터의 디지털 세계 안에 있다. 디지털 뇌는 또한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경세포가 가중치를 주고, 합을 내고, 한계치에 따라 조정되면서 특정한 활성화 함수로 변형시키는 신호들을 받는다. 디지털 뇌는 또한 신경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경망에는 피드포워드와 회귀식이 있다. 그리고 신경망은 학습할 줄 안다. 예를 들어, 어떤 신경망은 출력과 훈련된 예들을 비교하도록 모든 신경세포의 입력 가중치를 조정하는 방법을 학습하여, 접시 공장의 품질 관리에 이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신경망들은 매우 능률적이기 때문에, 폭약 탐지기, 저당 평가, 전화 소음제거 필터 등 대단히 많은 곳에 응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포섭 구조로 개발된 로봇 뇌에는 개별 과제들을 병렬식으로 수행하는 분업화된 부위나 과정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의 의식이라는 까다로운 문제가 있다. 만약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언젠가는 디지털 세게의 디지털 뇌가 의식을 갖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경세포와 신경망과 사고를 가능케 하는 부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뇌도 있다. 그 뇌는 신경세포가 없고 기이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곤충으로 이루어진 뇌이다.
'♧강의목록2♧ > 노인.치매.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재’뇌 만드는 법 100가지 (0) | 2012.03.04 |
---|---|
마음과 뇌세포 (0) | 2012.03.04 |
신비한뇌 (0) | 2012.03.04 |
두뇌는 무게 3 파운드의 슈퍼컴퓨터이다. 두뇌는 당신의 삶을 조절하는 중심센터이며 사령부이다. 두뇌는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관계한 (0) | 2012.03.04 |
원리를 알면 기분을 바꿀 수 있다 (0) | 2012.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