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스티븐 호킹 박사는 '천국은 없다.'고 주장했다. 뇌가 고장나서 깜박임을 멈추면 그 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많은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 본인을 뇌라는 CPU가 명령하는 컴퓨터로 여기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물론 정신과 마음을 물질로부터 생성되는 부차적 산물로 취급하는 유물론적인 사고가 철학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기조를 따르고 있으며 호킹 박사도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믿는 바가 있으며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에 대해 단정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이다.
천국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라는 호킹 박사의 주장은 일단 넘어가자.
문제는 그가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일상을 두뇌 작용의 산물로 깔끔히 결론지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뉴스에서 접하는 '무슨 호르몬의 작용으로 감정이 영향을 받고, 사랑은 뇌의 어디부분이 자극을 받아 생기고.' 하는 이야기들을 정말 싫어한다. '뇌의 작용이 사람의 마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물리학적으로 맞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물리학을 포괄하는 철학에서는 얼마든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내 짧은 철학적 지식으로 여기서 주저리주저리 할 이유는 전혀 없고 여력도 없다. 단지 내가 이런 얘기들에 던지고 싶은 반문을 소스코드란 영화에서도 던지고 있기에 언급해보고자 한다.
요즘 보면 발전된 미래의 기술로 뇌를 조작하여 현세계를 벗어나 가상세계나 프로그램을 넘나들 수 있다는 콘셉트의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매트릭스가 그 원조격의 영화가 될테고 소스코드 또한 그러한 개념에서 출발한 영화이다.
현재의 과학이나 논리로 보면 이러한 설정들에서 모순되는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겠지만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기에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이러한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이 고도로 조직된 물질, 즉 두뇌의 작용에 기인한다고 보는 사고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두뇌에 각종 전자코드와 회로를 연결시켜놓으면 정신세계 또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제한되고 조정될 수 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매트릭스와 소스코드의 공통점은 영화의 말미에 이러한 개념과 한계를 스스로 깨어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진정한, 그리고 통쾌한 반전이다.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은 프로그램 내에서의 한계를 깨버릴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오직 단 한 사람이다. 한명 뿐이지만 그리고 영웅이지만 분명 그도 사람이다. 두뇌의 작용으로 정신이 지배된다면 프로그램으로 두뇌가 조정받고 있는 매트릭스 내에서 그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지만 주인공이 두뇌를 지배하는 프로그램을 정신으로 극복해냄으로써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처음 설정해 놓은 것과 반대임을 드러낸다.
소스코드 또한 마찬가지다. '굿윈 중위'가 수차례 강조하듯이 기차 속에서의 8분은 사망자의 뇌에 남겨진 기억의 편린으로 제작된 프로그램 속 세계일 뿐이다. 뇌의 작용에 수학적 연산을 적용시켜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설정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주인공 '스티븐스 대위'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동화 속에 빠져사는' 사람들 생각으로는 이미 그의 영혼은 하반신이 잘려나간 신체를 벗어나 천국으로 떠나고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소스코드 프로그램 속에서는 스티븐스 대위의 뇌에 남아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떠돌아다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헬리콥터 조종간을 잡고 있던 기억,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못다한 말 등 그가 죽기 전 8분 동안의 기억들 일 것이다.
그 것들이 스티븐스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두뇌 작용의 산물일 뿐일까? '소스코드'의 개발자 '러틀리지 박사'는 프로그램 속에서 수없는 죽음을 반복하며 괴로워하는 스티븐스 대위의 '자신을 죽게 놓아달라.'는 요청을 사실상 묵살하고 다시 기억을 '리부팅'시켜 테러방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를 하나의 프로그램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박사는 되묻는다. 스티븐스로 인해 수백만의 인명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박사의 말에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이 두뇌 작용의 산물로 취급될 뿐이라면 수백만의 생명의 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스티븐스가 겪는 고통이 리부팅시키면 그만인 신경작용일 뿐이라면 왜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내야하는가? 또 하나는 과연 한 사람의 고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면할 수 있다면 그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마지막 물음은 논점을 벗어난 이야기지만 간단히 내 생각을 이야기 하자면, 사람은 결국 그 한 사람만의 몫만 감당한다는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죽음도 한사람만의 몫만 감당한다. 수백만의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죽는 사람은 수백만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과연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만명의 죽음은 다른 것일까?
다시 돌아와서, 스티븐스 대위는 기차안의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며 마지막으로 기차 속 세계로 보내달라고 하고 굿윈 중위는 그 곳은 현실세계가 아닌 프로그램 속 세계일 뿐이며 의미없는 짓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건처리를 위해 스티븐스 대위의 기억을 리부팅시키고 세팅하라는 박사의 지시를 어기고 결국 스티븐스를 기차 속 세계로 떠나보낸다. 굿윈 중위는 스티븐스 대위와 대화하면서 깊은 감동을 드러낸다. 그녀는 그를 더 이상 '죽은 헬기조종사의 뇌 속에 남은 기억조각'으로 보지 않고 온전한 '한 사람의 마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마지막 8분, 기차안에서의 마지막 순간 스티븐스와 그의 연인과 기차안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가득 만면에 띤채 기억의 종착에 다다른다. 그 순간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의 모습들, 우리의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것의 위대함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인생은 위대하다는 것을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그 장면을 통해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순간이 끝이 아니었다. 소스코드란 프로그램의 경계를,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설정을 스스로 깨부수어버림으로써 영화는 외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한낱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이 아니다."라고...
스티븐 호킹 박사의 "천국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란 주장을 이야기해보자.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듯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이 세계를 관조할 수 없다. 이 세계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길도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 속한 상태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과학이다. 칸트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주관형식인 시간, 공간 내에 주어지는 현상 뿐이라고 했다. 즉,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말이다. 자신의 눈에 보이고 인지하는 것 외의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없다.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다. 우리가 우리의 눈을 통해 아는 것은 질문할 필요가 없고 세계의 시스템을 벗어나서 우리가 모르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매트릭스를 경험하고 깨어난(현실세계로 돌아온) 주인공은 매트릭스가 허구의 세계였고 현실세계(실재하는 세계)로 돌아왔음을 안도한다. 그러나 매트릭스로 주인공을 보냈던 이가 묻는다. 매트릭스가 허상이고 지금있는 세계가 진실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꿈을 꾸었을 때 사람은 그 꿈이 허상임을 알지못한다. 똑같이 실재세계로 느끼고 행동한다. 다만 꿈을 깨었을 때 그것이 가짜세계였음을 단정짓고 현재 있는 곳, 꿈에서 돌아온 곳을 실재한다고 여기고 살아간다. 우리가 있는 이 곳이 실재세계임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 곳 또한 잠시 꾸는 꿈 속의 세계일 수도 있음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아니, 과연 실재세계와 가짜세계의 구분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소스코드에서의 마지막 8분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그 세계는 가짜 세계인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있는 세계의 시스템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다. 주어진 시스템, 그것을 인지하는 시스템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공간이 매트릭스 속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세계 또한 내 존재가, 혹은 내 영혼이 잠깐 머물렀다 가는 꿈 속 같은 세계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던져본다 한들 누구도 헛웃음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 것 또한 하나의 관점이고 하나의 의문일 뿐 진리는 아니다. 다만,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단순히 이 세계 안에서 이 세계를 인지하는 시스템 속의 하나의 기관에 불과할 뿐인(형식에 불과할 뿐인) 뇌가 컴퓨터처럼 기능이 다하고 고장난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고, 그 존재가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말하는 것이 곧 진리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솔직히 한 인간이 자신의 앎에 취해 얼마나 오만해질 수 있는가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생각할 뿐이다.
이야기를 적다보니 곁길로 샌 느낌이지만 영화 '소스코드'가 보여주는 내용,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내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영화가 진행되어가면서 '이터널 선샤인'과 느낌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에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 뿐이라고 여겼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진정한 '사람의 마음'과, 기억은 지워지지만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만은 남는다는 이야기. 정말 닮지 않았나?
영화 내내 풍기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반복되는 장면들,
마지막 순간 "Everything's gonna be okay...", 그리고 "Remember me... Try your best..."
가슴을 꽉 막히게 하는 아름다운 한마디까지 닮은 것 같다.
요즘 느끼는 것...
인생은 위대하다. 우리 평범한 일상의 매순간들이 위대하다.
이런 아름다운 영화들이 우리의 일상에 즐거움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도 위대하다.
소스코드에서도 이러한 느낌을 확인하게 되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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