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 오락♧/Nude貨寶

1967년 윤봉길

花受紛-동아줄 2008. 2. 5. 00:13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유서 中에서>





      *생가(충남 예산)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두 아들 앞 유서 中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 사적관 윤 의사 사적전시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을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어록 中에서>



      *묘소(효창공원)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

      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일본의 천장절과 승전기념일

       행사에 폭탄을 투척.

       


      안타깝게도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엔 중국의 문학가 루쉰의 동상이...





      * 거사 기념석



      * * 최후 순국 장면









      * 매장 장면



      ** 장제스 대만 전 총통의 친필





      *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당시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고 극찬.



100년전 우리나라 어린이 모습













100년전 어느 선교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