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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장후용詩人

花受紛-동아줄 2008. 4. 15. 23:08

 

호롱불 장후용 시인의 “마음 스며들기”


“선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선으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으로 악을 내나니

이는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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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해관계를 떠나서 아름다운 행동을 보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나는 아주 가난한 어린시절이 있었고, 그 속에는 악한 생각으로 인한

부끄러운 일도 많았지만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고 착한 마음을 갖게 해준

따뜻한 가족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인지 대개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땐

착한 눈으로 먼저 사람들을 보려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뒤 늦게 내가 생각한 대로 상대방에게서

신뢰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무지 밉지만 싫어하지 못합니다.

대신 안타까운 마음으로 속상해 하며 상대가 착해지기를 기다립니다.


아마 내 속에도 저런 악한 모습이 있을 테지만,

결국 착한 마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듯이, 그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으면 착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나는 나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 때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열등감이 심했지요. 내가 나 자신을 믿기까지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는 마음으로 상대방도 끝까지 인내하며 믿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쨌든 나는 나 자신을 어느 정도는 알기 때문에 내 생의 모든 부분을 가능한

환희 속에 마치고 싶습니다. 


^.^ ..며칠 후면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형님의 추도일이 다가옵니다.

이맘때쯤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아무도 모르게 바닷가에 나가 막걸리 두 잔을

눈물과 함께 훌쩍입니다. 한잔은 내 몫, 또 한잔은 형님의 몫으로 바다에 드리고 있노라면

그때 그 시절 그리운 형의 목소리가 가슴으로부터 울려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11살이 채 되기 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누나들이 저녁밥을 지으려고 보리쌀을 삶아 놓은 것을

너무 배가 고파 몰래 훔쳐 먹다가 그만 바닥에 다 쏟아 부은 적이 있었지요.

그때는 쌀로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보리쌀에 고구마를 넣고 밥을 지었었답니다.

보리쌀로 금방 밥을 지으면 잘 퍼지지 않기 때문에 미리 한 번 삶아놓기도 하고,

쥐나 고양이가 먹지 못하도록 바구니에 담아 모시상보로 덮고, 그것을 초가의 처마,

석가래 같은 곳에 큰 못을 박고 그곳에 대롱대롱 달아 놓는 것이 시골 농가의 풍경이었습니다.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온 누나들은 얼른 저녁밥을 지어

배고픈 동생들과 함께 먹어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답니다.

누나들이 많은 우리 집에는 각자 맡은 역할들이 다 있었는데, 큰 누나는 들에서 갓 캐어 온

나물들로 반찬을 만드는 담당이었고, 성깔이 있는 둘째 누나가 밥을 짓는 역할을 맡고, 다음

셋째 누나는 동생들이 어질러놓은 방청소를 그리고 형과 나는 아버지 없이 고된 일로

여기 저기 삭신이 쑤신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동안 엄마의 품안이 그리웠던

어린 동생들도 덩달아 피로를 풀어준다며 어머니의 가슴을 조물락거리는 동안

저녁상이 들어와 다 같이 맛있게 저녁을 먹는 풍경이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우리 집의 저녁 밥상 풍경이었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성깔 있는 둘째 누나가 예전처럼 밥을 하려고 바구니를 열어보니

보리쌀 반, 돌멩이가 반인 것을 보고 난리가 난 것은 당연지사, 아이들의 손이

잘 닫지 않은 탓에 나보다 두 살이나 많고, 키가 큰 형이 누나들의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자수하여 형의

결백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자기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누나들은 믿어주지 않았지요.

그때 형은 나를 보았고, 나의 눈빛이 얼마나 애절했는지, 결국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벌로 저녁밥을 굶고 자야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밥을 굶은 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숙제를 하고 있던 형에게 나의 보물 1호인 왕 구술을 내밀며 용서를 빌었다.


그때 형은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모탕(우리들의 아지트)으로 데리고 갔다.

형에게 혼 날 각오를 하고 이끌러 갔는데, 형은 나를 혼내지도 않고

왕 구슬도 도로 돌려주면서 하는 말이 “그렇게 배가 고팠었니?”

아무리 그래도 "네가 한 일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면 되겠니?

너는 너밖에 모르겠니? 나도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알아?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눈물을 참고 있었는지 아느냐고?

네가 슬프면 다른 사람도 슬퍼진다는 걸 모르느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치 순식간에 내가 커져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내가 캄캄한 방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파랗게 동터 오르는 지평선을 보게 된

느낌이랄까. 그때는 뭔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지만

그 때부터 형이 무지 존경스러워 진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물론 내가 나중에 마음공부를 하면서 정리가 되어진 일이지만

그때 형이 표현한 슬픔과 근심에서 나는 형의 사랑과 선의와 분배라는

새로운 차원의 현실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네가 고통 받으면 나도 고통 받는다“라는

진리를 발견한 것이지요. 이 일은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형과의 추억이지만 사랑하는 누나 형, 누이, 동생 분들도 같은 추억을 

마음에 담고 있을 수 있을 것이기에 모두의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이야기가 아닐까 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 모두의 마음에 아름답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하루 모두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08/4/13/ 봉창에 스며드는 호롱불 시인장후용


 

호롱불 장후용 시인의 “말씀과 함께 마음 스며들기”


‘아내’에게 ‘애칭’ 지어주기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마당 뒷켠, 텃밭 한 모퉁이에 심겨진 야생목 한 그루가

봄볕에 여린 가지를 흔들며 푸른 잎을 나풀거립니다.


몇 해 전, 산에서 캐다 심은 이름모를 야생목입니다.

오늘 저는 그 꽃을 ‘이듬해 꽃’이란 이름을 짓습니다. 


봄볕이 따사롭던 그날, 백야초 효소를 내리기 위해

산나물을 캐러 산에 올랐다가 진한 향기를 풍기며 화사하게 피어난

이름모를 꽃나무를 보고, 어쩜 아내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그 꽃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코로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다가, 그 옆에 있는

어린 싹 하나를 옮겨와 화단에 심었는데, 고맙게도 얼어 죽거나, 말라죽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서 조만간 꽃을 피워 낼 것 같은 풋풋함에 왠지 꼭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정처럼 가슴이 설레 키게 하는 야생목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년이면 아내의 청순한 모습처럼

예쁘고 화사한 꽃잎들을 피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그동안 아내와 함께 지나던 세월들을 잠시 돌이켜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물바람이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는 중도에 두 사람 다 장애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절망과 경제적 상실감은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각자에게 심한 우울증상으로 나타나 가슴을 후벼 파는 피폐한

바람으로 서로를 세차게 흔들어 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둘의 가슴엔 무거운 옹이 같은

상처 몇 개씩을 가슴에 달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가 평생을 살아가며

어우루어야 할 옹이자국들 말입니다. 


그날 내가 세상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불치인‘루게릭’이라는

몸 쓸 병을 앓게 되는 날, 아내도 애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인해

따로 따로 병원에 입원하였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여러 날을 눈물로 지새우며 나름대로 힘겨운 삶이 투쟁을

벌여왔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삭풍 몰아치던 겨울밤, 몸이 굳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새벽이 오면 서로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가 싫어, 차라리 그 밤이 마지막

밤이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한 적도 많았지만, 그러나 어김없이 새벽은

다시 밝아오고, 밤새 보대끼면서도 어린 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쓰러지지

말자며 두 손 꼭 붙잡고 보대낀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 순간,

꼭 그만큼의 행복을 일구어낸 봄꽃들과 함께 환한 웃음을

웃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프기 전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일차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활동은 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졌고, 결국

예기치 않은 질병을 앓게 되자, 그동안 힘겹게 쌓아온

모래 위의 금자탑은 밀물에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병명도 모르는

치료비로 다시 다 스며들어버리고

죽을 만큼 힘겹던 날들을 딛고 일어서고자

살던 집을 줄여서 지금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좁은 데서 너른 대로 이사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줄여서 이사를 하는 곳이라 이곳저곳 손때가 묻어 아쉽지만

버려야 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다행히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옆에 작은 창고가 하나 있어서 그곳에 짐을 들여 넣다가 감나무 밑에

작은 화단 하나를 발견하게 된 아내는 처음에 그곳에다가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심었기 때문에 원래는 꽃밭이었을 이름이

지금은 텃밭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랍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꽃밭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을 분이고, 그 주위에는 여기저기 철근이랑,

쇠못이랑, 개뼈다귀나 돼지 사골 뼈, 심지어는 공사현장에서 가져다 부어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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