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 저 바람속에’는 이어령 선생 평론집의 제목이다.
그 책은 알다시피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지나친 자학으로 일관돼 있어
보기에도 끔찍한 노비문서였다.
그런데 어때서 한태주에게 그 말을 적용하느냐?
나는 몇년전 한태주의 흙피리 연주를 강화도에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또 들었고 광주에서 다시 들었다.
오늘 ‘하늘연못’을 집에서 또 다시 듣게 되었다.
강화도에서부터 오늘 또다시 들을 때까지 그때마다의 첫 느낌은 언제나 그것이
‘흙의 소리요 바람의 소리’, ‘흙을 통해서 울리는 바람소리’라는 것이었다.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바람’은 ‘하늘’이요, ‘흙’은 ‘땅’이다.
소리는 사람이 땅을 통해 울리는 하늘인 것이다.
그 책은 알다시피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지나친 자학으로 일관돼 있어
보기에도 끔찍한 노비문서였다.
그런데 어때서 한태주에게 그 말을 적용하느냐?
나는 몇년전 한태주의 흙피리 연주를 강화도에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또 들었고 광주에서 다시 들었다.
오늘 ‘하늘연못’을 집에서 또 다시 듣게 되었다.
강화도에서부터 오늘 또다시 들을 때까지 그때마다의 첫 느낌은 언제나 그것이
‘흙의 소리요 바람의 소리’, ‘흙을 통해서 울리는 바람소리’라는 것이었다.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바람’은 ‘하늘’이요, ‘흙’은 ‘땅’이다.
소리는 사람이 땅을 통해 울리는 하늘인 것이다.
그러매 흙속에 저 바람속에 한태주의 소리가 있다.
소리는 이치만도 아니고 기운만도 아니다.
소리는 질서만도 아니고 혼돈만도 아니다.
소리가 흙속에서 솟아나고 흙을 꿰뚫는 바람인 한, 소리는 그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이며 과정이며 또한 결과다. 이 말은 퍽 어렵게 들릴 것이다.
한태주의 흙피리 연주를 들으면서
흙속에 저 바람속에 울리는 소리’란 말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 소리는 우선 외롭다. 기금 기껏해야 열여섯 살 먹은 소년의 소리가 왜 그리 외로울까?
인간은 본디 자기존재의 방에 있을 때엔 외롭다.
신은 본디 ‘외로운 변화’다. 태주의 소리에는 이외로운 변화인 신의 한숨이 서려 있다.
태주는 지금 그 외로움을 더욱 날세우기 위해 자연 속에 있다.
외로움이란 어쩌면 참다운 삶의 조건이니 참다운 예술의 전제가 될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소리 속에 ‘무늬’가 살아 생동하지 못하고
‘무늬’가 없을 때 그 소리는 그저 한 바람으로 그친다.
태주가 이제부터 애써야할 것은 일찍부터 이 외로움 속에서
마음의 부자가 되는 법을 익히는 훈련이다.
그것이 곧 모짜르트 공부요, 그것이 바로 융천 스님공부다.
그 외로움 속에 비로소 ‘흙바람’이 가진 온갖 신비로움과
갖은 아름다움이 다 영글 것이다.
부디 외로움을 사랑하라!
한태주의 흙피리 음악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한
바람을 말하라면, 결국 이 말밖에 할 것이 없다.
흙 속에
저 바람속에
외로운 한 신의 소리가 있으니
출처 - 2002 김지하 시인
01. 연꽃위에 내리는 비
02. 노을꽃
03. 물놀이
04. 하늘연못
05. 고구려 벽화의 노래
06. 바람
07. 산사의 새벽
08. 생명의 강
09. 지리산
10.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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