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 주제의 초기 논의
1. 金在喆 - 파계승과 양반에 대한 모욕에 주목하고, 불교자체를 부정하는 태도
가 아니라 바른 길에서 벗어난 파계승의 행위를 비난하는 관점이라 하였으며, 가
면극의 관객들이 양반에게 억압받는 평민이었기에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선 가면극 배
우들이 양반층을 마음껏 모욕하게 된 결과가 그 것이라고 하였다.
2. 宋陽夏 - 특수계급에 대한 반감과 파계승에 대한 증오를 주제로 파악한 것은 김
재철의 주제 파악에서 큰 진전은 없었다. 오광대의 내용을 살피면서 가면극에서는
파사의 관념과 특수계급에 대한 반감과 남녀간의 치정관계등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
된다고 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유교도에 대한 반감과 파계승에 대한 증오와 성적방
면의 추악한 쟁투가 여지없이 표현된다고 지적하였다.
◎1960 ∼70년대 가면극 연구
李社鉉에 의해서 기존의 논의가 파사의 의식무, 양반계급에 대한 반감과 모욕, 파
계승에 대한 풍자, 남녀의 갈등, 서민생활의 빈곤상 등으로 정리되었지만 趙東一은
봉산탈춤을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해 내었다. 사상좌춤, 팔목중춤, 사당춤,
노장춤, 사자춤과장 등에서는 새로운 상업 세력이 유교와 불교를 한꺼번에 배격하
여 관념론이 아닌 현실주의를 보여주고 있으며, 양반춤에서는 봉건사회의 억압에 대
한 인식과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미얄춤 과장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봉건적 억압을 폭로하고 규탄하고 있다는 파악이었다. 이러한 파
악은 그 동안의 피상적으로 관찰하고 소박하게만 파악해온 종래의 견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동일은 어떤 극적 행위의 의미를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것에서는
주제를 파악하기 힘들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극적 행위나 갈등구조를 분석하
여 얻어낸 해석을 통해서 주제를 밝힐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려했다.
70년대에 들어와서 조동일은 봉산탈춤의 주제를 재론하고 양주별산대놀이의 각 과
장을 살피면서 가면극의 주제문제를 더 파고 들어갔다.
양반과장 - 말뚝이로 집약되는 민중의 의지를 통해 봉건적 특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는 주장을 내포
노장과장 - 신분적 특권을 유지하려는 유교와 초월적 무관심을 군장하려는 불교를
동시에 배척
미얄과장 - 남성의 횡포를 드러내고 여성의 운명을 애통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
이러한 재론을 통해 기존의 논의를 더욱 보강해 나갔다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양주별산대의 각 과장의 주제가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었다. 샌님과장
의 포도부장 놀이는 양반의 패배가 더 심각해 진 것을 보여줌으로서 양반 풍자라는
가면극의 주제가 생생한 의의를 가지도록 발전된 극적갈등을 구조화 한 것이며, 상
좌, 옴, 목중, 연잎과장은 중이면서 중이 아니고 이익이나 다투는 인물의 내적 갈등
과 외적 갈등을 통해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살아가며 생기
는 갈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며, 신할애비 과장은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
지오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생활을 구가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못 한 고민을 암시하고 있으며,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예찬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가면극의 주제가에 대한 연구를 더욱 다변화시킨 셈
이 되었다.
70년대후반에 들어와서 蔡熙完은 가면극의 본질이 사건규명극이라기 보다는 사건
향유극에 가깝고, 현실인식극이라기 보다는 현실해소극에 가깝다고 보고, 가면극에
서 인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연희자에게나 관중에게나 동일한 모습이며 그 것
에 대한 공동의 동질적인 문제의식을 연희의 현장참여자가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
에 가면극의 몇 개의 주제는 현실에 대한 민중의 비판정신이라는 통일된 일관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현실비판이라는 그 각각의 상이한 주제로 내재적으로 분화되
는 방향을 취한다고 함으로서, 가면극이 몇 개의 드라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 테
두리 속에 들어 있다는 기존의 논의를 보다 전진시키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
다. 같은 시기에 金芳玉은 가면극의 주제표출방식에 대해 2인 사이의 대결을 통해
주제가 강력하고 단순하게 표현되어있고,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룬 이야기들이 연결
된 형태로 이루어져서, 현실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이 반영되고, 후대로 내려올수
록 더욱 진행한다고 하였다. 이 밖에 宋東準은 브레히트가 수립한 서사극과 가면극
을 비교하면서 가면극의 주제의 바탕으로 불교사회와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에 드러
나는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지적하였으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논
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金烈圭는 가면극이 사회적 질서를 갱신하기 위한 효
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파악하였는데, 이는 가면극의 주제가 대립하는
사회적 세력의 충돌을 문제삼는데 있지 않고, 사회적 대립의 화해와 그 치유를 내세
우는 데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1980년대 이후 가면극 연구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구의 폭은 매우 넓어졌으나 가면극 주제의 관심은 이에 비
례하여 깊어지지는 않았다.
徐淵昊는 하회별신굿의 연극적 구조를 통해 삶의 전체성과 순환의 질서가 나타나
고 민중의식 성장을 드러내는 구체적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鄭尙卦는 경남지방
의 탈놀음인 오광대와 들놀음을 서로 비교하여 그 분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작업
을 통해 할미 ,영감 놀이의 이면에는 서민 생활 에 대한 현실인식과 더불어 자기 반
성을 희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논의들은 이전의 주제에 비해 크
게 진전된 바는 없으나, 연구 대상을 달리 하여 논의를 다양화 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는다.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으로는 玄永學의 논의이다. 신학자로서 가면극의 내용에
서 종교, 사회, 문화적 의미를 이끌어내려고 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논의에 부분적
인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장과장을 파계승에 대한 풍자로 보는 것은 지
나치게 도덕적인 것이며, 노장이 소무 때문에 자아를 발견한다는 견해는 현대적이
고,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이 과장의 주제는 땀 흘리
고 살아가는 민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고등종교에 대한 민중의 비판이고, 풍자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양반과장에서는 체제를 업고 사는 양반에 대한 비판이고, 미얄
과장은 철저하게 비극으로 된 민중이 자신을 퉁해 웃을 수 있는 능력과 깊이를 보여
준다고 하였다. 결국 그 역시 가면극의 주체인 민중과 대립되는 사회세력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조동일의 주제 해석에 비해 크게 다르거나 발전된
부분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가면극을 통해 민중은 비판적 초월을 얻게 된다"는 해석이 이채롭게 보인
다. 이는 채희완이 설명하고자 했던 "집단적 신명"이라는 개념과도 친근하다고 여겨
진다.
가면극에서 관중은 민중적 전형성을 보여주는 말뚝이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 이 들
의 행위를 통해 신명을 공급받아 내재된 신명을 도출시켜 집단적인 힘을 얻어내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즉 가면극의 주제는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체험되어지
는 세계라는 것이다.
◎ 가면극 주제의 논의
지근까지의 논의를 점검해 볼 때, 이러한 여러 논의들이 서로 대립되는 쟁점을 부
각시켰다기 보다는 해석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달리 보자면 가면극의 주제는 사실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기에 달리 해석
될 소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가면극 연구의 초기에는
가면극의 제재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단편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므로 연구가
단순하고 소박한 단계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면극의 주제는 일정한 제
재의 단위가 발생시키고 있는 의미를 추상화시키는 과정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
다. 지나치게 추상화 시키면 가면극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손상시킬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가면극의 각 과장은 별 개의 주제를 가진 독립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것
은 단선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 과장이 다른 계통을 통해 전해지다가 조
선 후기에 이르러 통합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며, 과장 내에서 새로운 인물이 창조되
어 마당을 확충시키고 내용을 첨가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
자면 각 과장의 주제는 작품에 따라 좀 더 세밀하게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가면극 각 작품의 주제 제시에만 너무 관심을 쏟다 보면 가면극의 주제 연구는 각
과장의 개별적 차이에만 묶이게 된다. 넓게 보면 가면극의 주제가 과장 별로 넓게
나타나면서도 그 핵심적인 주제는 기존의 질서와 이념에 대한 비판에 그 초점이 모
아질 수 있다. 여기에는 가면극에 참여한 민중이 당대의 현실에서 제기했던 문제의
식이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한국 문학사의 쟁점中 - 가면극의 주제 (서종문) 내용 정리
◎ 덧붙임
사실 가면극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논의를 계속 던져왔다. 가면극이라 불러야
한다. 탈춤이라고 불러야 한다. 각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살려주어야 한다.
사실 연극이라는 부분이 가지고 있는 종합적 성격은 인정을 하지만, 탈이라는 용어
대신에 가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되겠는가라는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이다. 가면극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가면을 쓰고 하는 연극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가
능성이 많다는 생각이다. 탈춤이라는 이름 역시 특정한 지역색을 지니고 있고, 용
어 자체에 대한 한계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탈놀이라는 명칭이
가장 정확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가면극을 총칭 할 수 있는 명
사가 필요하다면 가면극 보다는 탈놀이가 더 적당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사실 탈놀이의 주제라는 부분은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듯이 당 대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현실적인 문제의식들이 공연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라는 것은 당연
한 것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올 수 있는 논쟁은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논의가 되는 부분은 서종문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탈놀이라는 것이 문제의식
을 드러내 놓기만 하느냐 아니면 그 것을 해소할 수 있게 했느냐 라는 부분이 내게
는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당시 민중들의 놀이 속에서 양반이 희화되고 종교인이
웃음꺼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전통적인 신분제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것
일 것이다. 탈놀이 자체가 민중의식을 상승시킨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민중들의 의
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탈놀이의 형식에 점차적으로 비판적인 내용이 강해진 것일
거라고 보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양반들은 이런 탈놀이의 형식
을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용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것 자체
가 어느 정도 민중들의 불만의 해소구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
다. 하나, 어느 정도의 해소 역할을 하였다고 해서 그 것이 과연 민중적 의식 향상
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사실 문학이나 예술작품이 사람이나
사회의 관념들을 깨는 것이 아니라 그 것들이 깨질 만 하니까 그런 작품들이 나오
고 연희 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동일의 탈춤의 역사와 원리이후
더 이상 책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더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든다.
1. 金在喆 - 파계승과 양반에 대한 모욕에 주목하고, 불교자체를 부정하는 태도
가 아니라 바른 길에서 벗어난 파계승의 행위를 비난하는 관점이라 하였으며, 가
면극의 관객들이 양반에게 억압받는 평민이었기에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선 가면극 배
우들이 양반층을 마음껏 모욕하게 된 결과가 그 것이라고 하였다.
2. 宋陽夏 - 특수계급에 대한 반감과 파계승에 대한 증오를 주제로 파악한 것은 김
재철의 주제 파악에서 큰 진전은 없었다. 오광대의 내용을 살피면서 가면극에서는
파사의 관념과 특수계급에 대한 반감과 남녀간의 치정관계등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
된다고 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유교도에 대한 반감과 파계승에 대한 증오와 성적방
면의 추악한 쟁투가 여지없이 표현된다고 지적하였다.
◎1960 ∼70년대 가면극 연구
李社鉉에 의해서 기존의 논의가 파사의 의식무, 양반계급에 대한 반감과 모욕, 파
계승에 대한 풍자, 남녀의 갈등, 서민생활의 빈곤상 등으로 정리되었지만 趙東一은
봉산탈춤을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해 내었다. 사상좌춤, 팔목중춤, 사당춤,
노장춤, 사자춤과장 등에서는 새로운 상업 세력이 유교와 불교를 한꺼번에 배격하
여 관념론이 아닌 현실주의를 보여주고 있으며, 양반춤에서는 봉건사회의 억압에 대
한 인식과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미얄춤 과장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봉건적 억압을 폭로하고 규탄하고 있다는 파악이었다. 이러한 파
악은 그 동안의 피상적으로 관찰하고 소박하게만 파악해온 종래의 견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동일은 어떤 극적 행위의 의미를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것에서는
주제를 파악하기 힘들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극적 행위나 갈등구조를 분석하
여 얻어낸 해석을 통해서 주제를 밝힐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려했다.
70년대에 들어와서 조동일은 봉산탈춤의 주제를 재론하고 양주별산대놀이의 각 과
장을 살피면서 가면극의 주제문제를 더 파고 들어갔다.
양반과장 - 말뚝이로 집약되는 민중의 의지를 통해 봉건적 특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는 주장을 내포
노장과장 - 신분적 특권을 유지하려는 유교와 초월적 무관심을 군장하려는 불교를
동시에 배척
미얄과장 - 남성의 횡포를 드러내고 여성의 운명을 애통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
이러한 재론을 통해 기존의 논의를 더욱 보강해 나갔다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양주별산대의 각 과장의 주제가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었다. 샌님과장
의 포도부장 놀이는 양반의 패배가 더 심각해 진 것을 보여줌으로서 양반 풍자라는
가면극의 주제가 생생한 의의를 가지도록 발전된 극적갈등을 구조화 한 것이며, 상
좌, 옴, 목중, 연잎과장은 중이면서 중이 아니고 이익이나 다투는 인물의 내적 갈등
과 외적 갈등을 통해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살아가며 생기
는 갈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며, 신할애비 과장은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
지오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생활을 구가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못 한 고민을 암시하고 있으며,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예찬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가면극의 주제가에 대한 연구를 더욱 다변화시킨 셈
이 되었다.
70년대후반에 들어와서 蔡熙完은 가면극의 본질이 사건규명극이라기 보다는 사건
향유극에 가깝고, 현실인식극이라기 보다는 현실해소극에 가깝다고 보고, 가면극에
서 인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연희자에게나 관중에게나 동일한 모습이며 그 것
에 대한 공동의 동질적인 문제의식을 연희의 현장참여자가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
에 가면극의 몇 개의 주제는 현실에 대한 민중의 비판정신이라는 통일된 일관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현실비판이라는 그 각각의 상이한 주제로 내재적으로 분화되
는 방향을 취한다고 함으로서, 가면극이 몇 개의 드라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 테
두리 속에 들어 있다는 기존의 논의를 보다 전진시키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
다. 같은 시기에 金芳玉은 가면극의 주제표출방식에 대해 2인 사이의 대결을 통해
주제가 강력하고 단순하게 표현되어있고,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룬 이야기들이 연결
된 형태로 이루어져서, 현실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이 반영되고, 후대로 내려올수
록 더욱 진행한다고 하였다. 이 밖에 宋東準은 브레히트가 수립한 서사극과 가면극
을 비교하면서 가면극의 주제의 바탕으로 불교사회와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에 드러
나는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지적하였으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논
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金烈圭는 가면극이 사회적 질서를 갱신하기 위한 효
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파악하였는데, 이는 가면극의 주제가 대립하는
사회적 세력의 충돌을 문제삼는데 있지 않고, 사회적 대립의 화해와 그 치유를 내세
우는 데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1980년대 이후 가면극 연구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구의 폭은 매우 넓어졌으나 가면극 주제의 관심은 이에 비
례하여 깊어지지는 않았다.
徐淵昊는 하회별신굿의 연극적 구조를 통해 삶의 전체성과 순환의 질서가 나타나
고 민중의식 성장을 드러내는 구체적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鄭尙卦는 경남지방
의 탈놀음인 오광대와 들놀음을 서로 비교하여 그 분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작업
을 통해 할미 ,영감 놀이의 이면에는 서민 생활 에 대한 현실인식과 더불어 자기 반
성을 희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논의들은 이전의 주제에 비해 크
게 진전된 바는 없으나, 연구 대상을 달리 하여 논의를 다양화 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는다.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으로는 玄永學의 논의이다. 신학자로서 가면극의 내용에
서 종교, 사회, 문화적 의미를 이끌어내려고 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논의에 부분적
인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장과장을 파계승에 대한 풍자로 보는 것은 지
나치게 도덕적인 것이며, 노장이 소무 때문에 자아를 발견한다는 견해는 현대적이
고,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이 과장의 주제는 땀 흘리
고 살아가는 민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고등종교에 대한 민중의 비판이고, 풍자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양반과장에서는 체제를 업고 사는 양반에 대한 비판이고, 미얄
과장은 철저하게 비극으로 된 민중이 자신을 퉁해 웃을 수 있는 능력과 깊이를 보여
준다고 하였다. 결국 그 역시 가면극의 주체인 민중과 대립되는 사회세력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조동일의 주제 해석에 비해 크게 다르거나 발전된
부분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가면극을 통해 민중은 비판적 초월을 얻게 된다"는 해석이 이채롭게 보인
다. 이는 채희완이 설명하고자 했던 "집단적 신명"이라는 개념과도 친근하다고 여겨
진다.
가면극에서 관중은 민중적 전형성을 보여주는 말뚝이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 이 들
의 행위를 통해 신명을 공급받아 내재된 신명을 도출시켜 집단적인 힘을 얻어내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즉 가면극의 주제는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체험되어지
는 세계라는 것이다.
◎ 가면극 주제의 논의
지근까지의 논의를 점검해 볼 때, 이러한 여러 논의들이 서로 대립되는 쟁점을 부
각시켰다기 보다는 해석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달리 보자면 가면극의 주제는 사실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기에 달리 해석
될 소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가면극 연구의 초기에는
가면극의 제재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단편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므로 연구가
단순하고 소박한 단계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면극의 주제는 일정한 제
재의 단위가 발생시키고 있는 의미를 추상화시키는 과정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
다. 지나치게 추상화 시키면 가면극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손상시킬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가면극의 각 과장은 별 개의 주제를 가진 독립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것
은 단선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 과장이 다른 계통을 통해 전해지다가 조
선 후기에 이르러 통합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며, 과장 내에서 새로운 인물이 창조되
어 마당을 확충시키고 내용을 첨가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
자면 각 과장의 주제는 작품에 따라 좀 더 세밀하게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가면극 각 작품의 주제 제시에만 너무 관심을 쏟다 보면 가면극의 주제 연구는 각
과장의 개별적 차이에만 묶이게 된다. 넓게 보면 가면극의 주제가 과장 별로 넓게
나타나면서도 그 핵심적인 주제는 기존의 질서와 이념에 대한 비판에 그 초점이 모
아질 수 있다. 여기에는 가면극에 참여한 민중이 당대의 현실에서 제기했던 문제의
식이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한국 문학사의 쟁점中 - 가면극의 주제 (서종문) 내용 정리
◎ 덧붙임
사실 가면극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논의를 계속 던져왔다. 가면극이라 불러야
한다. 탈춤이라고 불러야 한다. 각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살려주어야 한다.
사실 연극이라는 부분이 가지고 있는 종합적 성격은 인정을 하지만, 탈이라는 용어
대신에 가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되겠는가라는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이다. 가면극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가면을 쓰고 하는 연극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가
능성이 많다는 생각이다. 탈춤이라는 이름 역시 특정한 지역색을 지니고 있고, 용
어 자체에 대한 한계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탈놀이라는 명칭이
가장 정확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가면극을 총칭 할 수 있는 명
사가 필요하다면 가면극 보다는 탈놀이가 더 적당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사실 탈놀이의 주제라는 부분은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듯이 당 대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현실적인 문제의식들이 공연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라는 것은 당연
한 것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올 수 있는 논쟁은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논의가 되는 부분은 서종문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탈놀이라는 것이 문제의식
을 드러내 놓기만 하느냐 아니면 그 것을 해소할 수 있게 했느냐 라는 부분이 내게
는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당시 민중들의 놀이 속에서 양반이 희화되고 종교인이
웃음꺼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전통적인 신분제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것
일 것이다. 탈놀이 자체가 민중의식을 상승시킨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민중들의 의
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탈놀이의 형식에 점차적으로 비판적인 내용이 강해진 것일
거라고 보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양반들은 이런 탈놀이의 형식
을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용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것 자체
가 어느 정도 민중들의 불만의 해소구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
다. 하나, 어느 정도의 해소 역할을 하였다고 해서 그 것이 과연 민중적 의식 향상
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사실 문학이나 예술작품이 사람이나
사회의 관념들을 깨는 것이 아니라 그 것들이 깨질 만 하니까 그런 작품들이 나오
고 연희 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동일의 탈춤의 역사와 원리이후
더 이상 책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더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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