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수잔 보일의 동영상이다. 뭐라더라?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를테면 오디션과 같은 성격의 프로그램에 나와서 외모와는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 탁월한 가창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란다. 자세한 건 모르겠고, 아무튼 굉장히 노래를 잘하더라는 것과 까다롭기 이름 높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합격판정을 받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웬걸? 한참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 2의 폴포츠라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요상한 리플들이 아래에 달리기 시작했다.
"폴포츠만 못한데?"
"나는 폴포츠가 더 좋은데."
"폴포츠만 못한 것 같네요. 그래서 별로..."
"폴포츠와 비교해서는..."
아래는 '제 2의 폴포츠 수잔 보일'이라 할 때의 그 폴포츠의 동영상이다.
벌써 2007년이고, 그 사이 앨범만도 두 장을 내고, 첫번째 앨범은 거의 400만장을 팔아치웠다고 하는데...
확실히 노래를 잘 하기는 잘 한다. 동영상의 싱크가 약간 어긋난 탓에 보고 있자면 마치 립싱크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겉모습만 보아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아름다운 목소리고, 풍부한 성량과 깊이 있는 비브라토는 가슴을 저미는 어떤 감동이 있다. 물론 클래식에 문외한이니 얼마나 정확한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거나 폴 포츠 또한 노래를 무척 - 아니 폴 포츠기 먼저이니 수잔 보일 또한이라 해야 하려나? - 아름답고 훌륭하다. 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것이 그럴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화제성에 힘입은 것도 있었지만, 당시 동영상을 보며 느낀 감동은 분명 진짜였었으니까.
문제는 과연 그런다고 폴 포츠가 노래를 잘했다는 것과 수잔 보일이 노래를 잘 한다는 것과 무슨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잔 보일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면 폴 포츠가 노래를 못 하는 게 되는 것인가? 폴 포츠가 노래를 잘하니까 수잔보일은 노래를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이승철이 노래 잘 한다고 신승훈이 노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김도균이 기타 잘 친다고 반드시 김세황이 그보다 잘 쳐야 기타를 잘 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이래서 대한민국인 것이다. 뭐든 비교하고 등수를 매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으니. 잘 한다는 것은 그냥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 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못하다는 것은 그냥 못하다는 것이다. 잘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잘해서이고,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못해서다.
하긴 자라기를 그렇게 자라왔다. 항상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항상 누군가와 비교되어지면서,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남들보다 잘하면, 남들보다 못하면, 그렇게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써 자신을 정의해야 했었다. 그러니 누군가를 판단함에 있어 그 자체만으로 판단하기란 꽤 괴로울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럴 정도면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할 이유가 없지. 그럴 거면 그냥 가장 잘하는 한두사람만 남겨두고 그들더러만 대한민국 하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 존재 자체가.
하여튼 그래서 항상 하는 말이 세계에서 몇 번 째... 세계에서 몇 등... 세계최초, 세계최고... 디워에 열광할 때도 그랬었지? 황우석에 낚일 때도 그랬었다. WBC에서도, 월드컵에서도, 김연아에 대해서도... 2006년 월드컵에서는 뭐라도 대단히 할 것처럼 온통 분위기 잡더니만 16강에도 올라가지 못하니 한 순간에 식어 버리는 썰렁함이란...
그래서 나온 말이 또 축구장 물채워서 박태환 훈련장 만들자느니, 물 채운 거 얼려서 김연아 훈련장 만들자느니 하는 것이다. 세계 1등이 아닌 종목은 의미가 없는 것이거든. 오로지 축구만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축구선수와 팬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팬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 자신의 시합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와 축구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은메달이라도 딴 핸드볼은 비인기종목임에도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 물론 세계에서 몇 등 하는 것과 관계없는 국내대회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지만.
참으로 천박한 인종들이라... 그나마 수잔 보일의 경우는 영국에서 한 방송이고, 영국인이기에 그런 것이 덜한 모양이지만, 하는 짓거리라는 게 늘 그렇다.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 세계 몇 위의 군사강국, 세계 몇 위의 뭐뭐뭐... 그래서 세계 몇 위 몇 만 달러의 국민소득이 국가적인 목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고. 노래를 부르는데도 순위를 정하고 그 순위로써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수준들이니.
확실히 인터넷 댓글들을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보인다.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다테마에와는 다른 숨겨진 혼네인 경우가 많은 터라. 우리말로는 겉치레와 속내가 되겠지만, 아무래도 뉘앙스가 일본어 쪽이 더 가까워서. 그렇게 혼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으니 결국에 죄다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그 한심함이.
하여튼 얼마 안 되는 리플 - 그 커뮤니티에서는 다수였지만 - 때문에 이렇게 허무해 보기도 처음이다. 이리 절실하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고. 오로지 순위로써만, 경쟁으로써만, 주위를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하는 천박한 지성들이라니. 그러고서도 여전히 더 경쟁하고 순위를 매기자지? 역시나 대한민국이라. 그냥 웃음만 난다. 웃음만.
그나저나 확실히 하늘이 내린 재능이란 있는 모양이다. 제아무리 진흙속에 묻혀 굴러다녀도 끝내는 드러나 보일 수밖에 없는 그런 재능. 물론 외모나 나이 같은 것을 따지지 않는 - 오로지 그 재능만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과연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음반 전에 성형수술 견적부터 내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 방청객의 매너가 참 한 눈에 들어온다. 비웃을 때는 아낌없이 비웃되 한 번 인정하고 나면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를 보내주는 모습이라니. 심지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마저 보이고. 역시 우리에게 부족한 모습이라 하겠다. 감동이 없달까? 하긴 그러니까 저런 어처구니 없는 리플도 달린 거겠지만. 하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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