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 오락♧/뉴스.이것저것

캐나다에서 보낸 김연아의 편지

花受紛-동아줄 2009. 2. 16. 00:26

캐나다에서 보낸 김연아의 편지

안녕하세요, 김연아입니다. 
저는 지금 전지훈련지인 캐나다 토론토에 와 있어요. 
한국에서의 첫 국제대회(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를
마친 지 벌써 보름이 넘었네요. 
2위를 하고 난 뒤에 '수고했다', '아쉽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왜 아무도 축하한다는 말은 안 하지? 
2등은 축하받으면 안 돼?"라고 하자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네가 어떤 기분일지 모르니까 조심스러워서들 그러는 거지"
라고 하셨어요.
사실 지난 여름 베이징올림픽을 보면서 부담이 많이 됐어요. 
금메달 딴 선수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뉴스엔 1등만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들이 
연속해서 스쳐가더라고요. 
이번 파이널을 준비하면서 
'괜찮아. 여느 대회랑 똑같은 거야'라고 수없이 되뇌었는데, 
생각보다 더 긴장했나 봐요. 
하지만 막상 코치와 함께 점수를 기다리는 자리를 
빠져나오는 순간에는 실망이나 후회 같은 온갖 감정에 앞서 
'또 하나 끝냈구나' 하는 생각뿐이더군요. 
브라이언 오서 코치님은 아쉽지만 좋은 수업이 되었을 거라고 
하셨어요.
저는 스케이팅을 사랑하지만 
그 시간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연습할 때는 힘들고 짜증나고 눈물 나는 시간이 더 많고, 
대회 때는 소름 끼치는 듯한 긴장감에 빠져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연습 중에 깔끔하게 점프를 성공시키는 순간, 
마음먹었던 대로 얼음 위를 활주하는 순간,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자세가 나왔다고 믿는 순간에는 
비록 짧지만 훈련의 피로를 모두 날리고도 남을 만한 
쾌감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와요. 
연기가 끝나고 '그래,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죠. 
그래서 솔직히 제가 1등을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면 
저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에도 2등이었잖아요. 
1등을 위해서 스케이팅을 했다면 훨씬 전에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다른 선수들처럼 저도 큰 부상이 있었고, 
예전엔 부츠 문제로 선수 생활을 포기할 뻔한 일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꼭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연기를 할 때 떠오르는 그 즐거움, 
발끝의 느낌을 잊지 못해서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멀리 캐나다에서 훈련하다 보니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고 
그래서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힘든 분들이 더 많아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속에서 저와 제가 하는 피겨스케이팅에서 
많은 분들이 힘을 얻으신다니 더 보람이 느껴져요. 
저도 요즘 TV나 인터넷으로 
'김연아가 어려운 여건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뉴스나 캠페인 광고를 봤어요. 
그걸 보면서 정말 경제가 어려워졌구나, 
힘드신 분들이 많구나 하는 걸 깊이 느끼고 있어요. 
우리 운동선수들이 경험하는 어려움과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얼음판 위에 넘어져 눈물 흘렸던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예전의 제 마음처럼, 
힘들어 하시는 분들의 어려움도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가 발끝의 희열을 맛봤던 것처럼 
여러분들께도 힘든 시간 뒤에 맞을 기쁨이 
어서 오기를 기도 드릴게요. 
다음엔 더 아름답고 멋진 연기로 
여러분께 또 힘을 드리고 싶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