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상담실에 들려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이야기의 화제가 자녀들에 관한 문제로 넘어가게 되곤 한다. 이제 중학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들이라고 하나 밖에 없는데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처럼 명랑해지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우리 아이가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다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기란 아동기와 성인기를 잇는 과도기적 단계이다. 더 이상 아동기의 아동으로 머물 수 없고 그렇다고 어른으로 완전히 성장해 버린 것도 아니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에서 미성숙하면서도 불안정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신체적으로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지고 충동적이어서 감정적으로 통제가 잘 안되고 흥분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인지구조의 발달로 두 범주 이상의 변수를 실제로 조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고, 관계의 변화와 자신의 행동결과에 대해서도 예측하고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자기모습을 회상하고 부모에 대해서도 잘못된 점을 판단하고 윗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따라서 어렸을 때 부모에게나 웃어른들에게 가졌던 무조건적 존경심이나 의존적인 관계가 깨지고 오히려 비판적인 태도에서 거부감이 일어나 반항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부모나 선생님이나 웃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태도는 아주 못마땅하고 버릇없고 제 멋대로 저항하는 모습이 보기에 역겹기도 하다. 아이는 뭔가에 불만이 가득한데 부모는 이제껏 해오던 대로 하며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왔는데 분명히 아이가 나빠지거나 잘 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의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 보이기 시작했고 나름대로의 잣대로 판단력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른들의 비합리적인 태도나 비난에 대해 저항하고 무조건 어른들의 뜻을 따라 오라고 끌고 가려는 지시적인 생활방식에 이미 자녀들은 염증이 나 있는 상태이다. 부모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비판하고 자기들은 그와 같은 삶을 결코 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에서 선생님이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아이들을 야단치는 날에는 아이들끼리 선생님에 대한 성토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비판을 통해서 자기들이 어른들에 비하여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며 미래사회의 주역으로서 자기네들의 언어와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고 볼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의 반항에도 의미가 있고 미래의 삶의 지표를 찾고 꿈을 키워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어른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약점을 있는 대로 잡힌 채 아이들의 비판의 대상이 된 상태에서 어떻게 권위를 인정받고 어른의 행세가 먹히겠는가?
완전한 인간은 세상에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누구나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볼 때, 우리는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통하여 겸손을 배우게 된다.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으로 승화시켜가는 지혜도 배우게 된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 받으며,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대화가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로, 사회적 관계로 묶여있는 ‘존재’ 자체를 기뻐함으로써 무리 없는 대화를 통해 사랑의 대상으로 마음의 자리를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서울남부신문 2006년 6월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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