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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연예인:강준섭명인 모셔온글

花受紛-동아줄 2008. 12.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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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랑(流浪) 광대 ;  지난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닌, 줄타기나 판소리·가면극 따위를 하던 사람을 이르던 말. 한자를 빌려 ‘廣大’로 적기도 함. 배우(俳優). 배창(俳倡). 창우(倡優).

오늘날의 인기가수, 탈렌트, 영화배우 등의 조상격은 누구일까.
전통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연예인이 존재했다. 인형극, 줄타기, 판소리, 재담 등을 하는 전통시대 연예인들을 광대라 불렀다. 광대들은 8천에 속하는 천민집단으로써 불우한 처지에 있었다.
사농공상이라고 하여 글읽는 양반을 가장 높게 치고 그 다음에 농민을 쳤다. 장사하는 이들은 장사치라고 깔보고, 연예인들은 사농공상에도 못들어갔다. ‘천하의 쌍놈’으로써 비참한 삶을 살아나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민속예술의 꽃은 바로 이들 ‘상놈’들로부터 나왔다.
광대놀이에는 바로 천민집단에 속한 예인들의 예술적세계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조선후기 송만재가 지은 관우희란 글에는 광대들이 하던 공연종목이 잘 나타난다.

① 가곡ㆍ음률ㆍ곡
② 판소리
③ 줄타기
④ 땅재주
⑤ 무용 및 가면극
⑥ 관원놀이
⑦ 광대소학지희
⑧ 무가
⑨ 꼭두각시놀음

광대에는 대령광대와 뜬광대가 있었다. 대령광대는 관아에 소속되어 언제든지 불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광대를 뜻한다. 뜬광대는 일정한 소속이 없이 떠돌이생활을 하는 광대를 말한다.
광대들은 조선후기에 장터를 떠돌면서 예능을 팔았던 유랑예인집단으로 다수 흘러들어갔다. 풍물,접시돌리기,줄타기,꼭두각시인형극,가면극 따위가 유랑예인 광대의 주요 공연종목이 되었다. 민속예술이 이들 천민들의 삶에서 시작된 것이다.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유행하면서 대다수 광대들은 소리광대를 뜻하게 되었다. 판소리 12마당은 광대놀이의 으뜸을 차지하게되었다. 지금부터 조선시대에 그토록 유명하던 유랑예인집단을 찾아가본다.

조선후기에 장터와 마을을 떠돌면서 춤과 노래? 곡예를 생활수단으로 살아가던 무리들이있었다.이름하여유랑예인집단.남사당패,사당패,솟대쟁이패,초라니패,걸립패,중매구패,광대패,굿중패,각설이패,애기장사 따위로 불린 이들 집단은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하던 당대 "대중스타"이자 오늘날 대중연예인의 선조격.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연을 했을까.


* 사당패
사당벅구춤, 소리판(주로 산타령 등 민요창), 줄타기(재담줄). 1930년대 이후 남사당패와 합류하여 소멸되고 연희의 일부가 오늘날 남사당패놀이에 합류됨.


* 솟대쟁이패
장대를 세우고 연희. 곡예를 주로 하는 한국 써커스의 원류. 풍물(무동 등의 곡예), 땅재주(공중회전), 얼른(요술), 줄타기(곡예위주), 병신굿(2인 무언극으로 지주와 머슴이 엮는 극) ,솟대타기(물구나무서기,두손걷기,한손걷기,고물묻히기 등). 1930년대 이후 남사당과 합류하면서 소멸


* 대광대패
경남 합천 덕곡면 밤마리가 원조라고 함(?).장터를 다니며 풍물, 솟대타기, 죽방울치기, 얼른 을 놀음. 오광대놀이와 연관


* 초란이패
초란이란 ’요사스런 탈”이란 뜻. 풍물(매구밟기), 얼른, 죽방울받기, 초란이 굿(가면극). 초란이패는 주로 官奴나 군인 출신들이 주도함.


* 걸립패
사찰의 신표를 가지고 다니며 걸립. 풍물, 줄타기, 비나리(고사문서)를 하게 됨.


* 중매구패
실제의 중들이 주도하는 걸립패로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 풍물, 불경(천수경 등), 중매구(탈꾼을 고용)


* 광대패
뜬광대(유랑)와 대령광대(정착)로 나뉨. 남여로 구성되며 삼현육각, 판소리 12마당 ,민요창(12잡가, 산타령, 서도소리 등), 무용, 줄타기, 땅재주 등을 놀음.


* 굿중패
남사당과 솟대쟁이패에서 가장 기예가 뛰어났던 자들로 구성. 풍물, 버나(접시), 땅재주, 한량굿(배뱅이굿, 장대장네굿, 병신굿 등) .1920년대 소멸


* 각설이패
거지패거리. 장타령이 특기


* 애기장사
1인의 이야기꾼과 1-3인의 잽이가 집집을 방문하여 옛날 이야기 들려줌. 옥루몽, 춘향전, 홍길동전 등을 읽어주는 1인극


* 남사당패
30-50인 집단의 대표적인 민중예인집단. 남색조직. 가출아나 농촌에서 유리된 아이들을 충당하여 조직을 이끔. 숫동모와 암동모(주로 삐리)로 짝을 이루며, 머슴들이나 한량들에게 암동모를 빌려주고 解衣債 받음. 풍물(진풀이, 무동, 채상 등), 버나돌리기 (버나잽이와 매호씨의 대담), 살판(땅재주;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등), 어름(어름판), 덧뵈기(탈:마당씻이, 옴탈잽이, 샌님잽이, 먹중잽이), 덜미(꼭두각시극)
유랑인들의 레퍼토리는 풍물,법고춤,줄타기,땅재주,얼른요술,죽방울치기, 비나리,삼현육각,판소리,민요창,버나대접돌리기) 따위를 망라했다. 집단마다 특성에 따라 주력으로 삼는 레퍼토리가 달랐다.


물론 조선시대 유랑예인만이 연예인의 조상격은 아니다. 삼국사기〈악지〉에 전하는 오기(금환ㆍ월전ㆍ대면ㆍ속독ㆍ산예의 다섯재주),고구려 수산리벽화에등장하는 재주꾼, 후대로 내려와 고려시기의 괴뢰패(꼭두극),또한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춤꾼, 악공이 모두 원조다.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창우 기생 무당 판소리꾼 심지어 마을의 아마추어적인 탈춤꾼,풍물꾼도 포함된다.


특히 소학지희라는 말을 낳게 한 창우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봇물터지듯 생겨난 유랑예인집단처럼 조직적 결집력과 전문성을 아우르면서 곳곳을 누비며 서민대중을 직접 상대했던 민중적인 연예인들은 드물었다. 자신도 민중이었던 유랑예인들은 유사시에 민란에 동참하는 등 민중적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시대나 예인의 생명력은 무엇일까. 역시 높은 기량이 아닐까.
낯익은 각설이패 장타령조차 고도의 반복훈련에 의한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공연단장 격인 꼭두쇠, 기획의 곰뱅이쇠,전문연희자인 뜬쇠,초입자인 삐리로 이루어진 남사당패 조직 자체가 바로 고난도의 예능훈련을 암시한다.


유랑예인들은 늘 장터와 마을을 옮겨다니며 서민대중들의 애환과 더불어 살았다. 그 자신 천민집단으로서 사회적 멸시를 받으면서도 뛰어난 기량으로 민중들의 찌든 삶을 윤기있게 해주었다.


별다른 구경거리가 없던 전통사회에서 유랑예인의 존재는 그 자체가 "스타"였다. 분칠을 한 여사당을 바라보는 더벅머리 총각의 가슴은 늘 설레게 마련이었고,양반들도 저잣거리의 줄타기를 바라보며 모처럼 신명을 돋우었다.


오늘날 유랑예인집단은 완전히 사라졌다.그러나 한국 대중연예사의 앞 페이지를 장식하면서,그 정신의 일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물놀이패의 뿌리도 조선후기 유랑예인이 아닌가! 그들의 풍물굿가락에는 바로 유랑예인집단의 전문적 굿가락이 생생하게 살아 흐르고 있다.


경기도 안성땅에 있는 작은 암자 청룡사.절에서 받은 신표를 들고다니면서 마을로 걸립을 다녔던 남사당패들이 한겨울을 절에서 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안성장터는 물론이고 전국을 떠돌면서 연희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곳이다.유랑예인집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 예인들이 살던 청룡사에서나마 그들의 발자취를 반추해 볼 수밖에 없다.요즈음 한창 주가를 올리는 연예인들이 반드시 한번쯤은 찾아가야 할 메카로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