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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탈라스전투 - 동서양의 문명대전

花受紛-동아줄 2008. 5. 31. 19:23

탈라스전투 - 동서양의 문명대전

  중국 한족이 세운 나라중 가장 강성했던 나라를 꼽으라면 당나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동쪽으로는 군사강국이었던 고구려를 정복하였고, 남으로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북인도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는 오늘날의 카자흐스탄에 까지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당나라의 영토가 중앙아시아를 넘어 아랍세계에 까지 미치자, 아랍세계도 공동의 위험을 느끼고 당을 견제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750년 경에는 당석국(石國: Tasuhkent 부근) 아랍섹계의 강대국이었던 사라센과 연합을 모색하게 되었고,당국 역시 고구려 출신의 명장 고선지를 재차 파견하여 석국을 토벌하려 하였다.
 물론 이 전쟁에서 고선지 장군은 석국을 격파함은 물론, 석국의 왕을 사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석국을 당나라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우수한 기술자들을 대동한 대규모 이주정책을 단행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포로로 잡힌 석국왕에 대한 당나라의 안일한 처사였다.  포로로 잡힌 왕을 참살하는 경우는 당제국의 역사상 전무한 일이었지만, 문신들의 강압에 못이긴 당현종은 결국 석국왕을 참살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 아랍세계가 사라센을 중심으로 단결하게 되었으며, 범 아랍연합군을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동방을 대표하는 당제국과 아랍을 대표하는 사라센은 탈라스의 대평원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선지 장군이 누구인가? 그는  11년 동안(740~751년) 다섯 차례의 원정을 통해  파미르고원,힌구쿠시산맥, 천산맥 같은 해발 4000m 가 넘는 고원지대를 돌파하고 남러시아의 척박한 땅에서도 당의 영토를 확보한 인물이었다.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7만의 정예병을 정면으로 맞서 이긴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선지 장군의 패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당나라의 원정대는 수천km에 달하는 원정을 해야 했음으로, 후방에서의 보급에 대단히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당나라와 동맹을 가장한 카를루크(葛邏祿, Karluk)가 뒤에서 부터 공격해 오자,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원정군은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한번의 전쟁이 갖는 의미는 세계사를 뒤흔들만큼 큰 것이었다.
우선 현재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스탄등의 중앙 아시아 국가에 이슬람세력이 대거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세력이 우세하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문화혁명으로 부를 만큼의 큰 변화이다.
 또 많은 중국인들이 사라센의 포로로 잡히면서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기술이, 본의아니게 대량으로 유럽으로 수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탈라스 전투 이후 알려지기 시작한 제지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와 바그다드를 거켜 다마스쿠스까지 전파되었다. 또 다시 스페인에 이슬람 세력권의 그라나다 왕국(898~1492)이 성립됨으로써 그곳에도 자연스럽게 제지술이 전파되었다. 때는 1150년경이다. 그 후 제지술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시실리로, 콘스탄티노플을 통하여 유럽으로 들어왔으며, 다시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 필라델피아까지 전파되었다.

  나침반이 서방으로 전파된 것 역시 탈라스 전투에 패배한 고선지 휘하의 당당제국 군사중 한명에 의해서 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남철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한대(漢代)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슬람 인들에 의해서 나침반이 종교의례(성지 메카를 향해 절을 할 때 방향을 잡는 데 활용)와 항해에 이용되었으며, 이것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리고 아랍세계와 중국이 대 접전을 벌인것은 탈라스 전투가 유일무이하다. 물론 전쟁은 대량의 파괴와 살상을 동반하는, 인류가 지양해야할 부정적인 행위중 하나이다. 그러나 고대에서 전쟁은 이러한 부정적 의미외에, 서로 다른 문명이 대규모로 접하면서 새로운 문화창출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면이 있다. 일찌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이 헬레니즘 문명을 창조하였다면, 고선지 장군의 서방원정은 제지술이나 나침판의 전래를 통하여 서방의 중세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탈라스 전쟁은 당나라의 팽창정책이 탈라스에서 저지당하고 이슬람 세력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였다는 전쟁사적 의의는 물론,  제지술을 매개체로 한 동양 문명의 서방 전래라는 문화사적 의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