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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더욱 투명하게 잘 알려진 비밀 (가족관계 증명)-펌

花受紛-동아줄 2008. 5. 2. 10:51
숨기고픈 과거까지…'황당한 가족등록부'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4.15 13:13 | 최종수정 2008.04.15 15:03



개인 정보 유출 많아 논란

경기도 과천에 거주하는 한연희(여·50)씨는 1990년부터 2006년까지 네 아이를 입양했다. 희곤이(24·90년 입양), 하선이(11·98년), 하나(8·2000년), 하리(가명·6·2006년)가 그들이다. 하리를 제외하는 세 명은 모두 보육원에서 데려왔다. 하리는 친부모가 있는 상태. 장애(지적장애 3급)가 있어 친부모의 동의를 받고 입양기관을 통해 데려왔다.

한씨는 지난 2월 아이들과 중국을 가기로 했다. 오랜 기간 아이들과 같이 있었지만 변변찮은 여행 한 번 다녀온 적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아이들 여권을 만드는 도중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본 한씨는 깜짝 놀랐다. 하선이의 가족관계증명서엔 자신과 남편 유연길(51)씨가 양부(養父), 양모(養母)로 구분돼 있었다. 위의 '부', '모'란은 텅 비어있었다. 기본증명서는 더 당혹스러웠다. 하선이의 기본증명서에 '기아(棄兒 ·버려진 아이) 발견'이라고 적혀 있었다.

친부모가 있는 하리의 가족관계증명서는 당시 과천시청에서 서류를 떼 주던 직원도 당혹스러워하며 옆 직원에게 "이게 이렇게 나오는 게 맞아?"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자신들이 양부모로 기재돼 있을 뿐 아니라 친부모의 이름과 출생연월일, 주민등록번호, 본(本) 등이 적혀 있었다.

한씨는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주소를 다 알 수 있는 시대에서 이렇게 친부모를 기재하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 친부모를 부적절하게 찾아갈 수 있다"며 "우리도 안전하지 않고, 친부모들도, 입양된 아이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호적법 대체해 만들어진 가족관계등록법
한씨가 여권을 만들기 위해 떼야 했던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는 올해 1월 가족관계등록법이 새로 시행되면서 생겨난 서류들이다. 가족관계등록법 이전에 시행됐던 법은 호적법. 그러나 2005년 헌법재판소 가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 기반을 둔 호주제는 양성 평등에 위배된다"며 호적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을 편성하는 대신 국민 개인별로 가족관계등록부를 편성한다는 원칙 하에 새로 제정된 법이 가족관계등록법이다.

가족관계등록법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자녀의 성과 본을 어머니의 성과 본에 따를 수 있게 됐다. 호주제가 갖고 있던 부성주의(父姓主義) 원칙을 수정한 것이다. 둘째, 아버지 또는 어머니 한쪽이 원하면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다. 셋째, 과거에는 없던 친양자 제도가 새로 제정됐다. 친양자로 아이가 입양되면 그 즉시 성과 본의 변경이 가능하며 친생부모와의 법적인 관계가 모두 소멸된다. 모두 과거 호적법에선 불가능했던 일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호적등·초본으로 일괄처리되던 서류가 용도에 따라 다섯 가지 증명서로 나뉘어 발급하게 된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입양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가 그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호적등본은 발급 받는 본인의 인적사항 뿐 아니라 호주를 중심으로 한 동일 호적 내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인적사항이 나타나 불필요한 개인 정보의 노출이 문제"됐으나 "현행 가족관계등록부는 증명목적에 따라 5가지의 증명서를 마련, 본인뿐 아니라 본인 외의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한다. 더욱이 "과거 호적법이 호적등·초본의 발급청구권자 및 발급사유를 거의 제한하지 안 했던 반면, 가족관계등록법은 발급권자를 본인·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 및 그 대리인으로 한정함으로써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한다"는 것이 대법원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증명서를 직접 발급 받는 사람들은 새로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법과 관련한 서류들이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노출시키고 있다는 불만을 속속 제기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가족관계등록부"
지난 3월 7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게시판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가족관계등록부'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스스로를 '전처가 낳은 아이를 가진 남자와 3년 전에 결혼, 아이와 함께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소개한 네티즌 'baum'(아이디)씨는 최근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다 황당한 사례를 겪었다고 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자신의 아이가 기재돼 있지 않았던 것.

'baum'씨는 "반면 아이의 증명서엔 내가 없고 대신 아이의 생모가 있었다"며 "이게 진정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가족관계증명서'가 맞느냐"고 반문했다. 아이를 양자로 입양할 것을 고려 중이라는 그는 "일반 입양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뿐 아니라 기본증명서에도 내가 '양모'로 표시돼 입양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며 "학교와 취업시 이런 서류들을 요구할 경우 아이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그리고 그만큼 내 고통도 클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혼 전에 낳은 아이가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오기도 한다. 지난 2월 11일 '여성의 전화' 사무실에 전화를 한 여성은 스스로를 결혼 전 낳은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아버지에게 넘기고 새로운 사람과 결혼한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낳은 그는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결혼 전에 낳은 아이가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왔던 것. 그는 "회사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현재 발급되는 5가지 증명서 중 특히 '개인 정보 노출' 논란이 가장 많은 것이 '가족관계 증명서'다. 가족관계증명서엔 재혼했을 경우 전 배우자와 같이 낳은 자녀가 빠짐없이 기재된다. 혼인관계 증명서 역시 과거 결혼, 이혼, 재혼 기록이 모두 남는다.

입양된 아이의 경우 새로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법의 폐해는 더 크다. 지난 14일 여성부는 친양자로 입양되기 전까지 기본증명서에 '기아발견'이라고 명시되는 부분을 '법 제52조에 의한 작성'으로 변경한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그러나 입양된 아이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친부, 친모의 이름뿐 아니라 이들의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뜨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입양된 아이가 친부모의 신분을 알고 이들을 찾아 원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순걸 한국입양홍보회 회장은 "입양된 사실에 대한 기록들을 기본 증명서에서 입양 관련 증명서로 옮겨야만 아동의 인권 측면에 있어서 보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친양자 제도를 이용할 경우 해소될 수 있다. 친양자 제도는 입양한 자녀를 법률상 완전한 친생자로 인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마저 쉽지 않다. 아이가 15세 미만일 경우에만 가능하며 이미 합법적으로 입양한 이들 역시 다시 아이의 친부모를 찾아 친부모의 입양 동의의사를 받아 재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15세가 넘거나 친부모를 찾지 못하면 아예 친양자 등록을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한씨의 경우 이미 20살이 넘은 희곤이의 '양엄마'로 평생 살아야 한다.

'여성의 전화' 게시판에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하는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네티즌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너무 많다"며 "(기록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담당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기록들은 나오지 않게 고쳐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회사에서 모든 서류 요구해도 제재할 방법 없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현 가족관계등록법의 취지는 좋지만 불필요한 서류까지 회사나 정부 측에서 요구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예컨대 기본증명서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인데, 다른 서류까지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는 민원 사무에서 민원인이 제출해야 하는 증명서에 대한 요구 실태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예로 든 사례가 민원인의 배우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때다. 현재 공공기관은 민원인의 배우자 유무 확인시 이혼 또는 재혼 사실이 기록된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토록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가족정책과 오두석 사무관은 "혼인했는지 안 했는지 현재 상황만 알면 되는데 혼인관계증명서엔 과거 결혼 경력이 다 나와 문제가 되고 있다"며 "혼인관계증명서 대신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관계증명서 역시 전 배우자와 같이 낳은 아이가 기재되는 등 혼인 여부 이외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거 호적법처럼 '전적(과거 기록) 기재 여부'를 청구인이 정해 현재 혼인 기록만 나오게 할 수는 없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대법원 행정처 가족관계등록과 김영상 과장은 "현재 전산화 시스템은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기록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과거 호적법처럼 전적 기록 여부를 분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한다. 그 건수가 1600만 건에 이른다"고 했다.

이처럼 각 증명서마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보건복지가족부가 실태조사를 벌여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내부 관계자 역시 "우리도 내부적으로 (실태조사에 대해)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며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민간 기관에서 직원에게 모든 증명서를 요구할 때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오 사무관은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하는데 직원보고 '5가지 증명서를 다 떼와라'라고 말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증명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15세 이하의 아이'만 친양자로 입양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정부 측의 입장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김 과장은 "도입 취지가 양자를 친자처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릴 때 키워야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다"며 "애초 정부안은 7세였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오 사무관은 "15세 이상의 아이를 친양자로 입양하면 상속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렇게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네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한연희씨는 "15세 이상의 아이도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고, 상속 때문에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법적 제한 나이를 더 늘리는 게 합당하다"며 "정부 측의 설명은 말이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들에도 불구, 당분간 가족관계등록법이 바뀌는 것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김 과장은 "이미 한 번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기 때문에 현재 고치기는 힘들다"며 "일단은 이 제도 그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네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한연희씨가 가족관계등록부 서류를 설명하고 있다. 한씨는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주소를 다 알 수 있는 시대에서 이렇게 친부모를 기재하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 친부모를 부적절하게 찾아갈 수 있다"며 "우리도 안전하지 않고, 친부모들도, 입양된 아이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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