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아르헨티나 빈민촌에서 발생]
재즈의 근원과 발생 시기, 경위 등이 정확하지 않은 것처럼 아르헨티나의 탱고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사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빈민굴에서 발생한 음악으로 이들 대부분이
문맹자이기 때문에 문헌이나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는 편이며 몇 가지 추측이나 억설에
의한 설명이 유포되었다.
현재에는 이 음악이 에스파냐 내지는 유럽 계통의 무곡과 아프리카계 흑인의 민속 음악이 혼합된
것이라는 설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그 설에 따르면 탱고의 모체 혹은 그 원형은 하바네라(아바네라), 밀롱가, 칸돔베라고 한다.
하바네라(Habanera)는 19세기 초반에 쿠바에서 일어난 무곡으로,
그 기원은 영국의 컨트리 댄스가 에스파냐에 전해져 단자(Danza)가 되고, 다시 쿠바에 전해져서
아프리카계 리듬의 영향이 덧붙여져 단자 아바네라(Danza Habanera)가 되었다.
이것이 유럽에 역수입되었고 선원들에 의해서 아르헨티나에 다시 전해져 밀롱가(Milonga)라는
형식으로 바뀐 뒤 탱고로 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19세기 초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흑인들의 원시 종교와 관련된 탕가노(Tangano)라는
무곡이 있었는데 이것이 라플라타 지역에서 하바네라를 비롯해서 유럽 계통의 폴카, 볼레로, 마주르카
등의 영향을 받아 칸톰베라는 무곡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향토의 음악 정신과 뒷골목의 퇴폐적인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탱고를 싸구려
술집에 기거하는 선원들과 하역 인부, 부랑자, 여인들이 길러냈다는 점이다.
초창기의 탱고는 플루트와 클라리넷, 기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었지만 현재에는 반도네온과
피아노도 빼놓을 수 없는 악기이다.
탱고가 아르헨티나에서 바다를 건너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1906년경이었다.
애초 목적지가 일본이었던 해군 연습선 살루미엔트호에 실렸던 '엘초클로'와 '라 모르차(La Morcha)'의
악보가 프랑스와 독일의 항구에 내려진 것이 탱고 전파의 시초였다.
그 다음 해에 앙헬비조르도와 알프레드 E. 고비가 프랑스로 갔고, 더욱이 1919년에는 미누엘 피사로가
오르케스타(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건너갔다.
이리하여 탱고는 드디어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 <돈 주앙>, <라 빌타> 등이 이 시대에 속속
등장한 고전 탱고들이다.
탱고계의 역사와 전설의 주인공 카를로스 가르텔은 1917년 를 처음 녹음했으며, 도 같은 해에 미노트
디치고와 알베르토 아론스에 의해 녹음되기도 했다.
[최고의 대중 음악으로 급성장]
1920년대 중반부터 10년간은 탱고의 '제1차 황금시대'로 불린다.
프란시스코 카나로, 오스발도 프레세도, 프란시스코 로무토, 후안 마그리오파초, 훌리오 테 카로 등이
탱고 뮤지션으로 활약했다.
당시 대다수의 오르케스타는 반도네온 2, 바이올린 2, 피아노 1, 베이스 1의 6명 편성이 표준적인
스타일이었다. 처음엔 작은 카페나 무성 영화의 반주에 그쳤던 것이 라디오 방송이나 카니발의 무도회에
도 등장하게 되었다.
가르델, 에두아르도 비앙코, 바치차 등도 유럽 탱고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탱고의 왕 프라시스코 카나로가 악단원들과 함께 파리에 등장한 것은 1925년으로 가우초(목동)
모습의 무대는 단연 압권이었다.
1926년에는 레코드 녹음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탱고의 섬세한 표정도 표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연주가들의 기술도 향상되었다. 에드가르도 도나토의 <불꽃>, 카나로의 <가우초의 탄식>,
<최후의 타잔>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20년간은 탱고계에 커다란 시련이 있었다. 토키가 개발되어 무성 영화의
반주를 맡고 있던 많은 탱고 악단은 설 자리를 잃었으며, 재즈의 융성기를 맞아 대중 음악의 왕좌 위치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더욱이 유럽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던 카를로스 가르델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탱고의
붐이 더욱 위축되었다.
가르델의 죽음을 전후하여 하강 곡선을 긋고 있던 탱고의 인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새로운
리듬의 등장이었다.
환 다리엔소의 확약으로 리듬, 오르케스타의 악기 편성, 연주 스타일 등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나로, 피르포, 무드, 프레세도 악단은 드럼 외에 클라리넷, 트럼펫 등의 관악기를 도입시켰고,
근대 탱고의 시조로 불렸던 데카로는 대편성의 오르케스타를 시도했따.
또한 카나로나 피르포는 본래의 탱고의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춤추기 쉽고 명쾌한 스타일의 4중주나
5중주를 조직했다.
특히 카나로는 뮤지컬이나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리듬 창조에 몰두했다.
아니발 트로이로, 오스발도 푸글리에세, 미구엘 칸토 등의 후속 세대는 1930년대 중반부터
40년대에 걸쳐 데뷔했고 이들을 추종하는 젊은 연주가들이 독립하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오늘날 탱고의 기초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