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궁(迷宮)- 황병기(가야금.장구)/홍신자(보이스) >
1975년 초연되어 전례없는 파문을 일으킨 후 아직도 국내 음악사상 최대 문제작으로 평가되는 곡이다. 가야금을 선율악기 이전에 무한한 소리요소가 담긴 사운드 박스로 접근하여 이를 언어와 음악적 요소를 극소화시킨 인간 육성과 결합시켜 고도의 음악적 완성도를 거두어 낸 황병기의 영원한 화제작이다.
찰현악기의 활 , 장구채 , 거문고 술대 등을 이용한 가야금의 파격적인 조음(造音)과 이에 호응하는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인성(人聲)이 신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20분에 육박하는 전곡을 극적인 분위기로 끊임없이 채색하여 나간다. 이 작품은 작곡자의 음악적 정신의 깊이와 탁월한 표현력이 일구어 낸 창의적 조형미와 구조적 미학의 쾌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발표된 지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참신한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이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창작음악의 영원한 고전으로 이미 자리매김을 굳건히 한 작품이다.
목소리의 주인공 홍신자씨
강하고 강해서 부러질 것 같은 여자.
하지만 그 얼굴은 몸짓 하나로 유유히 살아가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 준다.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이다.
※‘웃는돌’ 무용단 이사장 홍신자 씨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가로 ‘구도의 춤꾼’으로 알려져 있다.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우연히 춤의 세계를 접하고 27세의 늦깎이로 무용을
시작한 그는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서양 전위무용을
펼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야말로 홀린 듯 무용학원을 찾았을 때는
내 나이가 벌써 무용을 하기에는 할머니 나이였다.
아마 호텔경영학을 하기에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가 젊은 나이였을지 모른다.
무용을 하기에 가능한지 어떤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았다.
난 그저 나의 본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 어떤 시선도 가치기준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내 주위의 그 누구도
내가 무대에 서기 위해 춤을 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연습실에 매달려 있는 나에게 몇몇은 재능은
있는 것 같으니 무용학원의 강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도 격려했다. 그러나 나와 내 몸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이상이 되리라는 것을.
[All From Hong, Shin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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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음악을 좋아하고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 눈물도 흘려보고
달콤한 음악을 들으며 꿈속도 헤메보곤 했었지만 이 음악만큼
충격적인 것도 없었다. 처음 들었을때 덜덜 떨며 얼어붙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귀신 소리가 나서 덜덜거렸던 것이
아니고 저 두 예술가들이 무엇을 전달하려하나 하는 생각에
그 들 앞에서 나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혼돈 스러웠던
말할 수 없었던 느낌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목소리의 주인공 홍신자씨의 간단한
소개도 찾아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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