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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유래-붕어빵의 유래

花受紛-동아줄 2012. 2. 1. 10:56

[붕어빵]의 유래


일본에서는 붕어빵을 타이야끼(たい燒き:이하 타이야끼라 함)라고 부릅니다.
타이야끼를 가장 처음 만든 사람은 浪花家라는 가게를 연 칸베(神戶 淸次郞)라는 사람
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손자가 올해 63세라고 하니 붕어빵의
역사는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이 타이야끼가 우리나라 붕어빵의 원형이자 기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둘은 형태도 비슷하고, 재료도 같으며, 만드는 방법도 같습니다.
또한, 붕어빵과 같은 방식으로 형틀에 구워서 만드는 오방떡이나 국화빵도 일본에서
온 것이라 생각된다고 합니다.
물고기를 형상화한 특이한 생김새의 붕어빵을 먹는 재미, 어렴풋이 느껴지는 향수 등
붕어빵에 대한 정서는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똑같은 모양, 재미난 생김새, 밥 한공기와 맞먹는 풍부한 칼로리, 고소하면서 달콤하
고, 바삭바삭하면서도 말랑말랑한 특유의 맛과 조직이 꾸준한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붕어빵으로 본 심리



머리부터 먹는 사람

사소한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낙천가인 경우가 많습니다.머리에 딱 떠오르는 것을 쉽게 말해 버리는 타입인데 그 반면, 빨리 뜨거워졌다가 식기도 하지요.



꼬리부터 먹는 사람

주의깊은 신중파.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는 로맨티스트이고 플라토닉한 사랑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녀 모두 멋장이며 옷에도 돈을 들이는 타입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남의 기분에는 둔감하여 남성이 사랑하고 있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중파이기 때문에 같은 실수는 두번하지 않는답니다.



배부터 먹는 사람

남성적인 타입으로 무슨일이든 적극적인 스포츠맨이나,활동가에게 많습니다.
명랑하고 누구와도 잘 지내기 때문에 주위로 부터 신뢰받는 사람입니다. 반면, 남을 돌봐 주는건 좋지만 부탁하면 싫다는 말을 못하기때문에 꼼짝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남성보다도 여성에게 인기가 있을 경우가 많고, 남성과 대등하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등지느러미부터 먹는 사람

이 타입은 매우 신경질적이고 어리광이 많습니다. 외동이거나 막내에게 많은 타입으로 여럿이 시끌벅적 하는것 보다 혼자 책을 읽거나 TV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냥하고 동정심도 깊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를 주워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물도 많고 감격도 잘하며 그림 등 미적 센스가 있습니다.



반으로 잘라 꼬리부터 먹는 사람

예의가 바르고 신중한 사람입니다. 여성에게 가장 많은 편으로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신뢰받는 착한아이 타입이 많습니다.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막상 하려고 하면 용기가 없고 착실하게 하나하나 노력해 갑니다, 또 ,돈도 잘 모으고 합리적입니다.



반으로 잘라 머리부터 먹는 사람

남성에게 많은 방법으로 한번 정하면 끝까지 해내려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입니다.
스포츠가 특기인 활동적인 타입인데 금전적으로 다소 째째한 경향이 있고 남에게 뭔가를 빌리거나 빌려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성인 경우에는 활발하고 정연하게 일을하는 타입인데 남성들로 부터는 지나치게 까다롭다'라는 말을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뎅 의 유래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오뎅" 대신 "어묵"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오랫동안 쓰였던 `가케우동'이 거의 `가락국수'로 바뀐 것처럼 우리말을 아끼려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으나,어묵과 오뎅은 전혀 다른 음식입니다.

-.어묵[かまぼこ]:"생선의 살을 으깨어 반죽한 뒤 가열·응고시킨 음식. 생선묵"

-.오뎅 [ おでん]:생선묵·유부·무·곤약 등을 꼬챙이에 꿰어 장국에 익힌, 일본식 술안주 또는 반찬. 꼬치안주.



`오뎅'(お田)은 `덴가쿠'(田樂)의 첫 글자에 접두사 `오'(お)가 붙은 말입니다. 존경,공손,친숙 등의 어감을 가진 접두사 `오'를 음식물에 붙이는 어법은 주로 여성과 아이의 것이지만 기본의식적으로는 먹을 것이 귀했던 과거가 잠재적으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듭니다.



오뎅은 일제시대에 어묵과 함께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서 들여왔으며, 해방후 어묵은 사라지고 오뎅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어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있을 정도이며, 오뎅또한 치즈오뎅에서 빨간오뎅까지 다양한 오뎅의 맛을 보실기회가 많으실겁니다.

빨간오뎅의 유래

일반 적으로 오뎅을 먹는 방법은 오뎅을 복거나,국을 끓여먹거나. 길죽한 막대오뎅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맑은 물에 담가두었다가 간장으로 간을 하여 먹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느끼한 맛이 강하게 나며, 오뎅 특유에 묘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비유가 약한 사람들은 먹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오뎅을 느끼한 맛을 싫어하고 매운맛을 좋아하는 강원도 사람들이 고춧가루 및 고추장등의 갖은 양념을 하여 간이 베이도록 끓여 먹기 시작하면서 빨간오뎅이란 것이 생긴 것입니다. 그 시작은 언제쯤인지는 정확히 아는사람은 없으며, 20년 전에도 먹어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작은 훨씬 이전이라 생각듭니다.

오뎅자체는 빨간 것이아니며, 그 고추장 및 고춧가루로 양념을하여 빨갛게 보이므로 "빨간오뎅"또는 "양념오뎅"으로 불리워 지기 시작하였으며, 포장마차나 분식집 같은곳에서 상용화 하면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대중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것입니다.

 

순대의 유래

순대는 돼지고기를 이용한 우리고유의 음식 중 세계 어느곳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먹거리이며, 영양가도
유사한 소세지에 비해 오히려 뛰어난 음식입니다. 더욱이 순대는 지역에 따라 그 만드는 방법과 맛이 서로 달라 보다 다양하게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순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소나 돼지의 창자속에 여러 재료를 소로 넣어 삶거나 쪄 익힌 음식'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동물의 내장을 이용한 음식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제민요술'에는 '양의 피와 양고기
등을 다른 재료와 함께 양의 창자에 채워 넣어 삶아 먹는 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순대는
내장에 속을 넣어 익힌 음식으로 그 고전적인 형태는 '개를 잡아 깨끗이 씻어 슬쩍 삶아 뼈를 발라 만두속
버무리듯이 해서 후추, 천초, 생강, 참기름, 진간을 한데 섞어서 질척하게 하여 제창자를 뒤집어 말끔히 빨아
먹으면 맛있다.'라고 기록된 연대 음식디미방의 개방을 필두로 하여 규합총서나 중보산림경제에는 '쇠창자
안팎을 정히 씻어 한자 길이씩 베고 쇠고기와 꿩, 닭고기를 두드려 온갖 양념과 기름장을 간 맞추어 섞어
그 창자속에 가득히 넣고 실로 두 끝을 맨 다음 솥에 먼저 물을 붓고 대나무를 가로지르고 그 위에 얹되 물에
잠기게 말고 뚜껑을 덮어 뭉근한 불로 고아 꽤 익은 후 내어 식거든 말굽 모양으로 저며 초장에 써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유래를 살펴보면 몽골의 징기스칸이 대륙 정복시 전투근무 식품으로 전장 기능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돼지의 창자에다 쌀과 야채를 혼합하여 말리거나 냉동시켜 휴대하여 기동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세계를 정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데 부터 유래된 음식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식품인 순대제품은 가축의 혈액을 포함하고 있어 소장에서 흡수가 용이한 철분의 훌륭한 공급원으로 빈혈이 우려되는 여성에게 적합한 영양식품입니다.

그밖에도 순대는 육류, 곡류, 채소류가 골고루 함유된 식품으로서 제조방법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대에 사용된 재료를 살펴보면 규합총서에 '쇠고기와 꿩고기, 닭고기를 두드려서'라고 하였고, 부인필지에서는 '쇠고기와 생치, 제육을 난도하고'라고 하였으며, 역주방문에서는 '연한 살코기를 만두속과 같이 잘 다져
놓는다.'고 하여 잘게 다져 사용되었습니다.

 

껌의 유래와 역사


고대 그리스인들은 유향수(乳香樹 : mastic tree) 수지에서 나온 ‘마스티케(mastiche)’라는 점착성 물질의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1세기 그리스 의사이자 약제식물 연구자였던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는 그의 저술에서 유향수의 치료효과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와 중동지역 사람들은 유향수 수지를 연화제인 밀랍과 섞어 씹는 것을 즐기고 있다. 유향수 수지 “마스티케(mastiche)”는 그리스어로 “씹기”라는 뜻을 가진 "마스티칸(mastichan)"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있다.


껌을 씹는 습관이 발달된 것은 마야인들도 그리스인들에 뒤지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2세기경에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늘날 치클(chicle)이라고 부르는 사포딜라 나무의 응고된 수액을 씹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사포딜라 나무는 하루 약 1kg 남짓 되는 치클을 얻기 위해 수령이 70년이 될 때까지 수액 채취 금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재배되었다. 치클을 얻기 위해서는 나무 허리에 로프를 메고 35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서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나무껍질에 깊은 홈을 만들어 지상에 있는 작은 양동이까지 흘러내리게 해 유액 또는 수액을 받았다. 이후 800년이 지나 마야 문명은 아직까지 불명확한 이유로 종말을 맞게 된다. 하지만 껌을 씹었던 마야인의 관습은 유일하게 보존되어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 그들의 후손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한편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의 아메리카 인더언들도 가문비나무(spruce) 수지로 만든 껌을 씹었다. 미국은 초창기부터 껌을 씹는 습관이 발달되어 19세기 초반 최초의 껌 제품까지 가문비나무 수지 덩어리를 씹는 껌 용도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1848년 존 커티스(John Curtis)라는 사람이 가문비나무 수지를 끓여서 미국에서 최초로 껌을 만들었다. 1869년 오하이오 주 치과의사였던 윌리엄 셈플(William Semple)이 추잉검에 대한 최초의 특허를 얻게 된다. 그는 턱뼈를 튼튼히 하고 잇몸을 자극하기 위해 껌을 발명했지만 이 제품은 마치 고무와 비슷했기 때문에 판매되지도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껌의 발명은 미국의 사진가인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와 앨라모 요새에서 텍사스를 물리친 멕시코 장군 안토니오 로페즈 산타안나(Antonio Lopez de Santa Anna)라는 두 사람의 우정 때문에 나왔다.

※ 앨라모 요새 : 텍사스 주에 있는 가톨릭의 전도소로 1836년 텍사스 독립 전쟁 때 멕시코군에 포위되어 수비대가 전멸된 곳.


산타안나는 멕시코에서 추방되어 뉴욕만 스태튼 섬(Staten Island)에서 아담스와 함께 살았다. 아담스는 돈을 벌기 위해 다른 계획들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산타안나는 아담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멕시코인들이 수천년 동안 씹어온 고무질의 물질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중앙아메리카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당초의 계획은 치클과 고무를 섞어서 타이어나 장난감, 우비 등을 저렴하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산타안나는 멕시코에 있는 친구들에게 치클 1톤을 아담스에게 선적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약 1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담스의 모든 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다. 그는 치클과 고무를 섞을 수 없었던 것이다.


쓸모없게 된 치클이 아담스의 창고에 쌓여 있었고 아담스는 이것을 모두 강에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담스는 우연히 약국에 들렀다가 파라핀 왁스(석랍)로 만든  껌을 사는 한 어린 소녀를 보게 된다. 이 때 아담스는 산타안나에게서 들은 이야기 즉, 멕시코인들이 치클을 씹었다는 말을 기억한다. 이에 영감을 받은 아담스는 풍미를 곁들이지 않은 순수 치클 껌을 만들기 시작해 대단한 판매 실적을 올리게 된다.


몇 년 뒤, 켄터키 주 루이스빌의 한 약국 경영자 존 콜간(John Colgan)이 발삼 나무 수액과 가루설탕을 섞어 만든 껌을 팔고 있었는데 아담스의 성공 소식을 듣고 100파운드의 치클을 주문해 “타피 톨루(Taffy Tolu)”라는 껌을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의 약국에서 판매한 이 껌이 크게 성공을 거두자 콜간은 껌 제조에 모든 시간을 바치게 된다.


그러나, 껌이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그가 아니라 팝콘 판매원이었던 윌리엄 화이트(William J. White)가 친구가 준 한 통의 치클을 실험하면서 시작되었다. 화이트는 껌에 맛과 향을 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치클은 맛과 향을 흡수하지 못했지만 설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퍼민트 같은 향료를 옥수수 시럽과 섞어 치클과 혼합물을 만들어 낸다. 1899년에 주요 껌 제조업자들이 뭉쳐 ‘아메리칸 치클 회사(American Chicle Company)를 설립한다. 윌리엄 화이트는 사장이 되고 토마스 아담스 주니어가 회장을 맡게 된다. 미국 등에서 블랙잭(Black Jack), 비맨스(Beeman's)와 같은 이들이 만든 제품을 아직도 볼 수 있다. 이후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맛있는 껌을 씹고 있는 것이다.


링글리 껌의 설립자인 윌리엄 링글리 주니어(William Wrigley, Jr.)는 껌 판매와 소비를 촉진시킨 마케팅 기술을 고안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비누 회사를 설립해 자신의 비누를 취급하는 상인들에게 베이킹파우더 무료로 제공했다. 베이킹파우더가 비누 보다 더 인기가 높아지자 그는 베이킹파우더 판매로 사업을 바꾸게 된다. 바로 이 사람이 어느 날 베이킹파우더 한 깡통마다 껌 한 통을 무료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내어 껌의 소비를 촉진하고 대중화 시키는 장본인이 된다.